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 발리볼] 페퍼저축은행 탄생의 나비효과

입력 2021-06-27 11:02:00
카카오톡 공유하기
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스포츠동아DB

신생팀 페퍼저축은행의 등장을 많은 배구 팬이 반겨했지만 지금 배구계 여기저기서 걱정하는 목소리가 더 자주 들린다. 프로팀이 창단되면 꿈나무들을 포함해 많은 배구인들에게 취업의 기회가 늘어나 좋아해야겠지만 꼭 그렇지만은 아닌 게 현실이다.

IBK기업은행은 지난 시즌 뒤 임의탈퇴로 내보냈던 최수빈을 영입했다고 25일 발표했다. V리그를 떠난 뒤 실업배구 포항시체육회 소속으로 뛰던 그는 1년 만에 재도전의 기회를 잡았다. 이밖에 페퍼저축은행 등 몇몇 구단은 실업배구선수의 영입을 추진 중이다. 실업배구선수들에게 프로팀의 영입제안은 경사스러운 일이지만 주전선수를 내줘야하는 실업팀은 고민이 많다. 가뜩이나 선수 숫자가 적은 팀에서 에이스를 빼앗기면 많은 문제가 생긴다.

현재 여자 실업배구는 지방자치단체가 운영하는 대구시청, 양산시청, 수원시청, 포항시체육회 등 4개 팀이 있다. 팀마다 10명 안팎의 선수를 보유하고 있다. 이들 가운데 4명이 이번에 프로팀으로 옮겨간다. 선수를 데려가면서 프로팀에서 보상을 해주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다. 임의탈퇴선수의 권리를 프로팀이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서다.

실업팀의 입장에서는 프로팀이 원하면 선수를 빼앗길 수밖에 없다. 그 공백을 어떤 식으로건 메워야하는데 현재 여자배구의 허약한 생태계에서는 선수공급이 쉽지 않다. “실업팀에서 뛸만한 기량을 가진 선수를 눈을 씻고 봐도 찾기 힘들다”고 어느 감독은 말했다. 선수수급의 불균형은 갈수록 심각해졌으면 심각해졌지 앞으로도 좋아지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사진제공 | 국제배구연맹 홈페이지


여자배구선수 숫자가 이를 증명한다. 2021년 중고배구연맹에 등록된 여자고등학교 팀은 17개다. 대회출전이 가능한 최소규모의 선수구성을 한 팀도 많다. 2005년 V리그 출범 이후 17시즌 동안 신인드래프트에 지원했던 여고졸업예정 선수는 총 504명이다. 한 해 평균 29.6명이다. 2014~2015시즌 46명 지원이 역대 최대규모였고 2008~2009, 2009~2010시즌은 역대최소인 20명만 지원했다. 이들 가운데 프로팀에서 지명해간 선수는 총 276명이다. 비율로 치면 54.7%로 졸업생 두 명 가운데 한 명은 프로선수가 됐다.

‘낙타가 바늘귀를 통과할 정도’라는 요즘의 취업환경과 비교한다면 50%가 넘는 취업률을 마냥 좋게 볼 수만은 없다. 프로선수 문턱이 그만큼 낮다는 증거다. 이런 텃밭에서 프로 6개 팀이 운영되고 이제는 7개 팀으로 늘어났다. 선수공급의 젖줄이 마른 환경에서 리그의 수준이 높아질 수 없다. 기량이 좋은 몇몇 선수들에게만 모든 구단이 목을 매고 40대의 주전선수와 5년이 지난 선수를 다시 현역으로 불러들이는 비정상적인 환경을 만들었다.

설상가상, 선수숫자도 문제지만 배구 꿈나무들의 기량도 점점 떨어지고 있다. 지금과 같은 상황이라면 누가 제8구단 창단을 원해도 나서서 막아야 할 판이다. 현재 여자실업배구는 4개 팀과 여자대학교 팀까지 포함해서 8개 팀이 전국체전에 참가한다. 만일 이 가운데 어느 팀에서 선수구성이 힘들어 무너지면 최소 8개 팀이 필요한 전국체전 여자배구경기도 사라진다. 도미노처럼 그 영향을 받아 다른 실업팀들도 줄줄이 팀을 해체할 수 있다. 해결책으로 프로팀과 실업팀이 연고를 맺고 사실상의 2군 운영을 위탁하는 방법 등을 생각해볼 수 있지만 아직은 모두가 남의 일이라며 손을 놓고 있다.

김종건 기자 marco@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오늘의 핫이슈

뉴스스탠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