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한용왕영은의행복한아침편지]나눌수록커지는‘올케사랑’

입력 2008-03-25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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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케 언니가 한 달 전에 셋째를 낳았습니다. 초등학교 1학년, 유치원 다니는 일곱 살, 그리고 늦둥이라면 늦둥이인 예쁜 막내딸도 낳은 거지요. 하지만 요 꼬물꼬물 움직이는 예쁜 막내를 낳기까지 언니는 산후 조리로 고민이 참 많았답니다. 왜냐하면 몇 년 전 올케 언니의 친정어머니가 돌아가셨고, 또 언니의 시어머니인 저희 엄마가 몇 년 전 쓰러지셔서 한 쪽 몸을 못 쓰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거기다 산후조리원은 가격이 너무 비싸서 언니가 고민이 많았습니다. 그걸 보고 제가 “언니 걱정 마! 내가 다 해줄게. 우리 엄마 몫까지 내가 다 해 줄 테니까 걱정 말고 나만 믿어”라며 선뜻 도우미로 나서게 됐습니다. 사실 5개월 전에 제가 아기를 낳았을 때 저도 똑같은 고민을 했습니다. 친정어머니는 병으로 누워 계시고 시어머님은 연세가 너무 많으셔서 젖병 소독도 하실 줄 몰랐습니다. 그렇게 제가 고민할 때 언니가 아무 말 없이 오빠랑 저희 집을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주섬주섬 제 옷이랑 아기 물건을 차에 싣더니 언니 특유의 무뚝뚝한 말투로 “아가씨! 찍소리 말고 내가 하자는 대로 해. 맛 없어도 투덜대지 말고 맘에 안 들어도 좀 참아야 해. 무조건 우리 집에서 내가 주는 대로 먹는 거야. 알았지?” 하면서 앞장섰습니다. 그때 고마우면서도 미안하고, 좋으면서도 불편하고 마음이 참 복잡했습니다. 그렇게 오빠네 집에 도착했을 때 저는 놀라고 말았습니다. 올케 언니가 언제 그런 걸 다 준비했는지 잉어즙에 호박즙에 미역국도 한 드럼통이나 끓여놓고 저를 맞이하는 겁니다. 사실 저희 올케언니도 그 때가 임신 6개월 째였거든요. 그 무거운 몸으로 산모 몸에 좋다는 음식 매일같이 챙겨주고, 아기 목욕도 해주고, 옷도 빨아주고, 거기다 심심하지 않게 하루 종일 제 말벗까지 해줬습니다. 덕분에 먹고 자고 쉬면서 언니네 집에서 제대로 몸관리를 했습니다. 그 덕분에 모유도 얼마나 잘 나왔던지 우리 아기까지 언니 덕을 톡톡히 보며 건강히 자랐답니다. 그렇게 고마운 언니였기 때문에 저도 선뜻 언니의 산후 조리를 자청했는데, 이게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더군요. 언니와 갓 태어난 막내 조카뿐만 아니라 초등학교에 들어간 첫째 조카의 새 학기 준비도 해줘야 하고 유치원에 다니는 둘째 조카의 인형극 준비도 해줘야했습니다. 특히 둘째네 유치원에서 무슨 천사 인형극을 한다고 해서 천사 날개를 만들어야 했는데, 저랑 오빠랑 남편까지 모여서 그 날개 만드느라 얼마나 고생했는지 모릅니다. 그렇게 딱 1주일, 1주일 만에 언니에 대한 존경심이 새록새록 생기더군요. 그리고 제가 철없을 때 언니에게 모진 소리했던 것도 참 마음이 아팠습니다. 올케 언니는 몇 년 전만 해도 저희 엄마를 모시고 한 집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딸과 며느리 마음은 정말 다른 것이 언니가 아무리 잘 해드려도 늘 부족해 보이고, 엄마가 편찮으셔서 거짓말하신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괜히 엄마 말을 믿고 싶었습니다. 언니에게 섭섭한 말도 참 많이 했습니다. 한번은 엄마가 문 열린 현관문을 통해 밖으로 나가신 적이 있었습니다. 아무리 찾아봐도 엄마 모습이 보이질 않는 겁니다. 다행히 제 남편이 택시 운전기사라서 동료 기사 분들께 연락해 겨우 찾을 수가 있었는데, 그 때 놀란 가슴으로 제가 언니에게 도대체 정신이 있느냐 없느냐 하면서 못된 소리를 참 많이 했습니다. 그 때는 언니 탓이 아닌 걸 알면서도 왜 그걸 못 봤냐고 모든 걸 언니 탓으로 돌렸습니다. 서로 참 많이 울었고 섭섭한 속마음을 내보였지요. 하지만 그 일이 전화위복이 돼서 지금은 올케 언니와 아주 잘 지내고 있습니다. 역시 진심은 통하는 법인지 제가 아기 낳고 키워보니 언니가 얼마나 고생했는지 이제는 알 것 같더군요. 요즘은 애 낳느라 커진 엉덩이를 줄이기 위해 오빠 대신 제가 언니의 엉덩이 위에 올라타서 눌러주고 있습니다. 그때마다 언니가 아프다고 얼마나 소리를 지르나 모릅니다. 그래서 “언니가 저 산후 조리 할 때도 이렇게 인정사정없이 눌렀다”고 하자 올케 언니는 “그때 내가 아가씨 미워서 더 세게 눌렀던 거지”라고 얘기해 한참을 웃었답니다. 아픈 엄마를 대신해서 제게 따뜻한 몸조리를 해줬던 우리 올케 언니. 이번엔 제가 받은 거 몇 배로 돌려주려고 합니다. 살림 솜씨는 언니보다 떨어지지만 제가 할 수 있는 한 올케 언니를 위해 더 많은 걸 해주고 싶습니다.경북 안동|박미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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