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를 구하라”

입력 2021-04-05 05: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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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공급부족 사태가 자동차에 이어 스마트폰 등 정보기술(IT)업계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미국은 공급망을 자국 중심으로 재편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사진은 삼성전자의 미국 텍사스 오스틴 공장.

자동차·IT·가전…반도체 품귀대란

한국GM, 현대차 감산 돌입
스마트폰·가전제품도 비상
미국 백악관 12일 긴급회의
반도체 쇼티지(shortage·공급부족)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다. 자동차에 이어 스마트폰과 가전까지 영향권에 들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이에 따라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은 천문학적인 투자로 새판짜기에 나섰다. 여기에 미국 정부가 글로벌 주요 반도체 기업을 불러 대책을 논의하기로 하는 등 국가 간 패권 경쟁까지 더해지며 불확실성이 더욱 높아지고 있다.

글로벌 자동차업계 생산차질 100만대
자동차 반도체 공급부족 사태가 국내 완성차 업계에도 직접적인 타격을 가하고 있다. 가장 먼저 감산에 돌입한 곳은 한국지엠이다. 지난 2월 8일부터 중형 세단 말리부, 준중형 SUV 트랙스를 생산하는 부평2공장의 가동률을 50% 줄였고,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현대차도 7일부터 14일까지 코나와 아이오닉5를 생산하는 울산 1공장을 휴업한다. 코나는 전방카메라에 들어가는 반도체를 구하지 못해 감산을 결정했고, 아이오닉 5는 PE 모듈을 구성하는 모터 수급 차질로 인해 감산에 들어간다.

현대차의 첫 전용 전기차인 아이오닉5에 탑재될 차량용 반도체 수급에는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지만, 공급부족이 계속될 경우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전기차에는 차량용 반도체인 ‘마이크로 컨트롤 유닛(MCU)’이 훨씬 더 많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기아도 쏘렌토, 카니발 등 인기 차종에 반도체 부품 공급을 몰아주며 상황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글로벌 시장 전체를 봐도 생산 차질이 심각하다. 토요타는 픽업트럭 툰드라, 혼다는 소형차 피트, 닛산은 소형차 노트 감산에 돌입했다. 또한 포드는 SUV 모델인 이스케이프 생산을 중단했고, 폭스바겐 역시 1분기 생산을 10만대 가량 감축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업계에서는 차량용 반도체 부족으로 인한 1분기 글로벌 자동차 업계의 생산 차질이 약 100만대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스마트폰 등 정보기술(IT) 업계도 반도체 공급부족 사태를 주시하고 있다. 애플의 최대 협력사 폭스콘은 “반도체 부족으로 아이폰 생산량이 10% 줄었다”고 밝혔으며, 샤오미도 “스마트폰용 반도체가 극심하게 부족하다”고 전했다. 삼성전자도 “반도체 공급, 수요의 밸런스가 심각하다”며 ”2분기부터 영향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반도체 공급 부족 사태의 원인은?

반도체 공급 부족 사태의 직접적인 원인은 자동차 업계의 수요 예측 실패에 있다. 지난해 상반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자동차 수요가 감소하자 자동차 업계에서는 차량용 반도체 발주량을 줄였다. 하지만 지난해 하반기부터 자동차 수요가 V자로 반등하면서 차량용 반도체 공급 부족 사태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미국 텍사스 한파로 인한 대규모 정전도 공급 부족 사태에 기름을 부었다. 텍사스 오스틴에는 삼성전자와 NXP 등 반도체 생산시설이 있다. 특히 NXP는 차량용 반도체 제조 기업이어서 물량 부족은 더욱 심화됐다.

차량용 반도체(MCU)는 물량을 단기간에 늘리는 것이 불가능하다. 차량용 반도체의 리드 타임(발주에서 실제 공급까지 걸리는 시간)은 최소 12∼20주 수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재는 글로벌 시장 전체에 쇼티지가 걸려있기 때문에 리드 타임은 50주 이상으로 늘어났다.

차량용 반도체는 신규 업체의 진입 장벽도 높다. 시스템 반도체에 비해 수익성은 낮은데, 자동차 안전과 직결되기 때문에 훨씬 더 높은 신뢰성과 안전성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업계는 3분기에는 물량 부족이 해소될 수 있다고 보고 있지만, 최악의 경우 내년 연말까지 공급 부족 사태가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전기차 시장 확대도 차량용 반도체 공급 부족 사태의 한 원인이다. 차량용 반도체(MCU)는 일반 차량에 평균 200개, 전기차에는 2∼3배가 더 많이 들어간다. 현대차 아이오닉5의 경우 약 500개의 차량용 반도체가 필요하다. 향후 자율주행차 시대에는 차량 한 대에 약 2000개의 차량용 반도체가 필요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국내 자동차 기업의 차량용 반도체 자체 수급을 위한 근본적인 해법이 필요한 이유다.

반도체 패권 경쟁 본격화

반도체 부족 현상은 이제 국가 간 패권경쟁으로 이어지고 있다.

주요 외신에 따르면 미국 백악관은 12일 관련 기업을 불러 긴급대책 회의를 연다. 지엠과 글로벌 파운드리 등 자동차와 반도체 관련 기업이 참석할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기업 중에선 삼성전자가 포함됐다. 삼성전자는 미국 텍사스주 오스틴에 파운드리(위탁생산) 공장을 운영하고 있으며, 텍사스와 뉴욕 등을 대상으로 170억 달러(약 19조 원) 규모의 파운드리 투자도 검토하고 있다.

미국 정부가 반도체 관련 기업들과 머리를 맞대는 이유는 표면적으로는 반도체 부족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공급망을 미국 중심으로 재편하려는 움직임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일각에선 동맹국과 함께 중국과의 반도체 패권 경쟁을 본격화했다는 관측까지 나온다. 현재 전 세계 반도체 제조는 약 75%가 중국과 동아시아에 집중돼 있다. 이런 편중을 해소하고 미국을 반도체 중심 국가로 만든다는 것이 미국 정부의 계획이다. 최근 인텔이 파운드리 진출을 선언하며 약 22조 원을 투자한다고 밝힌 것과 미국 마이크론, 웨스턴디지털이 일본 낸드플래시업체 키옥시아 인수를 추진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원성열 기자 sereno@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김명근 기자 dionys@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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