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영은이상우의행복한아침편지]춘향이시집보내는월매

입력 2008-05-22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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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저희 집에 예비 사윗감이 다녀갔습니다. 항상 어리게만 봤던 딸아이가 시집을 간다고 남자친구를 데려왔습니다. 문득 지난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습니다. 지금으로부터 26년 전 딸아이를 낳던 그 날은 참 눈이 많이도 내렸습니다. 겨우 두 사람이 발 구부리고 잘 수 있는 초막 같은 집에서 딸아이를 낳았습니다. 남편은 멀리 경상도 마산으로 일하러 가고, 다행히 인심 좋은 안집 할머니께서 산파노릇을 해주셨습니다. 그 덕분에 무사히 출산을 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렇게 낳았던 우리 딸아이는 제가 봐도 참 예쁘게 잘 커줬습니다. 중학교에 들어갈 때는 이미 동네 머슴애들이 자꾸 따라다니고 귀찮게 해서, 저희 부부가 눈에 쌍불을 켜고 우리 딸을 지켜야할 정도였습니다. 그 아이가 스무 살이 되던 해였습니다. 친구랑 같이 머리를 하러간다고 시내에 나갔는데 갑자기 헐레벌떡 뛰어 들어오더니 “엄니∼ 어떡혀? 나 어떡혀?” 이러면서 발을 막 굴렀습니다. 제가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엄니! 미용실 원장님이 나더러 춘향이 선발대회 나가보라고 아주 난리가 났당께요∼! 일단 부모님 허락부터 받아오라 허는디? 나 어떡혀? 함 나가볼까잉?”하고 물어봤습니다. 딸아이는 잔뜩 들떠서 제 몸을 전신거울에 비춰보기도 하고, 머리를 틀어 올려보기도 하면서 완전히 흥분해 있었습니다. 저는 속으로 ‘하이고∼ 야가 이쁘긴 이쁜가 보구마이… 허긴 아무리 내가 낳아도 인물이 좋긴 좋제…’ 이러면서 어깨에 은근히 힘을 주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남편이었습니다. 퇴근해서 돌아온 남편 앞에 자초지종을 설명하면서 남편을 설득하려고 했지만, 그 사람은 앞뒤 꽉 막힌 미련한 곰 같은 남자여서 대뜸 소리부터 빽 지르더군요. “뭣이여! 어디를 나가? 시방 춘향이를 나간다고 했어야? 하이고∼ 어떤 놈이 딸 자석을 그런데다 보낸다는 것이여! 자고로 여자허고 무시는 바람 들어가믄 절대로 못 쓰는 벱이여∼ 늬가 아무리 이뻐도 나는 절대로다가 그런데 내보낼 생각 없응께 쓰잘대기 없는 소리는 허덜을 말어.” 이렇게 쐐기를 박았습니다. 딸아이는 학수고대했던 그 절호의 기회를 융통성 없는 아빠 때문에 놓치게 생겼다고 그 날부터 단식투쟁에 들어갔습니다. 남편은 그런 딸을 말로 설득하려했습니다. 진심으로 호소하고, 그것도 안 되니까 본 채 만 채 하면서 기싸움 까지 했습니다. 결국 싸움은 딸아이의 패배로 끝이 났습니다. 그렇게 원하던 춘향이 선발대회에 나가지 못 했으니, 딸아이가 얼마나 아쉬웠겠습니까? 매년 대회가 있을 때마다 아쉬움에 한숨을 쉬며 아빠 원망을 했습니다. 그랬던 딸아이가 이번엔 갑자기 결혼을 하겠다며 남자친구를 데려왔으니, 저는 당연히 남편이 또 반대를 할 거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 융통성 없는 남편이 의외로 쉽게 허락을 해 주었습니다. 오히려 딸아이 일이라면 무조건 찬성했던 제가 반대를 하고 나서게 됐습니다. ‘이제 겨우 스물여섯 살… 아직 더 곁에 둘 수 있는데 너무 빨리 시집을 가는 게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찌감치 훤해지는 사윗감의 앞머리가 너무 허술해 보였습니다. 만약 스무 살 때 딸아이가 춘향이 선발대회에 나갔다면, 어쩌면 딸아이의 인생이 달라질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 때 너무 쉽게 져 줬다는 그런 후회가 생겼습니다. 그랬다면 지금 데려온 사윗감도, 지금의 제 남편처럼 앞머리가 훤한 남자가 아니라, 어쩌면 더 멋있는 남자를 데려왔을지도 모르는 일인데 말입니다. 결혼할 남자가 생겼다며 밑도 끝도 없이 데려와 인사를 시키는 딸아이도 원망스러웠습니다. 그 허술하기 짝이 없는 사윗감의 이마도 너무 너무 원망스러웠고 머지않아 남편과 쌍라이트 형제처럼 앉아있을 모습을 상상하니 도저히 그냥 넘어갈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길게 반대해 봐야 더 크게 반발만 생기고, 딸아이의 마음에 상처만 남을 것 같아 이제는 그냥 허락을 해줄까 합니다. 한 집안의 며느리로, 한 남자의 아내로, 그리고 자식들의 어머니로서 살아가게 될 우리 딸아이. 이제는 품안에서 놓아줘야 할 것 같습니다. 품안에 자식이라는 말을 되새기며 새 보금자리를 찾아 떠날 딸아이를 위해, 이 부족한 엄마가 더 이상 무얼 어떻게 잘 해줘야할지 궁리해봅니다. 전북 전주|조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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