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들의 세상에서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박수예의 ‘시마노프스키 : 신화’ [음반리뷰]

입력 2023-05-21 16:2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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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들의 세상에서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박수예의 연주는 지극히 회화적이다. 스토리는 끝없이 중첩되어 있는 장면들 속에서만 지극히 소소한 안내서로 작동할 뿐이다.

카롤 시마노프스키(1882~1937)는 프랑스 인상주의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은 작곡가였다. 우크라이나에서 태어나 스위스에서 사망했지만 폴란드의 작곡가로 알려져 있다. 그의 작품들은 후기 낭만주의의 특성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지만 폴란드의 민족성을 굳건하게 중심에 놓고 독자적인 작풍을 선보였던 작곡가이다.

바이올리니스트 박수예의 다섯 번째 인터내셔널 음반 ‘시마노프스키 : 신화’는 오롯이 시마노프스키의 작품만으로 트랙을 채웠다. 그중 1~3번 트랙이 ‘신화 Op.30’이다. 이밖에 바이올린 소나타 작품 9, 로망스 작품 23, 야상곡과 타란텔라 작품 28, 아이타코 에니아의 자장가 작품 52가 차례로 녹음되어 있다.

박수예는 분명 20대 초반의 연주자가 가질 수 없는 것을 움켜쥐고 있다.
자신이 갖고 있는 바이올린(현재는 1753년 산 지오반니 바티스타 과다니니로 알려져 있다)에 깊숙이 내재된 소리의 아름다움을 기름을 짜듯 극한까지 끌어냈다. ‘신화’에서 들려준 신비한 감성은 귀에 대한 의구심이 들 정도다.


밤하늘을 가르며 뾰족하게 떨어지는 유성, 자욱한 안개, 납가루를 뿌려놓은 듯 무겁게 가라앉은 공기, 긴 한숨이 손에 잡힐 듯 눈앞에서 아른거린다.
이 모든 것들을 지나오는 동안 이 영리한 연주자가 남겨둔 마지막 한 방울의 감성은 10번 트랙 자장가에서 ‘톡’ 소리를 내며 떨어진다.

멈춰버렸던 68분. 신들의 세상에서 현실로 돌아오자, 비로소 초침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양형모 기자 hmyang0307@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사진제공 | 목프로덕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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