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인터뷰] 곽신애 대표 “봉준호 감독, 물 마시는데 1시간 걸릴 정도로 인기多”

입력 2020-02-26 07: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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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

[DA:인터뷰] 곽신애 대표 “봉준호 감독, 물 마시는데 1시간 걸릴 정도로 인기多”

“아시아 최초로 아카데미에서 상 받은 여성 제작자가 된 것에 큰 감흥이 없어요. 아직 피부에 와 닿지 않아서 그런가. 아마도 몇 년 후에나 실감이 날 것 같아요.”

2월 10일 한국시간으로 정오가 조금 지났을 무렵, 2002년 월드컵 4강 진출 소식을 방불케 하는 낭보가 떨어졌다. 영화 ‘기생충’이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국제장편영화상 등 4관왕을 받았기 때문이다. ‘기생충’은 지난해 칸 국제영화제부터 ‘대한민국 최초’라는 수식어를 달고 연달아 수상 소식을 알린 바 있다.

약 10개월의 여정을 마친 ‘기생충’의 곽신애 바른손이앤에이 대표는 이 모든 과정에 대해 생각을 다 마치지 못한 것 같다고 말했다. 황금종려상과 아카데미 작품상을 동시에 받은 것은 여전히 믿어지지 않는다고. 또한 아시아 여성 제작자 최초로 기록을 세운 것에 대해서도 실감이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기생충’이 ‘최초’가 너무 많았어요. 칸 국제영화제부터 아카데미까지 모두 최초였잖아요. 미국배우조합상 앙상블상 역시 미국인이 아닌 사람들이 받은 것도 처음이었고. 우리끼리 ‘최초’가 몇 개나 될지 농담으로도 말해보고. ‘최초’의 무리 속에 있어서 자각이 없나 봐요. 오죽하면 송강호가 ‘우리 중에 ‘최초’를 안 단 사람이 없을 걸?‘이라고 하시더라고요.”

<이하 곽신애 대표와 일문일답>

Q. 우선, 아카데미 낭보를 축하드린다. 트로피를 6개나 받았는데 무사히 들고 왔나. (웃음)

A. 미국 배급사인 네온(NEON)에서 분실될 수 있으니 기내 수하물로 가져가라고 해서 조그마한 캐리어에 넣고 왔다.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BAFTA)에서 받은 트로피를 중간에 넣고 아카데미를 주변으로 넣으니 캐리어 사이즈에 딱 맞게 들어가더라.(웃음)

Q. 봉준호 감독이 국제장편영화상 트로피를 곽신애 대표에게 맡겼다고 했다. 그런데 트로피 실제 소유권은 누가 갖고 있는 건가.

A. 봉준호 감독이 국제장편영화상을 내게 맡기긴 했지만 실제 소유권은 봉준호 감독 것이다. 우리도 난생 처음 있는 일이라 아카데미 측에 물어봤다. 아카데미 지침이 많이 까다롭더라. 결론적으로, 기여도가 가장 큰 사람이 해당 트로피를 갖게 된다. 영화를 만드는 키 스태프(Key Staff)들에게 ‘이 영화를 제작할 때 어떤 일을 했는가’에 대해 자세하게 묻는다. 그리고 나서 시상 대상자들을 정한다. 예를 들어 우리 영화 같은 경우에 봉준호 감독이 영화 내용에 관해서는 재량권을 갖고 계시기 때문에 공식적인 제작자로 이름이 올라가지 않더라도 아카데미에서는 제작자로 평가하더라. 그래서 작품상 수상 대상자 이름에 첫 번째는 내 이름, 두 번째는 감독님 이름이 올라가있다.

미국 영화 같은 경우 제작자가 10명도 들어가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직함보다는 어떤 기여를 하는지가 중요하다고 하더라. 캐스팅, 예산결정권자에 대한 질문부터 제작자가 현장에 자주 있었는지도 물어본다. 이후 여러 가지를 대조해서 판단한 후 수상자 후보를 정한다고 했다. 아카데미 시상식은 변호사도 있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


Q. 7~8개월간의 아카데미 레이스도 처음이지 않았나. 곽신애 대표가 지켜본 아카데미 레이스는 어땠나.

A. 일단 철저하게 상업영화, 즉 성수기에 들어가는 메이저 배급사의 영화들은 아카데미에 관심이 없다. 반대로 해석하자면, 아카데미 레이스는 다양성영화 중 특별한 영화를 주목받게 하기 위한 과정이 아닌가 싶다. 이런 작품들은 9월~10월인 비수기에 개봉을 시작한다. 연말 성수기에는 개봉관 수가 줄지만 그쯤에 각종 시상식 후보들이 나오기 시작하며 레이스 참여작이 추려지기 시작한다. 그렇게 후보작들이 상을 받으러 다니기 시작하면서 1~2월에 언론 등을 통해 조명받기 시작하고 여러 화제를 만들어내며 경쟁구도를 강화시킨다.

아카데미 후보작 선정 발표만 해도 사실 주목 받을 수 있다. 캠페인을 시작하면 후보작이 작품상 후보에만 올라가도 상영관이 1000개가 보장된다고 하더라. 극장 수도 많아지면 관객들의 관심이 커진다. 이후 무슨 상을 받는지에 따라 관심도나 개봉관 수가 늘어난다. 작품상을 받은 뒤에는 상영관 수가 2000개 정도가 된다고 들었다. 아카데미가 벌써 90년이란 역사를 지니지 않았나. 영화산업이 활성화 시키고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내기 위한 정책이 아닐까 싶다.

Q. 솔직히 ‘작품상’은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결과였다. 대부분 ‘1917’을 예상했을 것 같은데.

A. 우리도 예상을 못했다. 주요 매체에서도 ‘1917’이 작품상을 받을 거라 예상했다. 현지에서 예측했던 것은 국제장편영화상과 각본상, 그리고 편집이나 미술상과 같은 기술 부문에서 수상을 할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아무래도 미국 배우조합(SAG), 미국 작가조합(WGA), 미국 미술감독조합(ADG), 미국 영화편집자협회에서 주는 최고상 수상 등이 많은 영향을 미친 것 같더라. 우리도 끝까지 예상하지 못했다.

Q. ‘기생충’으로 벌어들인 매출이 상당하다. 제작진 및 배우들의 수익이 엄청날 거라는 예상을 해보는데.

A. 매출은 늘었지만 사실상 그 숫자는 우리에겐 허상이다. 계약에 따라 내부적인 배분율이 있지만 공식적으로 밝힐 수는 없는 사항이고. 결론적으로, 모든 금액이 우리 수익이 아니다. 매출의 절반은 각 나라의 극장에 돌아간다. 그리고 경비 등 비용을 제외시킨 뒤 나머지 금액 중 이 영화를 산 해외 배급사들이 가져가는 돈이 있고 그 나머지를 우리가 계산해 나누게 된다.

Q. 아카데미 수상자에게 트로피 말고도 상금과 부상이 있던가.

A. 상금은 없더라. 아카데미가 올해부터 부상을 없앴다. 처음에 ‘상을 받으면 뒤따라오는 부상이 많다’는 기사를 보고 물욕이 폭발했다.(웃음) 그런데 사람들 사이에서 말이 많아지면서 올해부터 안 하기로 결정했다더라.

Q. 영화인에게 있어서 아카데미는 꿈이 아닌가. 내로라하는 영화인들 중 봐서 가장 좋았던 사람이 있다면.

A. 클린트 이스트우드였다. 평소에 그 분을 존경했고 작품을 너무 좋아했다. 하지만 사진 한 장 못 찍었다. 멀찌감치 에서 지켜보기만 했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나 브래드 피트도 물론 멋있지만 현실처럼 느껴지지 않아서 감흥이 적었다. 르네 젤 위거가 내 앞을 막 지나가는데도 마치 영화를 보는 것 같았다. 봉준호 감독이나 송강호는 아카데미 레이스 기간 동안 후보에 오른 배우들이나 제작진을 많이 만나서 그런지 친해져있더라. 봉준호 감독이 옆에서 날 소개시켜주며 ‘이 사람이 우리 제작자야’라고 하면 배우들이 ‘진짜? 와 ’기생충‘ 정말 훌륭한 영화야’라고 인사 정도만 했다.

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


Q. 아카데미의 변화를 어느 정도 느꼈을 것 같은데.

A. 아카데미 수상 여부는 회원들의 투표로 결정되는 것이기 때문에 각자 생각을 알 수가 없지 않겠나. 그럼에도 ‘기생충’이 그들에게 시대적인 공감을 안겼다고 본다. 그럼에도 그들에겐 엄청난 결심과 용기가 필요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어디선가 “‘1917’이 작품상을 수상하면 오스카의 역사를 확증하는 것이고 ‘기생충’이 받으면 오스카의 역사를 만들어내는 것”이라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내 생각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기에 이번에 우리 영화에 표를 던진 영화종사자들의 열의가 뜨겁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정말 수상 여부는 아무도 예상을 못하겠더라. 어느 시상식을 가더라도 봉준호 감독이나 송강호 씨는 정말 인기가 많다. 다른 테이블은 다 조용한데 우리 테이블만 왁자지껄한 경우가 많았다. 다들 봉준호 감독과 인사하고 사진을 찍길 바랐다. 사람들이 계속 우리 테이블로 찾아오니 봉준호 감독이 물 한잔 먹는 것도 40분이 걸렸다. 그런데 정작 그날 수상작은 ‘1917’이었다. (웃음) ‘인기는 우리가 1등이었는데 이게 뭐야?’라는 생각이 들더라. 하하. 그래서 수상 여부는 정말 모르겠더라.

Q. 가족들의 반응은 어땠나. 남편인 정지우 감독은 뭐라고 하던가.

A. 정지우 감독은 그냥 웃기만 했다. 지난해 칸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을 때도 그랬다. 우리가 상이라는 것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아이는 지금 미국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다. 아카데미 때문에 미국에 갔으니 아들 얼굴 좀 보려고 ‘올래?’라고 했더니 ‘방학 때 봐요, 엄마’ 라고 하더라. 그리고 작품상 수상했을 때는 ‘수고하셨어요’라고 짤막한 축하 인사만 문자로 왔다.

Q. 상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는 말이 인상적인데.

A. 우리가 상을 받으려고 영화를 만드는 것은 아니지 않나. 솔직히 말해서, 흠 없는 영화가 탄생했을 때 느껴지는 쾌감이 더 크다. 상은 그저 부수적으로 따라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황금종려상과 아카데미 4관왕을 수상한 것은 기쁘지만 주변에서 더 기뻐해주셔서 같이 즐거운 기분이 더 큰 것 같다. 오히려 우리 배우들이 미국배우조합상 앙상블상을 받은 게 더 기뻤다.

Q. 기자 출신 영화인이기도 하다. 어릴 때부터 영화를 좋아했나.

솔직히 말해서 영화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이야기를 좋아해서 만화책이나 소설을 많이 읽었다. 하이틴 로맨스나 공포이야기가 엮인 책도 많이 봤다. 하지만 영화인을 꿈꾸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읽어봤을 ‘스크린’도 사서 본 기억이 없다. 그래서 가끔은 미안한 기분이 들 때가 있다. 영화를 너무 좋아해서 감독이나 배우를 혹은 글을 쓰는 사람을 꿈꾼 사람들 중 정작 남아있는 분들이 안 계시다. 영화에 관심 없었던 내가 영화인이 되어있으니 가끔은 미안하다.

영화와 긴밀해지게 된 것은 취업을 하고 나서였다. 출판대행사를 다니다가 방송‧드라마를 만드는 외주제작사에 들어가게 됐다. 거기서 정성일 편집장을 만났고 입봉 직전에 있는 감독님과 차기작을 못하고 있는 감독님들의 작품을 만드는 일을 했다. 후리기획이라고. 영문으로는 ‘Free’다. 이후에 잡지 ‘키노’에 들어가 3년 정도 기자생활을 했다. 그 때 정말 영화에 대해 많은 공부를 했다. ‘키노’ 창간년도가 세계영화 100주년이 되는 해인 1995년이었다. 그래서 거장 감독 100명, 명작 100편 등 기사를 쓰면서 엄청나게 공부를 했다. 영화에 관해서 한글로 적혀있는 책은 거의 다 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학을 두 군데 다니는 기분이었다. 그 때가 내겐 큰 전환점이 됐다.

Q. 좋은 영화는 뭐라고 생각하는지.

A. 내 감정을 움직이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조건은 없는 것 같다. 그냥 내 기준에서 지루함이 없고 감정을 크게 움직이는 영화가 좋은 작품인 것 같다. 앞으로 내게 해야 할 숙제가 있다면 여성 감독들과 일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지난해 한국 영화에서 ‘여성 영화인’을 빼놓을 수 없었다. 큰 성과도 있었기 때문에 일종의 원년 같다. 그들과 함께 좋은 작업을 해보고 싶은 마음이 든다.

동아닷컴 조유경 기자 polaris27@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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