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칸]레드카펫밟은나도‘월드스타’

입력 2008-05-26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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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으로 돌아가기 전날인 24일, 잊을 수 없는 추억을 만들었습니다. 검은 정장에 결혼식 때 딱 한 번 매본 나비넥타이까지 차려 입고 칸 영화제 레드카펫 위에 섰습니다. 영화제 큰 행사 중 하나인 갈라 스크리닝에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이 이날 상영된 덕분에 한국 취재진도 초청장을 받았습니다. 레드카펫을 밝으며 칸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뤼미에르 대극장에 입장하는 뜻깊은 경험이었습니다. 꼭 정장을 갖춰야 입장이 가능한 갈라 스크리닝은 칸 영화제의 품격을 만끽할 수 있는 행사입니다. 남자들은 대부분 검은 턱시도에 나비넥타이지만 여성 관객들은 너도나도 한껏 드레스로 멋을 부립니다. 배우들과 똑같이 레드카펫을 통해 입장하고 대형 전광판을 통해 그 모습이 중계되기도 합니다. 솔직히 많이 쑥스러웠지만 언제 이런 기회가 올까 싶어 기념촬영도 하며 레드카펫을 돌아다녔습니다. 입장할 때 10명이 넘는 남녀가 카메라를 들고 몰려와 요란하게 사진을 찍어 깜짝 놀라기도 했습니다. 이들은 레드카펫 입구에서 맵시가 뛰어난 참가자를 향해 경쟁적으로 플래시를 터트린 후 친절하게 명함을 건내며 “사진을 사고 싶으면 연락주세요”라고 미소 짓는 거리의 사진사들입니다. 눈이 아플 정도로 플래시 세례도 받으며 레드카펫을 걸어보니 색다른 기분입니다. 바람이 쌩쌩 부는 영하의 날씨, 영화 시상식 레드카펫 옆에서 손을 호호 불며 스타들의 모습을 스케치했던 수습기자 시절도 떠올라 감회가 새로웠습니다. 이러듯 칸 국제영화제는 여러 사람들에게 다양한 즐거움을 선물합니다. 권위 있는 영화제답게 거장들의 작품을 가장 먼저 만날 수 있는가 하면, 아름다운 바다와 화창한 날씨는 칸에 있는 것만으로 행복을 느끼게 합니다. 이날 색이 조금 바랜 양복과 드레스를 곱게 입고 노부부가 손을 꼭 잡은 채 아주 우아하게 레드카펫을 밟으며 입장하는 모습을 보고 많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갈라 스크리닝에선 영화의 존재 이유인 관객에 대한 경의가 느껴졌습니다. 칸이 갖고 있는 가장 큰 힘은 천혜의 자연도, 쟁쟁한 거장들의 월드 프리미어도 아니었습니다. 관객을 진심으로 즐겁게 하는 은근한 배려가 바로 예순 한 번째 축제를 무사히 마친 영화 천국의 힘이라고 느꼈습니다. 칸(프랑스)=이경호 기자 rus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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