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만에 가슴에서 꺼낸 문학열정…‘60대 문학청년’ 꿈을 이루다

입력 2024-01-22 13:2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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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깎이 수필가’ 임기원(오른쪽) 씨가 지난해 12월20일 대전 중구문화원에서 열린 ‘문학사랑’ 제128회 신인작품상 시상식에서 수필부문 신인작품상을 수상하고 있다. 사단법인 문학사랑협회가 발행하는 ‘문학사랑’은 연중 4회 발행하는 계간지로 시, 단편소설, 수필 등 한국문학의 미래를 이끌 신인들을 발굴해 왔다.

공학박사 임기원 씨, 66세 나이에 수필가로 등단
37년간 한국표준과학연구원서 연구하다 정년퇴직
대학신문서 글쓰기 첫 발 “영원한 문학의 수원지”
정년퇴직한 뒤 문학의 열정에 새롭게 불을 댕긴 ‘60대 문학청년’이 뒤늦게 신인 수필가로 등단해 화제다.

주인공은 대전 대덕연구단지 한국표준과학연구원에서 37년을 근무한 뒤 정년퇴직한 공학박사 임기원(66) 씨다. 임 씨는 지난해 말 대전의 문학전문 계간지인 ‘문학사랑’을 통해 신인 수필가로 등단했다. ‘문학사랑’이 공모한 ‘2023년 겨울호, 제128회 신인작품상’에 응모해 ‘엄마의 처방전’ ‘들마루’ 등 수필 2편이 당선된 것.

임 씨는 한양대 정밀기계과를 졸업하고 한국표준과학연구원에 입사해 연구원으로 근무하며 평생 ‘공학’과 인연을 맺고 살았다. KAIST에서 공학박사를 취득한 임 씨는 연구원 재직 시절 석유류 측정 유량계를 교정하는 경질류 유량 표준장치를 개발해 산업계에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뼛속까지 공학인’인 임 씨의 가슴 깊은 곳엔 문학에 대한 열정과 창작열을 시커먼 참숯처럼 품고 있어 언제든 불씨만 던지면 훨훨 탈 기세였다. 그러다 정년퇴직 후 60대 중반에 신인 수필가로 늦깎이 등단하며 문학 재능을 인정받았다.

임 씨는 대학시절 한양대학보인 ‘한대신문’ 기자생활을 하며 글쓰기와 인연을 맺었다. 대학 캠퍼스를 누비며 가슴이 온통 ‘정의’로 채워졌던 시절, ‘차가운 머리와 따뜻한 가슴’으로 기사를 썼고 학생기자 칼럼인 ‘사자후’라는 코너를 통해 자신의 필맥에 영양분을 주었다. 그 소중한 경험이 오늘의 수필가로 이끄는 씨앗이었다.

임 씨는 “오랫동안 글 쓰는 일을 한 적이 없고, 미분방정식이나 풀고 있던 ‘공돌이’가 늦게나마 문학상을 받게 된 것은 ‘한대신문’의 소중한 경험 덕”이라고 말했다.

임 씨는 글쓰기의 전문적인 훈련을 받지는 않았지만 글쓰기 작업은 평생 곁에 두고 살았다. 연구원 시절 연구를 수행하고 보고서를 쓰고 논문을 작성하는 일이 일상이었다. 사실과 데이터를 근거로 객관적으로 작성했던 보고서는 그에게 ‘주제의 명확성’과 ‘소재의 객관성 및 다양성’이라는 ‘두 개의 글쓰기 칼’을 선물로 주었다.

‘늦깎이 문학인’ 임 씨에게 문학과 글쓰기는 어떤 의미일까.

임 씨는 “연구 보고서를 쓰던 버릇이 아직 남아 있어서 사실이 아닌 이야기를 쓰기가 마음이 거북하고 거짓말하는 느낌이 든다”며 “(글을 쓴다는 것, 문학을 한다는 것은) 결국 내가 살아온 이야기를 쓰게 되는데 60년 동안 미루어 둔 밀린 일기를 한꺼번에 쓰는 기분이다. 일기장을 공개하는 것은 속살을 내보이는 여인네 심정이 될 것 같다”며 ‘초보 수필가’로서의 심정을 내비쳤다. 이어 “사실이 아닌 이야기를 뻔뻔하게 사실같이 꾸며서 쓸 수 있을 때, 그때쯤 문학인이 되기 위한 길을 시작할 수 있을 것 같다”며 조심스러워하기도 했다.

임 씨의 글엔 어떤 힘이 있을까. 그의 글이 큰 장점 중 하나는 세심한 관찰력이다. 공학인으로 살아온 ‘디테일’이 몸에 배어서 나오는 힘일 것이다.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수필 들마루에서 묘사된 ‘해가 넘어갈 무렵의 하늘은 밝고 아름답다. 병풍처럼 마당을 둘러싼 감나무 사이에 아기 주먹만 한 거미가 집을 짓는다. 날아가는 참새도 낚아챌 기세로 크고 튼튼한 거미줄을 흔들흔들하면서 저녁거리를 준비하고 있다. 밝은 하늘을 배경으로 너무나 선명하였다.’ 마치 눈앞에서 그려진 풍경화와 세밀화를 보는 듯하다. 세심한 관찰력 없인 불가능한 것이다.

‘문학사랑’의 심사를 맡은 박종국(수필가·아동문학가) 리헌석(문학평론가) 위원은 “세심한 관찰과 자연스러운 문체를 갈고닦는 임기원의 수필은 윤기가 넘칠 것”이라고 그의 글을 평가했다.

연제호 스포츠동아 기자 sol@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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