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 사커] 눈물 글썽인 이병근 감독대행, 언제 꼬리표 뗄까?

입력 2020-06-17 05: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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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이병근 감독대행. 사진제공|한국프로축구연맹

대구FC는 올 초 안드레 감독(브라질)과 재계약 협상이 결렬되자 이병근 수석코치(47)에게 팀을 맡겼다. 선수단 구성이 거의 마무리됐고, 전지훈련도 진행 중이어서 선택지가 많지 않았다. 또 지도자 최상위 자격증인 P급 라이선스를 보유했을 뿐 아니라 2018년 하반기엔 수원 삼성 감독대행을 경험한 적도 있다. 새 인물 영입보다 내부 승진으로 결론이 난 이유다. 대신 감독이 아닌 감독대행으로 선임했다.

감독대행은 애매한 자리다. 역할은 감독이지만 그만한 대우를 받지 못한다. 감독만큼 말발도 서지도 않는다. 그렇다고 성적에 대한 책임이 자유로운 것도 아니다. 꼬리표 달린 대행의 한계다.

이런 상황에서 이 대행은 지휘봉을 잡았다. 시즌을 앞두고 준비할 게 많았다. 선수단 분위기 수습은 물론이고 팀의 방향성도 제시해야했다. 게다가 지난 시즌 돌풍과 함께 K리그 흥행을 주도한 대구의 흐름을 이어가기 위해 무던히도 애를 썼다.

하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발목을 잡을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다. 대구지역은 2월 중순부터 코로나19 확산으로 비상이 걸렸다. 하루 수백 명의 확진자가 나오면서 모든 활동에 제약을 받았다. 축구단도 마찬가지였다. 숙소 이외에는 나갈 수가 없었다. 훈련도, 연습경기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1·2군 자체 경기로 조직력과 경기감각을 살리기엔 역부족이었다.

5월 초 K리그가 개막된 가운데 대구 선수들의 실전감각이 깨어나지 않은 건 어쩌면 당연했다. 1라운드 인천 유나이티드와 비겼다. 주도권을 잡고도 결정을 짓지 못했다. 비슷한 패턴이 이어졌다. 포항 스틸러스(1-1 무)와 전북 현대(0-2 패), 상주 상무(1-1 무)를 상대하면서 지난해의 대구 스타일은 나오지 않았다. 3무1패의 부진한 성적에 비난이 쏟아졌다. 이 대행은 “죄송하다”며 고개를 숙였다.

급기야 거취와 관련된 불편한 소문도 들렸다. 무앙통 유나이티드(태국)를 맡고 있는 가마 감독에게 대구 구단이 영입 의사를 타진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가마 감독은 경남FC와 국가대표팀에서 조광래 대구 사장과 함께 일했다. 이 대행 입장에선 자존심이 상할 일이다. 부진한 성적 탓이긴 해도 겨우 4경기 만에 지휘봉을 내려놓을 순 없었다.

어쩌면 5라운드는 운명을 건 승부였다. 어렵사리 성남FC를 2-1로 물리치고 첫 승을 챙겼다. 일단 고비는 넘겼다. 하지만 불안한 시선은 여전했다. 이 대행도 “오늘까지만 승리에 취하겠다”며 선수단을 추슬렀다. 다행히 승전고는 이어졌다. FC서울을 상대로 6-0 대승을 거뒀다. 홈 첫 승이다. 또 그동안 유독 약했던 서울을 상대로 설욕했다는 점도 의미를 더했다. 그 덕분에 상위권 도약의 발판도 마련했다. 이 대행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대구 축구가 살아나고 있다”며 미소도 함께 지었다. 우여곡절의 5개월이었다.

감독대행은 늘 불안하다. 꼬리표 떼는 게 지상과제다. 성적에 따라 일회성 소모품이 될 수도 있고, 정식 감독으로 승격하는 영광을 누릴 수도 있다. 안드레 감독도 처음엔 대행으로 시작했다. 2017년 5월 대행을 단 뒤에 지도력을 인정받고 2년 동안 대구를 이끌었다. 이병근 대행이 밟을 수순일지도 모른다.

감독과 대행의 큰 차이점은 선수단 장악력이다. 일정 기간 자신의 색깔을 확실하게 채색할 수 있는 감독보다 언제 잘릴지 모를 대행의 입지가 좁은 건 사실이다. 선수들도 이를 금방 알아챈다. 올 시즌은 아직 20경기 이상 남았다. K리그 유일무이한 감독대행에 대한 구단의 평가가 어떻게 나왔는지 모르겠지만 대행 꼬리표 제거여부에 대한 결정을 내려줄 때가 됐다고 본다. 선수단 결속과 팀 성적을 위해서라도 지금이 타이밍인 듯싶다.

최현길 기자 choihg2@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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