[최현길의 스포츠에세이] 평양 원정 보고도 월드컵·올림픽 공동 개최 추진하고 싶을까

입력 2019-10-16 15:2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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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대한축구협회

결론부터 말하면 우리가 북한과 손잡고 대형 스포츠 이벤트를 공동 개최하는 건 말리고 싶다. 평화를 명분으로 원치도 않는 북한을 더 이상 억지로 끌어들이지 말아야 한다. 15일 열린 2022카타르월드컵 아시아 2차 예선 H조 3차전은 우리의 행동 방향을 명확하게 제시해줬다.

이날 경기는 평양의 김일성경기장에서 열렸다. 29년 만에 평양에서 열린 남북전인데다 첫 월드컵 경기라는 점 때문에 국내외를 막론하고 관심이 높았다. 하지만 그 관심은 엄청난 실망으로 돌아왔다. 북한은 상대국에 대한 최소한의 성의도 보이지 않았다. 육로나 전세기 이동이 허용되지 않았고, 취재진과 응원단의 방북도 불허했다. 마지막까지 협상을 이어간 생중계도 불발됐다. 또 한 가지 의아했던 건 관중이 없었다는 점이다. 깜깜이와 무관중, 그야말로 동네축구보다 못 한 월드컵 예선이 되고 말았다.

요즘이 어떤 세상인가. 스마트폰 하나로 지구촌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실시간으로 확인하는 시대다. 그런데 최고 인기를 구가하는 축구 경기를, 그것도 비행기로 1시간 거리도 되지 않는 곳에서 열리는 월드컵 예선을 보지 못했다는 현실에 말문이 막힐 뿐이다.

우리는 생중계 없는 스포츠가 얼마나 답답한지 절실하게 깨달았다. 이날 경기는 문자 이외에는 확인할 길이 없었다. 그 과정도 ‘007 작전’을 방불케 했다. 평양에 있는 아시아축구연맹(AFC) 감독관이 경고나 선수교체가 있을 때마다 휴대전화 메신저를 통해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 위치한 AFC 본부에 알려주면, AFC 본부에서 대한축구협회에 통보하고, 축구협회는 이를 미디어에 배포했다. 간혹 선수 이름이 틀릴 경우엔 또다시 이 과정을 반복해야 했다.

이런 비상식적인 경기가 국제 망신을 사지 않으면 오히려 이상하다. 경기 전에도 외국 언론에서 생중계와 취재진이 없는 걸 두고 ‘이상한 더비’라고 비꼰 이날 경기는 지아니 인판티노 국제축구연맹(FIFA) 회장이 현장에서 직접 지켜본 뒤 무관중을 비롯한 여러 행정적인 절차를 두고 실망감을 표시했다. 그만큼 월드컵 수준과는 격이 맞지 않는 운영이었다. 외신들 또한 텅 빈 관중과 미디어의 부재를 꼬집었다. 외부 시선으로는 이상한 나라에서 벌어진 별난 경기였던 셈이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우리는 북한이 스포츠를 바라보는 시선이 어떤지 다시 한번 확인했다. 무관중을 택한 이유가 뚜렷하진 않지만 한국에 패할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라는 해석에 힘이 실린다. 스포츠에서 이기고 지는 건 비일비재한데, 지는 게 두려워 홈그라운드의 이점을 포기했다면 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영국 국영방송 BBC가 “북한에서 축구는 자부심과 애국심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사회적인 목적으로 스포츠를 이용하는 방법”이라고 보도했듯 북한은 스포츠를 철저히 정권 유지의 도구로밖에는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는 그동안 북한에 너무 관대했다. 지난해 평창동계올림픽만 하더라도 우리는 이동 방법이나 숙소 등에서 최대한의 혜택을 제공했다. 우리의 환대와 그들의 냉대는 극명하다. 그들이 우리에게 “다른 팀들과 동등하게 대우할 것”이라고 공개적으로 밝힌 것처럼 우리도 그렇게 대해야 한다. 뜬구름 잡는 명분이 아니라 실질적인 스포츠 이벤트에만 초점을 맞춰야 한다. 정치적인 논리가 아니라 순수한 스포츠 정신으로 돌아가야 한다.

아울러 스포츠 이벤트의 공동 개최 추진도 재검토해야 한다. 우리는 현재 2023년 여자월드컵 공동개최를 희망하고 있다. 이는 인판티노 회장이 올해 초 처음 제안한 내용으로, 이번에 평양에서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과 북한 관계자들을 만나 어떤 식으로든 얘기가 나왔을 것이다. 또 2032년 하계올림픽의 남북 공동 개최도 현 정부 차원에서 강력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두 대회 모두 북한은 아무런 반응이 없다. 우리 혼자 애걸복걸하는 모양새다. 북한이 받아들인다고 해도 그런 이벤트를 빌미로 그들이 막무가내로 나오지 않을까 솔직히 걱정이 앞선다. 공동 개최의 운만 뗀 뒤 협상 과정에서 얼마나 애를 먹일지 상상만 해도 아찔하다. 또 정치 지형은 언제 어떻게 바뀔지 모른다. 그때마다 공동 개최 논의는 춤을 추게 될 것이다. 이런 불예측성이 스포츠 이벤트를 지배한다는 건 결코 온당치 않다. 이제는 환상에서 깨어나 우리 모두 냉정해져야 한다.

최현길 전문기자·체육학 박사 choihg2@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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