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준형“웃기기첫번째전략,말을아껴라”

입력 2008-03-31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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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개그를 글로 풀어달라는 부탁을 받았을 때 매우 부담스러웠다. 이제 11년차 개그맨이 됐지만 사실 나도 개그의 공식이나 아이디어의 창작 등이 어떤 건지 정확히 정의를 내릴 수 없기 때문이다. 대중의 웃음이란 코드는 시냇물에 떠있는 종이배 같아서 항상 흐르고 또 어디로 흐를지 모르는 변화무쌍함속에 자리 잡고 있다. 70년대 대학가를 강타했다는 참새 시리즈를 지금 듣고 웃는 사람은 거의 없다. 또 포수의 총을 맞아 쓰러지며 참새가 불렀다는 “가슴이 찡 하네요 정말로 눈물이 핑 도네요 정말로” (현숙 노래)는 요즘 중·고등학생들은 전혀 못 웃을 것이다. 이 노래 자체를 알지 못하니까. 80년대 후반부터 쏟아져 나오기 시작한 최불암 시리즈 또한 웃기엔 어색함이 있고, 식인종시리즈 또한 어울리지 않는다. 기차를 보고 김밥이라고 하고 아파트를 보고 종합선물세트라고 하는 이야기, 전혀 웃기지 않다. 그러고 보니 지금 유행하는 웃음을 찾아보면 예전처럼 이야기나 시리즈로의 구성이 아닌 전혀 다른 형식으로 변형되었음을 느낀다. ‘쩔어’와 ‘케 안습’으로 대표되는 요즘 유행어의 뒤엔 ‘싱하 형’ 정도가 있지 않을까. 역시 세상은 계속 변한다. 개그 프로그램을 봐도 변화는 쉽게 찾을 수 있다. 예전 ‘유머 1번지’라는 프로그램의 ‘동작 그만’이란 코너를 기억하시는 분은 많을 것이다. 그 코너를 지금의 우리가 다시 보게 된다면? 일단 답은 “별로 웃기지 않아”가 될 것이다. 현재 방송중인 ‘개그 콘서트’나 ‘웃음을 찾는 사람들’, ‘개그야’의 코너 시간은 길어야 5분이다. 하지만 ‘동작 그만’의 시간은 20여분에 이른다. 물론 공개와 비공개의 차이들을 가만해야겠지만 차이는 분명히 있다. 예전 코미디는 기승전결이 완벽하게 갖춰진 상태였다. 하지만 지금 개그들은 기, 승을 포기한 채 전, 결로만 마무리를 짓고 있는다. 현재의 코미디가 변화한건 대중의 코드에 맞추기 위해서다. 좀더 화끈하고 좀더 빨리 결말이 나는 구조. 시청자가 손에 쥔 리모콘의 버튼은 개그맨들이 자기를 웃기길 오래 기다려주지 않는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의 단서를 찾을 수 있다. 웃음을 주는 속도가 계속 빨라지고 있다는 것, 계속 간추려지고 생략되고 있다는 점이다. 유머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구구 절절 중언부언 하는 사람보다는 요점을 간략히 간추려 하고 싶은 말을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사람이 유머 있는 사람이다. 그리고 한 마디만 더. 정말 유머러스한 사람이 되기 위한 필수조건이 하나 더 있다. 많이 보고 듣고 웃으라는 것이다. 남의 개그를 보지 않으면서 어찌 남이 내 개그를 봐주길 바랄 수 있단 말인가. 자기는 남의 말에 절대 웃지 않으면서 남이 내 얘기에 웃어주기를 바랄 순 없다. 내가 먼저 웃으면 상대방도 마음을 연다. 웃어주고 들어주는 분위기는 상대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다. 그런 상황에서는 조금만 웃겨도 많이 웃길 수 있다. 상대방이 이미 웃을 준비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진리는 시간이 가도 바뀌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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