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는 엔딩 아닌 책갈피…진종오는 ‘포기’를 말하지 않았다

입력 2021-07-27 15: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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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종오.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색깔에 관계없이 메달 하나씩은 당연하듯 챙겼다. 그렇기 때문에 메달 없이 선수촌을 떠나는 지금이 낯설 수밖에 없다. 하지만 수확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기에 결코 ‘빈 손’은 아니다. ‘사격의 신’ 진종오(42·서울시청)는 또 다른 이야기를 준비할 것이다.

진종오-추가은(20·IBK기업은행)조는 27일 도쿄 아사카 사격장에서 열린 2020도쿄올림픽 사격 10m 공기권총 혼성 본선 1차전에서 575점(진종오 289점·추가은286점)을 기록, 전체 9위에 올라 본선 2차전 진출에 실패했다. 본선 1차전은 30분 동안 남녀 30발을 각각 쏜 뒤 합산 점수가 높은 8개 팀이 2차전에 향한다. 진종오-추가은조는 하니예흐 로스타미얀-자비드 포루기(이란)조와 동률을 이뤘지만 10점 획득수가 부족했다. 10점을 이란조는 18개, 진종오-추가은조는 13개 쐈다 같은 종목에 출전했던 김모세-김보미조 역시 합계 573점(11위)으로 본선 2차전에 오르지 못했다.

진종오로서는 아쉬움을 남긴 채 도쿄를 떠나게 됐다. 24일 남자 10m 공기권총에 이어 혼성까지 결선에 실패했다. 자신의 주종목이었던 50m 권총이 사라지며 혼성전이 생겼기 때문에 여러 모로 아쉬웠을 터다. 2004아테네대회부터 5연속 출전한 진종오가 메달 없이 대회를 마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2016리우데자네이루대회까지 금메달 4개, 은메달 2개를 목에 걸었던 진종오는 이번 대회 메달 1개만 추가했어도 양궁 김수녕(금4·은1·동1)을 제치고 한국 올림픽 최다 메달 신기록의 주인공이 될 수 있었다.

선수 본인이 누구보다 아쉬웠을 테지만 자신보다 후배를 더 챙겼다. 진종오의 혼성전 파트너는 22세 어린 후배 추가은. 사격의 신과 호흡을 맞춘다는 것이 후배 입장에서는 영광인 동시에 부담이었을 것이다. 진종오는 “난 욕을 먹어도 되지만 (추)가은이는 아니었으면 좋겠다. 진종오라는 이름 때문에 포커스를 많이 받아 부담됐을 것이다. 다른 선수랑 했다면 더 편했을 것”이라고 반성했다. 경기를 마친 뒤 서로의 등번호판에 사인과 메시지를 적어 교환했는데, 추가은은 ‘좋은 추억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진종오는 ‘가은아, 이제는 승리할 날들만 남았다’고 적었다. 제왕의 품격이었다.

상당한 스트레스 속에서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했으니 지칠 법도 하다. 하지만 진종오는 “당분간 총을 멀리할 것”이라면서도 “아직 은퇴라는 단어를 떠올리고 싶지 않다. 직장인들에게 회사 그만두라는 것과 같다”며 “(이번 대회도) 정정당당히 선발전을 거쳐서 올라왔다”고 말했다. 2024파리대회 출전이 마지막 목표라고 숱하게 밝혀왔던 사격의 신은 아쉬움을 삼키고 3년 뒤를 겨냥하고 있다. 이번 대회의 아쉬움은 진종오가 쓴 두꺼운 전설의 책 엔딩이 아닌 책갈피쯤이다.

최익래 기자 ing17@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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