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상을차리는사람들]김윤희요리사“TV속‘입맛’은내손맛이죠”

입력 2008-04-04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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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태프들이 차려놓은 밥상을 그저 맛있게 먹기만 하면 되기 때문입니다. 나만 스포트 라이트를 받아 죄송합니다.“ 배우 황정민이 제26회 청룡영화상 남우주연상을 받고 말한 소감입니다. CF에까지 등장한 이 소감처럼 우리가 즐기는 영화, 드라마, 음반 뒤에는 수많은 ‘밥상 차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묵묵히 뒤에서 KBS 드라마의 밥상을 다양하게 요리하고 있는 10년차 요리사 김윤회씨. ‘스포츠동아’가 그녀의 숨겨진 헌신을 전합니다. 》 “우리가 차린 밥상 그저 맛있게 먹어주면 고맙고 기분 최고지요.” KBS 2TV 주말극 ‘엄마가 뿔났다’(극본 김수현, 연출 정을영)에는 등장인물들이 밥을 먹는 신이 유난히 많다. 주말 저녁 온 가족이 TV 앞에서 군침을 삼키는 이유도 여기 있다. 저녁식사를 끝냈음에도 출연진들이 김치를 아삭아삭 씹어 먹고 국물을 후루룩 들이키는 소리에 침이 꼴깍 넘어간다. ‘진짜 먹는 걸 보면 소품은 아닌데?’, ‘대충 흉내만 낸 거 아닐까? 맛은 없을 것 같다’, ‘도대체 저건 누가 만들어?’ 등 드라마의 밥 먹는 장면을 보면 이런 의문이 생긴다. ‘스포츠동아’가 찾아갔다. 드라마에서 밥상을 차려주는 사람을. - ○“연기자가 먹는데 대충 만들면 안되지” 3일 오전 10시. 서울 여의도 KBS 별관 스튜디오에선 ‘엄마가 뿔났다’ 녹화 준비가 한창이다. 스튜디오에서 200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드라마의 음식 소품을 만드는 조리실이 있다. 가까이 가자 고소한 참기름 냄새가 진동한다. 조리실에서 한참 프라이팬에 참기름을 두르고 김치를 달달 볶고 있는 요리경력 10년의 김윤회(55·여) 씨. 온갖 음식을 만드는 ‘요리의 달인’이지만 그녀의 공식 직함은 KBS아트비전 직원. 그녀는 이날 김혜자의 가족이 먹을 김치밥을 준비 중이었다. 김치와 밥, 돼지고기만 있으면 되는 간단한 음식이었지만 재료를 준비하고 만드는 과정에 대충 대충이란 없다. 김 씨는 현재 ‘엄마가 뿔났다’ 외에 KBS 2TV 드라마 ‘며느리 전성시대’, ‘못 말리는 결혼’, ‘미우나 고우나’의 식탁을 책임지고 있다. ○ 어떤 음식이든 4시간 안에 만드는 ‘요리의 달인’ 드라마 음식의 첫 단계는 식단이다. 촬영 전날 드라마 소품팀으로부터 식단을 전달받으면 요리사는 상황에 맞게 재료를 준비한다. 김씨가 직접 재료를 구입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재료를 공급해주는 업체에 배달을 요청한다. 김치밥의 경우는 김치 2kg과 돼지고기 2근, 당근 5개, 고추 5개 정도해서 5만원 정도 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다음번 녹화 때 필요한 장미희 가족의 식단은 한결 화려하다. 재벌집이다보니 신선로, 구절판이 등장한다. 이렇게 음식에 손이 많이 가는 경우는 전문식당에서 직접 사오는 경우가 많다. 보통 본 촬영에 들어갈 때까지 음식을 만들 여유는 4시간 정도. 모든 음식을 이 시간에 만들기는 어렵다. 평소엔 김 씨를 포함해 2명이 요리하지만 가짓수가 많은 경우엔 1명이 더 투입된다. ○ “김혜자·강부자씨도 내 음식 맛있데요” 김치밥과 어울리는 콩나물국을 준비하는 김 씨의 손이 분주하다. 아무리 소품이라고 해도 연기자가 직접 먹는 음식이라 맛있게 만들기 위해서다. 음식의 간을 일일이 보면서 내 가족이 먹는 것처럼 정성을 쏟는다. 연기에 지장을 주지 않도록 너무 차갑거나 뜨겁지 않도록 만드는 것은 기본. 다 만들어진 반찬은 촬영장까지 랩을 씌워 운반한다. 밥이나 국 같은 경우는 현장에서 다시 한 번 데워 김이 모락모락 나게 한다. 김 씨는 “내가 만든 음식을 연기자들이 맛있게 먹어주면 기분이 좋다”며 웃었다. 이어 “‘맛없다’는 소리를 들어보진 않았다”고 자랑했다. 무엇보다 강부자나 김혜자 같은 경력 수십년차의 배우가 “정말 맛있게 잘 먹었어요”라고 한 마디 해주면 힘들었던 것이 싹 가신다고 한다. 식사신 촬영이 점심 시간과 겹치는 날이면 연기자 중 일부는 일부러 점심을 안 먹고 오는 경우도 있다. 김씨가 차려주는 밥상으로 식사를 하기 위해서다. ○ 촬영컨셉 바뀌면 뛰어다니며 요리해요 완벽하게 모든 준비를 끝내도 정작 촬영에 들어가면 변수는 생기기 마련이다. 연출자 요청으로 음식을 급히 추가할 경우라든지 아예 식단을 바꾸는 경우가 생긴다. 그때부터 비상이다. 200미터 거리를 뛰어다니며 음식을 준비하고 필요한 것을 만든다. 오랜 경력으로 김 씨가 못 만드는 음식은 없다. 하지만 식단을 받으면 일단 요리책을 찾아보고 인터넷도 검색한다고 한다. 더욱 먹음직스럽게 준비하기 위해서다. 김 씨는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잖아요. 손 많이 가고 시간이 오래 걸리는 음식도 내 손을 거치면 금방 다 돼요”라고 말했다. 오늘도 김 씨가 밥상을 차려주면 이순재 백일섭 김혜자 강부자 김나운 등 연기자들은 그저 그렇게 숟가락만 들고 맛있게 먹어주면 된다. 이정연기자 annjo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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