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일 텔덱스 스튜디오 10년간 녹음, 9CD 전곡 발매
예술의전당·대구콘서트하우스에서 기념 리사이틀
마틴 자우어·토마스 휩시와 함께한 명품 프로젝트
‘베토벤 스페셜리스트’로 불리는 피아니스트 최희연이 마침내 10년에 걸친 대장정을 마무리했다.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곡 녹음 프로젝트가 결실을 맺고, 전곡 앨범이 3월 28일 발매됐다. 이를 기념하는 리사이틀도 4월 2일 대구콘서트하우스 그랜드홀, 4월 10일 예술의전당 IBK챔버홀에서 열린다.예술의전당·대구콘서트하우스에서 기념 리사이틀
마틴 자우어·토마스 휩시와 함께한 명품 프로젝트
이번 앨범과 공연의 부제는 ‘TESTAMENT’. 증언, 유언, 유산이라는 의미를 담았다. 최희연은 “베토벤의 음악은 강력한 레토릭을 지녔다. 그의 소나타들은 강한 메시지를 증언하고 있으며, 이것이 그의 유언이자 후대에 남긴 유산”이라고 밝혔다.
최희연은 2002년부터 4년간 금호아트홀에서 베토벤 소나타 전곡 연주 시리즈를 통해 대중과 평단의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다. 당시 전석 매진을 기록했으며, 2005년에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로부터 ‘올해의 예술상’을 수상하며 그 이름을 각인시켰다. 이후에도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 첼로 소나타, 피아노 트리오 등 베토벤 레퍼토리를 중심으로 독일, 미국 등지에서도 활발히 활동하며 ‘베토벤 스페셜리스트’로 확고히 자리매김했다.
녹음은 2015년부터 독일 베를린의 텔덱스 스튜디오에서 시작됐다. 독일 클래식 음반 제작의 전설적 인물인 프로듀서 마틴 자우어와, 베를린 필하모니 전속 조율사이자 브렌델과 안드라스 쉬프 등이 신뢰한 토마스 휩시가 함께했다. 사용된 피아노는 뵈젠도르퍼였으며, 뵈젠도르퍼 본사로부터 직접 지원받았다.
녹음은 당초 2003년 금호문화재단의 제안으로 추진됐지만, 예기치 않은 개인사와 후원자의 갑작스러운 별세로 중단됐다. 이후 ‘올해의 예술상’ 수상이 재도전의 불씨가 됐고, 10년 뒤 마침내 녹음이 재개됐다. 첫 앨범은 2019년, 두 번째는 2021년에 데카 레이블로 발매됐으며, 이번 전곡집은 기존 앨범 리마스터링을 포함한 총 32곡을 9장의 CD에 담았다.
최희연은 이번 리사이틀에서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21번 ‘발트슈타인’, 그리고 후기 소나타 30, 31, 32번을 연주한다. 그는 “후기 소나타는 베토벤의 예술적 진화가 절정을 이룬 작품들이다. 발트슈타인은 어둠에서 빛으로 나아가는 서사시와 같다”고 말했다.
그는 음반 라이너노트에서 “베토벤의 32개 피아노 소나타는 그가 살아온 인생의 기록”이라며, “그의 작품에서 드러나는 고군분투와 내면의 진통, 그리고 그 너머의 숭고함을 피아노를 통해 마주하게 된다”고 밝혔다. 실제로 최희연의 베토벤 소나타 전곡 녹음은 단순한 연주를 넘어선 ‘예술적 증언’에 가깝다.
6세에 인천시향과 협연하며 데뷔한 최희연은 1999년, 서울대학교 최초로 공개 오디션을 통해 교수로 임용됐다. 이후 교육자이자 연주자로서 국내외를 오가며 후학을 양성하고 있다. 2023년부터는 미국 존스 홉킨스 피바디 음악원 교수로 재직 중이다. 런던 길드홀, 뉴욕 맨해튼, 헬싱키 시벨리우스 아카데미 등 주요 음악대학에서 마스터클래스를 진행했고, 베토벤 국제 콩쿠르와 프랑스 에피날 콩쿠르 등 다수 국제 콩쿠르의 심사위원장을 역임했다.
이번 앨범의 해설과 후기에서 그는 자신의 20년 음악 여정을 담담히 고백한다. “팬데믹 시기, 외부와 고립된 시간 속에서 오히려 베토벤에 온전히 몰두할 수 있었다. 텔덱스 스튜디오는 내게 성소와도 같았고, 음악은 고요하고도 거룩했다”고 회상했다.
그는 이번 음반을 스승 고(故) 한스 레이그라프 교수, 금호문화재단 고(故) 박성용 회장, 그리고 고(故) 문계 회장에게 헌정했다. “이들이 없었다면 이 긴 여정은 시작조차 못했을 것이다. 이 음반은 그들에게 드리는 나의 헌사”라고 밝혔다.
최희연의 베토벤은 단순한 연주를 넘어선 시대적 기록이며, 거장의 흔적이다. 그리고 그 마지막 음은 ‘TESTAMENT’라는 이름 아래, 청중과 후대 음악인들에게 깊은 울림을 남긴다.

양형모 기자 hmyang0307@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