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멘탈 굉장히 단단해졌다” 미소 되찾은 김보름의 못다한 이야기들 [SD 인터뷰]

입력 2022-03-02 11:3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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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매스스타트의 간판스타 김보름이 2월 28일 스포츠동아와 인터뷰를 마친 뒤 포즈를 취하고 있다. 강산 기자

대한민국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매스스타트의 간판 김보름(29·강원도청)에게 2022베이징동계올림픽은 미소를 되찾게 해준 값진 대회였다.

김보름은 4년 전인 2018평창동계올림픽 여자 팀추월 준준결선에서 왕따 주행의 가해자로 지목돼 사실 확인조차 없이 마녀사냥을 당했다. 이에 따른 정신적 고통을 치유하는 데까지 걸린 시간은 엄청나게 길었다. 당시 여자 매스스타트에서 은메달을 따낸 뒤에도 익명이라는 핵무기가 끊임없이 그를 공격했기 때문이다. 2020년 11월 당시 팀추월 멤버였던 노선영(은퇴)을 상대로 ‘왕따 주행’ 논란과 관련해 제기했던 손해배상 청구소송의 재판 결과(일부 승소)가 나온 2022년 2월 17일까지 그랬다.

2월 20일 베이징올림픽 여자 매스스타트에서 5위의 성적을 거둔 직후 “‘응원을 받는다는 게 이런 기분이구나’라고 느끼니 (평창올림픽 때) 메달을 땄을 때보다 더 행복하다”던 그의 말에는 큰 울림이 있었다. 평창대회 당시 관중석에서 숨죽여 딸의 경기를 지켜봤던 어머니도 대회를 마치고 돌아온 김보름에게 “고생 많았다”고 격려했다.

2월 28일 스포츠동아와 만난 김보름은 의연하게 과거를 돌아봤다. 조금씩 악몽에서 벗어나고 있던 2019년, 2020년의 모습과는 또 달랐다. 가장 큰 차이는 특유의 밝은 미소를 되찾은 것이다. 인고의 세월을 거치며 그는 엄청나게 단단해졌다. ‘힘들어하는 이들에게 조언을 해줄 수 있냐’는 질문에도 주저 없이 답했다. 의도하지 않은 ‘멘탈(정신력) 트레이닝’의 과정을 누구보다 소중히 여기고 있었다.

김보름(오른쪽).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베이징올림픽 직후 동계체육대회까지 소화했다. 힘들진 않나.

“피곤하고 힘들기도 하지만, 올림픽 때 많은 응원을 받았다. 국내 대회에서도 좋은 모습을 보여드려야 한다는 생각에 (동계체전에) 출전했다.”

-베이징의 여운이 아직 남아있는가.

“밖에 나가지 못해 답답하기도 했고, 늦은 경기 일정 등 힘든 점이 있었지만, 내게 베이징올림픽은 과거의 힘들었던 시간들을 잊게 해준 좋은 기억만 남아있다.”

-긍정적인 마인드로 베이징올림픽을 준비할 수 있었던 비결은.

“(왕따 주행 논란과 관련해) 묻혀있던 진실이 언젠가는 밝혀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언젠가는 내 얘기를 들어줄 날이 언젠가는 온다고 믿었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나는 운동선수니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열심히 운동해서 잘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뿐이었다. 그래서 운동을 포기할 수가 없었다.”

-공교롭게도 레이스를 사흘 앞두고 재판 결과가 나왔다.

“4년간 정말 많은 일들을 겪었다. 넋이 나간 상태로 보낸 날도 많았다. 재판 과정이 힘들었다. 결과가 나왔을 때도 일단 경기에 집중하자고 다짐했고, 바로 연습하러 갔다. 그런데 정확한 사실을 밝혀지고 많은 분들께 응원을 받았다. 20년간 선수 생활을 하며 수많은 경기에서 나가서 메달을 따고 했지만 응원을 받는다는 그 느낌이 정말 좋았다. 많은 분들이 알아주시고, 응원해주셔서. 메시지를 하나하나 읽으며 큰 힘을 얻었다. 그렇게 경기도 정말 잘하고 싶었다. 응원해주신 만큼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었다. 올림픽이 끝나고 귀국한 지 1주일이 넘었는데, 혼자 집에 있다 보면 이런저런 생각을 많이 한다. 생각나서 울컥할 때도 많다.”

김보름. 스포츠동아DB


-상대 측에서 항소를 했다. 법정 다툼이 완전히 끝나진 않았는데.

“1심에서 상대의 잘못이 인정돼서 그런 결과가 나온 것이다. 진실은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우여곡절이 많았다. 스케이트를 처음 시작했던 때로 돌아간다면 같은 선택을 할 텐가.

“그럴 것이다(웃음). 지금보다 더 노력해서 더 좋은 선수가 되려고 할 것이다. 한번 해 봤으니까 다음에도 더 잘할 수 있다. 2010년에 처음 국가대표가 됐는데,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정말 단 하루도 스케이트에 진심이 아니었던 날이 없었다. 스케이트는 나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너무 좋았다가도 ‘얘(스케이트)가 없으면 안 되겠다’고 느끼기도 하고, 보기 싫을 때도 있었다. 그래도 내 인생에서 빼놓을 수 없다.”

-언제부터 매스스타트의 매력에 빠졌나.

“매스스타트가 (2011~2012시즌) 월드컵시리즈에서 테스트 이벤트로 열렸다. 그때 한번 해보고 나니 쇼트트랙과 방식이 비슷한데 정말 재미있었고, 또 첫 경기를 잘했다. 그러다 보니 ‘이게 정식종목이 되면 좋겠다’고 항상 생각했다. 어린 시절 쇼트트랙을 했던 게 내게는 많이 도움이 됐었고, 기존의 장거리 종목보다는 더 스릴이 있었다.”

-쇼트트랙에서 스피드스케이팅으로 전향하게 된 계기도 궁금하다.

“쇼트트랙에 흥미가 떨어지던 시기였다. 그만둘 생각을 하다가 ‘스피드스케이팅도 한번 해보고 나서 그만두자’ 싶었다. 처음에는 모두가 반대했다. 쇼트트랙에서 엄청나게 잘했던 선수도 아니고, 두각을 나타낸 적도 없었다. 그러다 보니 ‘왜 무모한 도전을 하냐’는 시선이 많았다. ‘어차피 안될텐데’라는 말도 들었다. 그러니까 더 해보고 싶어서 밀어붙였다.”

김보름. 스포츠동아DB


-인생을 바꾼 결정이었던 것 같다. 그렇다면 4년 뒤 밀라노올림픽 출전 욕심도 있나.

“출전하고 싶다. 올림픽은 선수로서 한 번이라도 가보고 싶은 무대다. 사실 베이징에 가기 전까진 ‘이번이 마지막이 아닐까’라고 많이 생각했다. 하지만 베이징에 다녀오고 나니 올림픽을 한 번 더 가보고 싶다는 의지가 생겼다.”

-4년의 시간을 거치며 정신적으로 더 단단해졌다고 느끼고 있나.

“진실이 밝혀질 것이란 믿음이 있었기에 버틸 수 있었다. 그 어떤 단어로도 표현이 안 될 만큼, 고통스러운 시간들이었다. 시간이 지나고 생각해보면, 지난 시간들이 없어지진 않겠지만, 내가 더 긴 인생을 살며 그동안 겪은 일들이 성장의 발판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멘탈 측면에선 굉장히 단단해졌다.”

-이제는 힘들어하는 누군가가 이겨낼 수 있도록 조언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것 같다.

“직접 메시지를 보내주신 분들도 많다. ‘내가 이겨내는 모습을 보고 힘을 얻었다’고들 하시더라. 스스로 컨트롤하려고 했던 부분은, 생각의 차이인 것 같다. ‘나는 누구 때문에, 어떤 일 때문에 힘들다’는 부정적인 생각을 하는 것보다 잘됐을 때를 상상하며 이겨냈다. 힘든 일에 갇혀 있으면 더 힘들어지더라. 정말 생각하기 나름이다.”

-향후 계획이 궁금하다.

“올 시즌 남은 경기들은 출전하지 않고, 휴식을 취하며 다음 시즌을 어떻게 준비할지 고민해야 한다. 또 방송을 통해 밝은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은 마음도 크다. 준비하는 것도 있다(웃음).”

강산 기자 posterboy@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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