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형모 기자의 공소남닷컴] 햇살 쏟아지는 무대·달콤한 대사…“참 예쁘네”

입력 2019-11-22 05:45:00
카카오톡 공유하기
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고아소녀와 얼굴 없는 후원자로 만나 결국 사랑으로 결실을 맺는 제르비스(오른쪽·신성록 분)와 제루샤(강지혜 분). ‘키다리 아저씨’는 혼성 2인극의 재미를 만끽할 수 있는 ‘예쁜’ 뮤지컬이다. 사진제공|달컴퍼니

■ 3년만에 대학로로 돌아온 뮤지컬 ‘키다리 아저씨’

고아소녀와 얼굴없는 후원자의 사랑
혼성 2인극…배우들 열연에 입소문


누구나 다 아는(혹은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친숙한 이야기, 혼성 2인극이라는 흔치 않은 시도, 배우들의 열연으로 공연 팬들 사이에서 “재밌다”, “괜찮다”는 입소문이 빠르게 돌았던 뮤지컬 ‘키다리 아저씨’가 2016년 국내 초연 이후 3년 만에 대학로로 돌아왔다.

존 그리어 홈 고아원에서 가장 나이 많은 소녀 제루샤 애봇과 그에게 대학 장학금을 대주겠다는 정체불명의 남자, ‘키다리 아저씨’ 제르비스 펜들턴이 이 이야기의 유이한 등장인물이다.

이야기는 제루샤의 편지 낭독으로 진행된다. 박소영 연출은 제루샤 배우들(유주혜, 강지혜, 이아진)에게 “객석의 관객 모두가 키다리 아저씨라고 생각하며 연기해 달라”고 주문했다고 한다.

제루샤가 고아원이라는 지극히 제한된 장소를 벗어나지 못하고 살았다면 제르비스는 서재와 책이라는 보이지 않는 공간 안에 스스로를 가둔 인물이다. 한 마디로 사랑을 책으로 배운 사람으로 제루샤의 날것과 같은 일상이 담긴 편지를 받으면 책부터 뒤적이는 남자다.

다른 후원대상자들의 편지와 마찬가지로 종이파일에 담겨져 서랍에 처넣어지던 제루샤의 편지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제르비스의 서재 책꽂이에 하나 둘씩 붙여지기 시작한다. 제루샤에 대한 제르비스의 심리 변화가 흥미로우면서도 통쾌한 구석이 있다.

신성록이 연기한 제르비스는 2016년 시즌에도 보았다. 약간의 허당끼가 있는 훈남 역할이 잘 어울린다. 아쉬운 점은 차기작인 뮤지컬 ‘레베카’ 출연을 위해 중도 하차했다는 것인데 그에 못지않은 제르비스가 3명(강필석, 송원근, 김지철)이나 더 남아 있으니 안심하시길.

뮤지컬 ‘키다리 아저씨’ 제루샤 역의 배우 강지혜(왼쪽)와 제르비스 역의 배우 신성록. 사진제공|달컴퍼니


제루샤의 편지로 극이 진행되는 만큼 아무래도 비중이 제르비스보다는 좀 더 크다. 제루샤 역의 강지혜는 전작인 연극 ‘왕복서간’에서도 보았던 배우. 대사 톤이 참 좋다고 생각했는데 노래할 때의 톤도 대사와 정확히 일치했다. 말하듯 노래하고, 노래하듯 말하는 배우다. 귀엽고 발랄한 제루샤를 보여주면서 성장해 나가는 미묘한 변화를 잘 드러냈다.

요즘 작품들의 트렌드(?)답게 무대가 참 곱다. 갈색톤의 클래시컬한 V형 무대인데 V자의 꼭짓점에 서재 책꽂이, 날개 끝에는 두 개의 커다란 창문을 배치했다. 무대 중앙에는 제르비스의 값비싸 보이는 원목 책상을 두었다.

시골의 농장을 방문한 두 사람이 각자 창문 앞에 서서 활짝 열어젖히는 장면이 있다. 창밖으로부터 쏟아져 들어오는 환한 햇살이 무척 아름답다. 두 사람의 관계 전개를 살짝 보여주는 근사한 ‘떡밥’이다.

피아노와 현악기로만 이루어진 반주도 극과 잘 어울렸다. 배우들의 대사를 반짝반짝 빛나게 닦아주는 세련된 반주였다.

인기작답게 일찌감치 매진이어서 공연장 2층 뒤쪽 자리에서 관람했다. 시야가 가팔라 스키장 고급자 코스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듯 아찔했음에도 극에 흠뻑 빠져들어 관극했다.

2시간을 보고 들었는데, 좀 더 보고 듣고 싶었던 작품. 참 예쁜 뮤지컬이다.

양형모 기자 hmyang0307@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뉴스스탠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