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의공연뒤풀이]원작은잊어라…그리고웃어라

입력 2008-04-09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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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 미워요. 영화를 보려고 기다리는데 누군가가 ‘절름발이가 범인이다’고 소리친다. ‘별 실없는…’ 하고 넘겼는데 나중에 영화를 보니 화가 났다. 그는 영화가 끝나자마자 그 놈을 찾아내 절름발이로 만들리라 다짐을 했단다. 이 이야기는 영화 ‘유주얼 서스펙트’ 후일담으로 유명한 에피소드이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내가 이렇게 똑같이 당했다. 뮤지컬 ‘나쁜 녀석들’ (원제 : Dirty Rotten Scoundrels)을 보려고 결심을 했다면, 신문 기사며 잡지며, 친구들 이야기에는 귀를 닫아야 한다. 원작을 보겠다고 영화를 찾아보는 일은 더더욱 하지 말아야 한다. 앉아 있는 3시간 공연 내내 나의 부지런함을 원망하기 싫다면 말이다. ‘나쁜 녀석들’은 유쾌한 코미디 뮤지컬이다. 몰락한 왕족 행세를 하면서 부유한 여성들을 상대로 부를 쌓는 사기꾼 로렌스와 그 보다는 덜 세련되지만 동정심과 모성애를 자극하는 특유의 어리숙함으로 무장한 또 다른 사기꾼 프레드. 이 둘은 각자의 영역에서 활약하던 중 시골에서 갓 상경한 순진한 아가씨 크리스틴을 두고 내기를 벌이게 되는데… 브로드웨이 ‘나쁜 녀석들’은 무대적인 전환 효과에 신기했다고 한다. 무대가 바뀔 때마다 관객 탄성이 이어진다는데 오히려 한국에서는 무대 장치와 소품은 담백할 정도로 최소화 한 느낌이다. 그러나 라이선스 번안극의 장점을 적극 살린 ‘난 원래 한국사람인데 영국인 역할을 하고 있어요’ 라는 대사나 공연 말미에 백스테이지를 보는 듯한 배우들의 상황극은 한국에서만 볼 수 있는 재미라 할 수 있다. ‘올슉업’과 ‘그리스’의 바람기, ‘지킬앤하이드’, ‘대장금’에서 똑 떨어지는 세련미를 섞어 놓은 김우형이 로렌스를, ‘싱글즈’의 정준을 연상케 하는 프레드는 김도현이 맡았다. 속이 다 시원한 그녀의 가창력이 돋보이는 윤공주가 크리스틴을, 부자집 사모님 뮤리엘역에는 신영숙이, 로렌스를 돕는 앙드레역에는 언제나 든든한 배우 이종문이 함께 했다. 특히 짧지만 인상적인 텍사스 석유재벌 졸린역의 미루가 눈에 띈다. 개인적으로 뮤지컬 ‘그리스’ 이후 늘 궁금했던 배우 임지혜가 미루라는 사실을 알고 얼마나 기뻤던지. 그녀를 더 자주 무대에서 만나게 되길 기대한다. 공연장 가까이 있는 청계천에서 봄볕을 맞으며, 알차게 채워진 공연 프로그램을 보는 재미도 꼭 느껴보길 바란다. 최 지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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