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음반이 이 앨범만 같으면 싶다. 대중이나 비평가 모두 즐거워하니 말이다. 2000년 새 세기가 열리면서 DJ DOC는 3년 만에 5집 ‘The Life…DOC Blues 5’를 발표한다. 각종 사건 사고로 신문 사회면을 장식하며 ‘사고뭉치’ ‘악동’으로 악명을 떨치던 세 멤버는 이 한 장의 음반으로 일약 아티스트로 주목을 받았다. 음반 또한 한국 가요사에 손꼽히는 명반으로 자리매김한다. 사실 그들은 1997년 4집 때 이미 아티스트의 싹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 앨범에서 빅 히트곡곡 ‘DOC와 춤을’ 이 대중적으로 사랑을 받았지만, 날 선 풍자를 담은 ‘삐걱삐걱’ ‘모르겠어’나 민요를 가요로 현대화한 ‘뱃놀이’ 등에서 만만치 않은 내공을 발휘했다. 이런 재능은 5집에서 상업성과 음악성을 절묘하게 조화시키며 폭발한다. 반복적으로 쏟아지는 리듬이 공연장 관객 흥분용으로는 능가할 곡이 없는 ‘런 투 유’(Run To You)는 이 음반의 기본이다. 강한 비판과 풍자가 담긴 ‘L.I.E’ ‘포조리’ ‘알쏭달쏭’ 등은 그 내용의 격렬함과 거친 욕설에도 불구하고 귀에 착착 감기는 멜로디 라인 덕에 듣기에 불편함이 없다. 음반은 축 쳐진 이들에게 아드레날린을 솟게 만드는 곡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하지만 ‘비.愛’ ‘기다리고 있어’ ‘사랑을 아직도 난’ ‘DOC Blues’ 등 서정성이 배어나는 곡들도 있어 전반적으로 균형 잡힌 느낌을 갖게 만든다. 지금 돌아보면 이 음반은 시대를 앞서간 측면이 있다. 힙합에 디스코 팝 R&B 라틴에 민요까지 절묘하게 버무린 수록곡들은 최근 들어 주류 가수들이 자주 시도하는 음악 창작 방식과 매우 닮아 있다. 힙합에서 비트를 따오고 랩을 사용하면서 한국인들이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타 장르의 멜로디나 곡 분위기를 섞어 쓰는 식이다. 하지만 당시 DJ DOC는 이 음반으로 언더그라운드 힙합 진영으로부터 정통 힙합이 아니라고 비판을 받았고 사고뭉치라는 선입견 탓에 이들의 앞서간 음악적 성취가 가려지기도 했다. 동일하거나 비슷한 음절을 반복해 리듬감을 부여하는 랩의 라임에 있어서도 이들은 비약적인 발전을 이뤄냈다. 당시까지만 해도 한국 랩은 다소 미완성 상태였다. 라임(운율) 살리려다 우리 말이 제대로 안 이어지거나 반대로 라임을 무시해 랩에 리듬감이 부족하곤 했다. DJ DOC는 미국식 규칙에 얽매이지 않으면서 적당한 음절 반복으로 쫄깃쫄깃한 한국적 라임의 랩을 구사해냈다. 이 음반은 전반적으로 이하늘과 정재용의 랩 위주로 구성돼 있다. 특별한 음악적 의도가 있어서는 아니다. 음반 녹음 당시 '스트리트 파이터'(?)의 물이 한창 올라 있던 김창렬이 사건으로 인해 사회에서 잠시 격리(?)돼 있던 바람에 본의 아니게 참가할 수 없었다. 이후 DJ DOC는 이 5집 수록곡이 레파토리의 주요 부분을 차지하는 공연 때마다 김창렬이 할 일이 없어 따로 부를 곡을 만들어 주느라 애를 먹었다. 지금은 성실한 가장이자 방송인으로 착실하게 살아가는 김창렬을 보고 있노라면 격세지감이 느껴진다. 최영균 스포츠지 대중문화 전문 기자로 6년간 음악·영화에서 열정을 불태운 몽상가. 지금은 ‘킬러 콘텐츠’를 만든다며 매일 밤 담배와 커피를 벗삼아 지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