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 끝에서 핀 꽃…롯데 정훈이 숱한 비주류에게 던지는 메시지

입력 2020-07-29 14:4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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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 정훈. 스포츠동아DB

야구인생 내내 “안 될 거야”라는 편견과 싸워왔고 이겨왔다. 육성선수 입단, 방출 후 현역병 입대, 은퇴 후 모교 코치로 머물다 프로 재도전, …. 지금껏 밟아온 길 자체가 드라마인데 이제는 ‘사연’이 아닌 ‘실력’으로까지 팬들에게 감동을 선사하고 있다. 정훈(33·롯데 자이언츠)의 행보는 5%의 성공한 이들이 아닌 나머지 95%의 비주류들에게 분명한 메시지를 던진다.

정훈은 28일까지 올 시즌 39경기에서 타율 0.329, 5홈런, 29타점, OPS(출루율+장타율) 0.891을 기록 중이다. 내복사근 통증으로 한 달간 이탈한 탓에 규정타석과 거리가 있지만, 100타석 이상 소화한 롯데 선수들 중 OPS 1위다. 시즌 전까지만 해도 백업으로 개막 엔트리에 포함된 자체가 이슈였던 30대 초반 베테랑의 반전 활약이다. 28일 사직 NC 다이노스전에선 8-9로 뒤진 9회말 2사 1·2루서 끝내기 좌월 3점포를 때렸는데, 비단 이날뿐 아니라 올 시즌 내내 팀 타선에 큰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야구인생 내내 반전이라는 키워드는 정훈을 따라다닌다. 2006년 현대 유니콘스에 육성선수로 입단했지만 1년 만에 방출됐다. 현역병으로 입대해 군 복무를 마친 뒤 모교인 마산 양덕초등학교에서 지도자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던 중 2009년 롯데에 육성선수로 재입단했고, 2010년 정식선수로 전환돼 꿈에도 그리던 프로 데뷔에 성공했다.

프로 데뷔라는 목표를 너무도 힘들게 이뤘지만, 끝이 아닌 시작이었다. 그 이전만큼이나 어려운 길이 펼쳐졌다. 데뷔 초 유격수와 2루수를 오갔는데 번번이 수비 약점을 지적받았다. 타격과 선구안이라는 장점이 분명했지만, 지도자들은 그보다는 단점을 더 많이 봤고 갈수록 기회가 줄었다. ‘야구의 정석’과 맞지 않는 독특한 스윙은 정훈의 트레이드 마크였지만, 반대로 그대로는 성과를 내지 못한다고 꼬집은 이도 있었다.

롯데는 지난 시즌 종료 후 20명 가까운 선수들을 대거 방출했다. 가까운 동료들이 칼바람을 정면으로 맞은 상황. 지난해 88경기에서 타율 0.226, 2홈런, 17타점으로 ‘커리어 로’를 기록했던 정훈에게도 남 얘기 같을 리 없었다.

하지만 보여줄 반전이 남아있었다. 허문회 감독은 호주 애들레이드 스프링캠프 때부터 확실히 신뢰를 보여줬고, 개막전 선발로 내보냈다. 어려움을 겪던 2루수와 유격수 대신 지명타자와 1루수를 번갈아 맡겼다. 팀의 간판인 이대호에게 1루 수비를 맡기면서까지 정훈을 살리고자 했는데, 이들이 나란히 팀 공격을 이끌고 있으니 결과적으로 대성공이다.

벼랑 끝에서 꽃을 틔운 감동 스토리는 언제나 팬들의 심금을 울린다. 하지만 사연만으로는 프로세계에서 버티기 어렵다. 정훈은 올해 ‘커리어하이’ 페이스로 아쉬웠던 2%까지 채우고 있다. 이제는 이런 활약을 반전이 아닌 당연함으로 만들 차례다.

최익래 기자 ing1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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