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극PD,봄날겨울점퍼껴입은사연…

입력 2008-04-27 00:00:00
카카오톡 공유하기
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감솨감솨. ♥해리 씨 다시 촬영장 가는 길이랍니다” 백상예술대상 시상식이 열린 24일 밤 이병훈 PD에게서 받은 휴대전화 문자였다. 이날 TV부문 연출상을 받은 그에게 “앞으로도 따뜻한 드라마를 기대하겠다”고 축하 문자 메시지를 보냈더니 돌아온 답장이었다. 시상식에 참석한 스타들은 스포트라이트에 한껏 들떠있었지만 이 PD는 시상대에서 내려온 뒤 곧장 ‘현장’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사람들은 이병훈 PD를 ‘사극 명장’ 혹은 ‘드라마 대가’라고 부른다. 그는 현역에 있는 드라마 연출자 중 단연 첫 손에 꼽힌다. ‘수사반장’을 시작으로 ‘조선왕조 500년’, ‘허준’, ‘대장금’과 연출 중인 MBC ‘이산’까지 그의 손을 거친 히트작의 수를 헤아리기가 어렵다. 대한민국 사극의 대표 PD. 그런 그가 얼마전 “힘들다”고 속내를 털어놓았다. 매주 2회씩 총 140분 분량의 드라마를 만들기가 녹록치 않다는 뜻이었다.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 열악한 제작환경을 한탄하며 “외국에서는 한국의 드라마 제작을 보면 미친 짓이라 한다”고 답답해 했다. 사실 매주 2회씩 총 140분 분량의 드라마를 만든다는 것은 살인적인 일정이다. 이병훈 PD는 지난해 9월 방송을 시작한 이후 8개월째 현장에서 거의 살다시피 한다. 그는 과정이 아니라 일주일 내내 밤낮 없이 촬영에 임한다. 새벽에 낮 장면을 찍는 상황 정도는 ‘이산’의 촬영팀에게는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산‘의 현장만 유독 고달픈 것이 아니다. 전작인 ‘대장금’의 명장면 중 하나로 꼽히는 “홍시 맛이 나서 홍시”라는 대사가 나온 장면도 그렇다. TV에서는 낮으로 보였지만 사실 새벽 2시에 찍은 장면이었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상을 받은 그 날, 이 PD의 어깨가 무거운 또 다른 이유는 단지 연출에만 그치지 않고 작가와 함께 드라마의 맥을 짚어야 하는 역할 때문이다. 그는 조선왕조사에 있어서 웬만한 역사학자의 전문지식을 능가한다. 역사를 드라마로 끌어와 극화시키기 위해 이 PD는 틈틈이 사료를 챙기고 꼼꼼하게 이야기를 쓴다. 이쯤 되면 ‘명장’이란 호칭이 오히려 무거운 족쇄로 작용한다. 수상의 기쁨을 누리지도 못한 이 PD가 달려간 곳은 경기도 용인. ‘이산’의 오픈세트가 있는 이 곳에서 24시간 지내는 이 PD는 낮 기온이 20도까지 올라가는 화창한 봄날씨인 요즘에도 두툼한 오리털 점퍼를 입는다. 그렇지 않고는 밤샘 추위를 막아낼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이것이 대한민국 ‘사극의 명인’이 현장에서 겪는 현실이다. 이해리 기자 gofl1024@donga.com



뉴스스탠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