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영은이상우의행복한아침편지]밤마다야삽맞는사나이

입력 2008-04-23 00:00:00
카카오톡 공유하기
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어느 화창한 일요일 아침에 일곱 살 우리 큰딸 아이가 울먹이면서 “아빠! 코 좀 골지 마요! 아빠 때문에 잠 한숨 못 자겠어!”이러는 겁니다. 그러자 옆에서 놀고 있던 네 살 된 작은 아이가 ‘드드렁 커억. 푸우’ 이러면서 제 코고는 흉내까지 냅니다. 아마도 아이들하고 같이 낮잠 자는데 제가 피곤해서 코를 많이 골았나 봅니다. 미안하기도 하고 우리 딸이 얼마나 제 원망을 했을까 창피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문득 20년 전 군 입대 할 때 생각이 났습니다. 훈련소에서 처음 아침을 맞았는데 이상하게 제 한 쪽 눈이 잘 떠지지가 않는 겁니다. 아프기도 하고, 살짝 부은 것 같기도 했습니다. 세면장으로 가서 거울을 보니까 눈 주변에 파란 멍 자국 같은 게 보였습니다. 눈도 빨갛게 충혈 되어 있습니다. 저는 “왜 이러지?” 하고 친한 훈련병한테 물어봤는데, 그 녀석이 “너 기억 안나? 어제 네가 코를 하도 고니까 교관이 툭툭 치고, 머리도 돌리고 별 방법을 다 쓰더라. 그런데 그래도 안 되니까 화가 났는지, 주먹으로 세게 치던데?” 이러는 겁니다. 정말 억울했지만 그건 아주 작은 시작에 불과했습니다. 훈련병을 마치고 자대배치를 받고 나서, 저는 본격적인 고생을 하게 되었습니다. 하루는 잘 자고 있는데, 누가 자꾸만 깨워서 일어나 보니 선임병이었습니다. 얼굴이 상기되어서 저보고 화장실로 따라오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바짝 얼어서 따라갔더니, 사정없이 제 뺨을 때리기 시작하는 겁니다. 한 열대는 맞은 거 같습니다. 그렇게 정신이 번쩍 들었을 때 그 선임병이 “야! 임마! 잠 좀 자자. 잠 좀!” 이러고 갑니다. 저는 아픈 줄도 모르고, 서러워서 눈물을 줄줄 흘렸습니다. 남들은 편히 잘 자는데 왜 나만 이 고생인지 정말 서러웠습니다. 그렇게 내무반으로 들어섰을 때 고참 병장이 “밤마다 이제 우짜노?” 하고 한숨을 푹 쉬기도 했습니다.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저는 자다 불려나가서 진짜로 많이 맞았습니다. 그리고 중대 전체에 ‘전차 한 대가 들어왔다’고 소문이 돌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군기가 바짝 들어서 저는 제 코고는 소리에 놀라서 깨기도 하고, 누군가 “야 전차 또 시동 건다!” 이렇게 얘기하면 그 소리에 깨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코고는 버릇은 고쳐지지가 않았습니다. 자다가 일어나서 원산폭격, 낮은 포복, 팔굽혀펴기, 제자리 뛰기 등을 해야 했고, 심지어 방독면을 쓰고 자야 할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하루는 눈을 떴는데, 제 주변에 군화며 슬리퍼, 반합, 철모, 심지어 야삽 까지 쌓여있었습니다. 제가 영문을 몰라 하니까 동기가 얘기 해 주었습니다. 밤에 잠을 자는데 제가 또 코를 골며 자더랍니다. 그래서 누군가가 슬리퍼를 던졌는데, 그게 제 어깨에 떨어지면서 제가 코를 안 골고 자더랍니다. 그런데 몸을 뒤척이면서 또 ‘드르렁! 드르렁!’ 코를 골아서 그 때부터 군화며 철모며 반합 등이 날라 왔다고 합니다. 다른 건 다 그렇다 치지만 그래도 철모하고 야삽은 좀 심했다 싶었습니다. 그렇게 온갖 비법을 다 써가면서 코고는 버릇을 고치려고 했지만, 결국 모두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거꾸로 매달아 놓아도 잘 돌아간다는 국방부 시계 덕분에 저는 무사히 제대를 하게 되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참 우습지만, 그 때는 가장 두려웠던 것이 밤이 오는 것과, 잠을 자는 것이었습니다. 요즘은 군대 있을 때만큼 심하게 골지는 않지만, 가끔 술 마신 다음 날이나 야근한 다음 날은 코끝이 빨갛게 되어있습니다. 누가 밤새 제 코를 틀어막았나봅니다. 딸인지 아내인지 범인은 모르지만, 그래도 바깥으로 내치지 않고 방에서 재워주는 게 그나마 다행이라 생각하고 참고 있습니다. 매일 밤 제 코고는 소리를 견뎌내며 잠을 자고 있는 제 아내, 그리고 우리 아이들 이해심 많은 가족 덕분에 저는 편안한 잠을 잘 수 있습니다. 다시 한번 고마움을 전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우리 가족 모두 진심으로 사랑합니다. 충북 청주|이정찬



뉴스스탠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