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싫증났니?질리니?”…대사로읽는연극‘클로져’

입력 2008-04-23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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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화 공주님은 남몰래 정을 통하고 서동을 밤에 몰래 안고 가시다’ 백제 무왕이 된 서동요와 선화 공주의 관계를 노래한 ‘서동요’는 ‘얼레리꼴레리’ 격의 연애 스캔들이다. 남녀의 연애를 궁금해 하기는 신라시대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김모 씨가 이모 씨를 ‘어떻게’ 만나 ‘왜’ 헤어졌는지, 그들은 정말 사랑했을까… 사람들이 울고 웃는 자리에 연애담은 빠지지 않는다. 제가 아니면 제 친구, 그도 아니면 연예인의 사랑 작대기는 수다의 단골메뉴다. 연극 ‘클로져’는 이런 연애를 비틀고 비틀어서 남녀의 힘든 감정이 나락에 치닫는 것까지 보여준다. ‘다미엔 라이스’의 음악 ‘The blower’s daughter’로 한국 관객에게 더 익숙한 ‘클로져’는 2004년 동명의 영화로도 큰 인기를 얻었다. 2005년 국내 초연 이후 벌써 여섯 번째 공연이다. 태희, 운학, 지현, 대현 등 20∼30대 젊은 연인의 얽히고설킨 애증 관계를 보여준다. 이들은 첫 눈에 반했다고 믿지만, 또 다른 사랑이 나타나 흔들리고… 이로 인한 배신감에 증오하다 결국 다시 사랑이라 믿고 집착한다. 히스테리를 보이는 전형적인 이별 풍경과 ‘뒤 끝 많은’ 쿨하지 못한 연인의 대화를 여과 없이 들려준다. ‘슬프다. 내가 사랑했던 자리마다. 모두 폐허다. 나에게 왔던 사람들, 어딘가 몇 군데는 부서진 채 모두 떠났다’ 황지우 시인의 ‘뼈아픈 후회’처럼 클로져의 모든 장면은 결국 사랑의 폐허다. 이들은 너덜너덜해진 사랑을 봉인하려다 이내 다시 터트리면서 끊임없이 서로를 할퀴고 만다. 지현 : 다시 생각해봐. 제발. 계속 볼 수 있는 거지? 대답해. 대현 : 안 돼. 다시 보면 못 떠날 테니까. 지현 : 내가 딴 남자를 만나면? 대현 : 질투하겠지. 지현 : 아직도 나 사랑해? 대현 : 사랑해. 지현 : 거짓말! 나한테 이러지마. 이러면 안 돼. 나 잘한 것도 많잖아. 왜, 싫증났어? 내가 그렇게 질리게 했어? 대현 : 그런 거 아냐. 지현 : 그래도 사랑은 했던 거지? 대현 : 언제나 그럴 거야. 넌 내 인생을 바꿔놨어. 널 아프게 해서 나도 괴로워. 지현 : 그런데… 나한테 왜 이래? 대현 : 왜냐면, 난 이기적이고… 태희랑 있으면 더 행복할 거 같으니까. 지현 : 나 없이? 나 보다 더 널 사랑하는 사람은 없어. 절대. 대현 : 알아. - 지현과 대현의 이별 장면 중- 애초부터 ‘낯선 사람들’이었는데, 조금 더 ‘가까워’지려다가 역설적으로 생채기를 남기고 있는 사람들, ‘클로져’ 하지 못한 불우한 ‘스트레인저’를 그린 작품이 클로저다. 체념조로 던지는 많은 욕조차 관객들은 메스꺼움보다 웃음으로 반응한다. 남녀가 다툴 때 던지는 말은 아무리 새롭게 쏟아내려 해도 별반 신선할 게 없다. 여자가 내뱉은 말은 어디선가 그이가 들은 말이며, 남자가 들은 말은 또 어디선가 그가 쏟아낸 말이다. 미셸 푸코는 ‘성의 역사’에서 사랑은 ‘사랑하는 대상’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사랑’에서 구해야 한다고 했다. 무대 안에서도 밖에서도 아무도 ‘있는 그대로의 사랑’을 찾지 못했는지 클로져는 벌써 일곱 번째 공연을 준비 중이다. 사랑의 실체가 궁금한 호기심 많은 관객들이 꾸준히 극장을 찾고 있다. 변인숙 기자 baram4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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