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근 감독. 스포츠동아DB

이병근 감독. 스포츠동아DB


위기의 수원 삼성을 구원할 소방수로 이병근 감독(49)이 낙점됐다. 1996년 창단 멤버로 합류해 2006년까지 선수로 활약한 또 다른 레전드가 수원의 지휘봉을 잡았다. 2022시즌 개막 후 단 1승, 최근 7경기 무승(4무3패)의 부진에 빠진 수원이 사령탑 교체라는 강수를 뒀다. 2020시즌 도중 부임한 박건하 감독은 2년을 채우지 못한 채 지휘봉을 내려놓았다.

2010년대 수원 감독들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리얼 블루’다. 구단의 정체성과 방향을 가장 잘 이해하고 있는 레전드 출신 지도자를 선임해왔다. 2010년 윤성효 감독이 구단 선수 출신으로는 처음 사령탑에 취임한 이후 서정원(2013~2018년)~이임생(2019~2020년)~박건하(2020~2022년) 감독으로 이어졌다. 사령탑 교체 과정에서 임시로 팀을 이끌었던 감독대행들 역시 모두 수원 선수 출신이었다.

지금까지 리얼 블루 정책은 성공보다는 실패에 가깝다. 윤 전 감독은 역대 수원 사령탑들 가운데 최고 승률 기록(51%)을 보유 중이지만, 당시 우승을 바라던 팬들의 눈높이를 맞추지는 못한 채 물러났다. 서 전 감독은 2차례 K리그 준우승(2013·2014년), FA컵 우승(2016년) 경험이 있지만, 팬들에게 실망감을 안긴 채 2018년을 끝으로 수원을 떠났다. 2019년 FA컵 우승을 안긴 이임생 전 감독 역시 성공적이었다고 평가하는 의견은 극소수다. 최근까지 팀을 이끈 박 전 감독은 구단 산하 유스인 매탄고 출신 선수들을 적극적으로 기용하며 새 바람을 일으키는 듯했지만, 지난해 중반 이후부터 올해까지 이어진 극심한 부진을 끊지는 못했다.

리얼 블루 정책의 맹점은 지나치게 구단의 정체성을 강조한다는 것이다. 레전드 선수 출신 지도자에게 지휘봉을 맡긴다는 의미가 크긴 하지만, 수원은 1995년 창단해 1996시즌에야 K리그에 처음 참가한 팀이다. 리그를 대표하는 명문 구단이지만, 역사가 그리 길지는 않다. 그 때문에 선수로 뛰었던 인물이 감독을 맡을 정도의 지도자 경험을 쌓을 시간은 부족했다. 실제로 리얼 블루 정책에서 선임된 감독들 모두 프로팀을 이끌어본 경험이 없거나 매우 짧았다.

다행히 새로 지휘봉을 잡은 이병근 감독은 지도자로서 경험의 깊이가 다르다. 축구계에선 리얼 블루 정책뿐 아니라 현장 경험을 이 감독의 선임 이유로 보고 있다. 2013년 친정팀 수원의 코치가 된 그는 수석코치를 거쳤고, 2018년에는 감독대행으로 잠시 팀을 이끌기도 했다. 대구FC로 이적해 수석코치(2019년)~감독대행(2020년)~감독(2021년) 등 여러 역할을 두루 수행했다. 감독대행이었던 2020시즌에는 5위, 정식 사령탑으로 승격된 2021시즌에는 구단 역대 최고 성적인 3위를 기록했다.

빠른 선수단 파악이 가능하다는 점 또한 기대 요소다. 수원을 비롯한 K리그 각 팀은 현재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휴식기를 보내고 있다. 2018년을 끝으로 수원을 떠났지만, 지난해까지 K리그 현장을 누볐기에 이 감독이 수원 선수들을 알아가는 데는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승우 기자 raul164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