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영은이상우의행복한아침편지] 2009년불행끝행복시작

입력 2008-12-31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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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하고 4년, 그동안 참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큰아이 낳고, 8개월쯤 됐을 때 남편이 친구 보증 서준 게 잘못 돼서 전세금을 모두 날리게 됐습니다. 겨우 친정에서 구해준 돈으로 보증금 500만원에 월세 10만 원하는 지하단칸방은 얻었지만, 저희 식구 앞으로 살 일이 참 막막했습니다. 남편은 가족을 궁지로 몰아넣었다는 자책감과, 믿었던 친구에 대한 배신감, 그리고 회사에서 해고당한 충격으로 완전히 실의에 빠져 있었습니다. 집안의 생계는 제가 책임져야만 했습니다. 애는 아직 어렸고 남편은 집안일에 익숙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집 근처 식당에서 시간제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멀지 않은 곳에서 가정부일 하는 게 전부였습니다. 그나마 주말엔 시어머니께서 아이를 봐주셨기 때문에 하루 종일 먼 곳에 나가 일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때 아는 언니가 교외에서 양계장을 했는데, 주말엔 그곳에서 계란 수거하는 일을 했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조류독감 때문에 갑자기 하지 못 하게 됐고, 또 다시 새로운 일을 찾아야만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는 분이 밤 농장에서 밤알 줍는 일손이 부족한데, 한번 해보지 않겠냐며 물어보셨습니다. 대신 조건이 아침 7시에 나오는 거였습니다. 저는 아침 일찍 아이를 시댁에 맡겨놓고, 그 밤 농장으로 나갔습니다. 이른 시간부터 허리 한 번 펼 새 없이 밤송이에 찔리고, 껍질을 깠습니다. 그리고 포대자루에 밤알을 채워 넣으며 일을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저쪽에서 “꺄아악∼”하는 비명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리고 이내 ‘붕∼’하는 소리와 함께 시커먼 물체가 저희 일하는 쪽으로 날아오고 있었습니다. 일꾼 중에 누군가가 땡벌 집을 건드렸다고 했습니다. 저는 소리를 지르며 우왕좌왕하는 사람들을 피해 숨을 곳을 찾았습니다. 순식간에 날아온 벌들은 저를 덮치기 시작했고, 머리와 팔, 다리 온몸을 쏘이고 말았습니다. 세상 살며 그렇게 고통스러운 순간은 그 때가 처음이었던 것 같아요. 손을 휘젓고, 아무리 소리를 질러 봐도 벌의 습격은 금방 그치지 않았습니다. 저는 황급히 응급실로 옮겨져 치료를 받았는데, 벌에 쏘인 고통보다 그런 일을 당해야 하는 서러움이 북받쳐 엉엉 울고 말았습니다. 내가 왜 이 고생을 하며 살아야 할까 남편만 제대로 정신 차렸어도…그리고 애가 그렇게 어리지만 않았어도, 이 아픔을 감수해 가며 이렇게 살진 않았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모든 게 원망스럽고, 모든 게 서러웠습니다. 응급실 침대에 칸막이 커튼을 쳐놓고, 한참을 대성통곡하며 울었습니다. 그러다 어느 정도 진정이 돼서 커튼을 걷었는데 바로 그 앞에 제 남편이 서있었습니다. 남편도 그 앞에서 저와 같이 울고 있었던 겁니다. “내가 잘못했어. 당신 이렇게 고생만 시키고…” 남편은 말을 채 잊지 못 하고, 그렁그렁 눈물이 맺혀 미안하다는 말만 반복했습니다. 그리고 그 날부터 이 사람이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혼자 이력서를 준비해 면접 본다며 여기저기 다니더니, 몇 개월 만에 당당히 취직을 하게 된 겁니다. 전화위복! 먹고살기 위해 고생했던 지난 시간들이 모두, 한순간에 보답 받는 것 같았습니다. 비록 이렇게 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이제라도 정신 차려준 남편이 그저 고맙고 감사합니다. 듬직한 그 모습이 사랑스럽기까지 합니다. 2009년 새해에는 행복한 일만 가득했으면 좋겠습니다. 결혼하고 지난 4년 동안, 웃을 일 보다, 울 일이 더 많았던 것 같습니다. 앞으로는 그렇지 않겠죠? 불행 끝!! 행복 시작!! 바로 우리 집 얘기였으면 좋겠습니다. 서울 성북 | 윤여경 행복한 아침, 왕영은 이상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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