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버 \'CAN IT BE\'의 한장면. 사진제공ㅣEMK뮤지컬컴퍼니
템스강 근처에서 우르수스가 이끄는 카니발 쇼 ‘웃는 남자’가 유럽 전역에서 인기다.
붉은색 머플러로 입을 가린 채 관객들 앞에 선 한 남자. 구슬픈 바이올린 소리에 리듬을 타던 그가 머플러를 벗어재끼고, 이내 귀까지 빨갛게 찢어진 입을 드러낸다. 관객들은 놀람을 감추지 못하고 공포에 질린 소리를 낸다.
그런 반응이 익숙한 듯 태연하게 연기를 이어가는 우리의 그윈플렌, 혹은 규윈플렌. 규현은 1막의 초반부터 잘 짜여진 결투신에 본인만의 애드리브를 녹여내 관객들의 혼을 쏙 빼놓는다.
그룹 슈퍼주니어 출신의 규현은 2010년 ‘삼총사’로 데뷔한 10년 차 뮤지컬배우다. 그런 그가 소집해제 이후 첫 작품으로 ‘웃는 남자’를 택해 ‘유쾌한’ 그윈플렌을 그려내는 중이다.
앞서 진행된 프레스콜에서 규현은 “극의 흐름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관객들을 기쁘게 해드리고 싶다”는 생각을 전했다. 그의 생각이 관객들에게 전해진 것일까. 평일 공연임에도 불구하고 3층까지 가득 찬 객석에선 커튼콜 내내 기립박수가 이어졌다.
뮤지컬 ‘웃는 남자’는 프랑스의 대문호 빅토르 위고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2018년 초연 당시 최단기간 누적관객 10만 명을 돌파하며 한국 창작 뮤지컬 계의 정점을 찍었던 ‘웃는 남자’가 한층 더 매끄러워진 서사로 관객들을 맞이하고 있다.
넘버 '눈물은 강물에'의 한장면. 오직 '웃는 남자'에서만 볼 수 있는 강이 등장해 관객들의 시선을 끈다. 사진제공ㅣEMK뮤지컬컴퍼니
아이들을 납치해 기형적인 괴물로 만들어 귀족들에게 팔던 인신매매단 ‘콤프라치코스’. 그들에 의해 입이 찢긴 그윈플렌은 길을 떠돌다 죽은 여자에게 안겨있던 데아를 발견한다. 그는 데아를 데리고 떠돌이 약장수 우르수스를 찾아간다.
극은 ‘부자들의 낙원은 가난한 자들의 지옥으로 세워진 것이다’라는 주제를 가지고 진행이 되는데 가난한 자들이 받는 핍박과 고통을 가감 없이 보여주기에 다소 불쾌할 수 있다. 하지만 카니발 식구들은 템스강에서 웃고 떠들며 춤을 춘다. 그들만의 극복법인 것이다. 넘버 ‘눈물은 강물에’에선 ‘웃는 남자’에서만 볼 수 있는 실제 강이 등장한다.
규현만의 유쾌함은 극의 초반부터 십분 발휘된다. 극중 극 형태로 진행되는 카니발 쇼 ‘웃는 남자’에서 그는 데아 역의 이수빈과 함께 듀엣 넘버 ‘나무 위의 천사’를 선보이고, 톰-짐-잭으로 분한 데이빗 경을 무찌르는 장면까지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보여준다.
듣는 이로 하여금 가슴이 저릿하게 만드는 규현의 음색이 돋보이는 넘버도 있다. 사람들에게 흉측한 괴물에 불과했던 그윈플렌의 찢긴 얼굴을 보고도 그를 원하는 조시아나를 만난 후 자신도 행복할 기회가 있을지 모른다는 희망으로 부르는 넘버 ‘CAN IT BE?’에서 규현은 복잡한 심경을 표출하듯 가사 하나하나에 감정을 담아 절절히 부른다.
배우 규현이 소집해제 이후 첫 작품으로 '웃는 남자'를 택했다. 그는 자신만의 유쾌함으로 그윈플렌을 그려내는 중이다. 사진제공ㅣEMK뮤지컬컴퍼니
출생의 비밀이 밝혀진 그윈플렌이 영국 최고의 권력자들만 참석하는 상원 의원회에 참석해 여왕과 의원들을 향해 “세상을 돌아봐 달라”며 간청하는 넘버 ‘그 눈을 떠’에서 규현은 특유의 감미로운 목소리에 호소력을 더해 담백하게 곡을 이끌어 낸다.
유쾌함뿐만 아니라 갖은 매력으로 중무장한 배우 규현의 그윈플렌은 이미 완성형에 가까웠다. 뮤지컬 ‘웃는 남자’는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3월 1일까지 공연한다.
이수진 기자 sujinl22@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