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테랑이 자신의 존재가치를 보이는 방법은 다양하다. 오직 실력으로 그라운드에서 위용을 뽐내는 것, 후배들을 살뜰히 챙기며 자신이 쌓은 노하우를 세세히 알려주는 것, 야구 외적인 부분에서 친형처럼 분위기를 띄우는 것 등이다.

이대호(38·롯데 자이언츠)는 모두 해당된다. 여전히 팀 내에서 최고의 생산력을 뽐내는 타자인데 덕아웃에선 후배들 옆에서 망가짐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분위기 메이커로 나선다. 스프링캠프를 앞두고는 후배들을 데리고 사이판으로 떠나 몸을 만들었다. 이대호가 사이판에 뿌린 씨앗은 올해 롯데의 달콤한 열매가 됐다.

롯데는 올 시즌 스프링캠프를 2월부터 호주 애들레이드에서 소화했다. 이에 앞선 1월, 롯데 일부 선수들은 사이판으로 개인훈련을 떠났다. 올해는 이대호를 주축으로 내야수 정훈(33), 한동희(21)와 투수 박진형(26), 김현수(20·현 KIA 타이거즈)가 함께했다. 왕복항공료 정도를 제외한 22일간의 체류비용 대부분은 이대호가 부담했다. 벌써 5년 넘게 진행해온 일종의 루틴이다. 선수들의 상황에 따라 이대호의 동반자는 조금씩 달라졌지만, 미니 캠프 자체는 변함없이 진행돼왔다.

올해 ‘이대호 캠프’의 성과는 롯데를 지탱하는 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대호는 24일까지 85경기에서 타율 0.294, 13홈런, 65타점으로 활약 중이다. ‘에이징 커브’를 받아쳐 좌측담장을 넘기고 있다는 표현도 나온다. 미완의 거포였던 한동희는 76경기에서 타율 0.272, 11홈런, 39타점으로 이미 커리어하이를 찍었다. 설 자리가 좁아졌던 정훈은 57경기에서 타율 0.322, 7홈런, 39타점으로 다시 전성기를 맞았고, 박진형도 39경기에서 15홀드를 작성하며 팀의 허리를 든든히 하고 있다. 미니 캠프 도중 김현수는 롯데가 프리에이전트(FA)로 영입한 안치홍의 보상선수로 KIA 유니폼을 입었다. 펑펑 우는 김현수에게 이대호를 비롯한 선수들은 “너를 필요로 해서 지명한 것이니 기회일 것”이라며 위로를 건넸다.


“함께 사이판에 갔던 후배들 모두가 잘하고 있어 뿌듯하다. (정)훈이는 선배인 내가 봐도 우리 선수들 중 가장 열심히 했다. 그런 선수가 성적을 내고 있어 보기 좋다. (한)동희는 지금보다 더 잘해야 하는 선수고, 그럴 것으로 확신한다. 동희가 좀더 잘한다면 우리 팀이 더 쉽게 이길 수 있을 것이다.” 이대호의 이야기다.

일각에선 이대호가 4년 총액 150억 원의 거액을 받는 선수라고 해서 사이판에서 쓴 수천만 원의 금액이 대수롭지 않다고 비아냥댄다. 하지만 자신이 얼마를 갖고 있든 후배들에게 아무런 대가 없이 내주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라운드 안팎에서 이대호는 롯데의 정신적 지주 자격을 증명하고 있다.

최익래 기자 ing17@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