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 배트맨과 악당 조커의 대결을 그린 영화 '다크 나이트'를 보다 보면 어느 순간부터 주인공 배트맨보다 광기 어린 살인마 조커에 더 집중하는 걸 느끼게 된다. 횟가루를 칠한 듯 하얀 얼굴, 귀까지 찢어진 시뻘건 입술로 킬킬거리며 "왜 그렇게 심각해?"라며 도발해오는 조커에 '정의의 사도' 배트맨은 속수무책으로 흔들린다.
2008년 개봉 당시 영화 제목을 아예 '조커'라고 바꿔야 한다는 의견이 빗발쳤을 정도로 조커의 연기는 할리우드에서 '영화사상 가장 완벽한 악역'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배트맨 역의 크리스천 베일이 결코 연기를 못 하는 배우가 아님에도 조커의 존재감에 밀려 버린 것이다.
조커를 창조한 히스 레저는 골든글로브상 남우조연상에 이어 아카데미상까지 휩쓰는 기염을 토했다. 레저 자신은 조커 연기 이후 역할에 너무 몰입한 나머지 불면증에 시달리다 약물 중독으로 세상을 뜨는 비극의 주인공이 됐다.
2008년 악당 조커가 배트맨을 삼킨 것이 화제였다면 2009년에는 우리 안방극장에서 조연이 주연을 '밀어'버린 것이 화제다.

▶ '준비된 신인' 만루 홈런을 치다
2009년 방송된 MBC '선덕여왕' 고현정, 김남길, '내조의 여왕' 윤상현, KBS '아이리스' 김소연, MBC '밥줘'의 최수린은 모두 주연 보다 더한 인기를 얻었다. 과거에도 '명품 조연'이라는 찬사를 받은 배우들은 있었으나 이들처럼 주연의 존재감을 묻어버린 경우는 드물었다.
고현정에게 MBC 연기대상을 안겨준 '미실'이라는 캐릭터는 차가운 카리스마에 자기 사람, 판단력, 언변까지 모두 갖춘 '슈퍼' 악당이다. 신분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필사적으로 노력하는 모습도 매력적이라는 찬사를 받으며 시청률을 40%대로 끌어올렸다.
제작진에 따르면 고현정의 변화무쌍한 연기가 선덕여왕 덕만 역의 이요원과 자주 비교되는 바람에 이요원이 촬영 내내 마음고생을 심하게 했다고 한다.
그러나 정작 고현정은 자신의 연기 점수를 '60점'이라고 짜게 매겼다. 고현정은 O₂의 '2009년 최고의 드라마 연기자'로 선정된 직후 가진 인터뷰에서 "요즘 선덕여왕을 첫 회부터 다시 보고 있는데 본인의 연기가 진짜 유치하게 느껴졌다"고 말했다. 내심 선덕여왕을 연기할 줄 알았다가 '욱'하는 성격에 미실을 덥석 맡아 버렸지만 이요원보다 더 잘했을 것 같지는 않다고 겸손한 모습을 보였다.
'선덕여왕' 전반부가 선덕여왕 외전 '미실전'이라면 후반부는 '비담전'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미실의 아들 비담을 연기한 김남길은 기존 사극에서는 볼 수 없었던 짐승남과 순정남을 오가는 자유분방한 캐릭터를 성공적으로 연기하며 시청자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여세를 몰아 김남길은 MBC 연기대상에서 신인상, 우수상, 인기상, 베스트커플상 등 총 4개 부문 후보에 올라 남자 우수상과 베스트커플상을 거머쥐었다. 재밌는 사실은 2003년 MBC 31기 공채 탤런트로 데뷔한 김남길이 6년 만에 신인상 후보가 됐다는 것.
김남길은 MBC 공채 출신이지만 타 방송사와 영화판에서 키워져 다시 친정으로 돌아와 성공한 연기자다. 한동안 방송 드라마에 외주 제작 바람이 불면서 대부분의 공채 탤런트들은 찬밥 신세를 면치 못했다. 공채로 데뷔해도 드라마의 주역은 거대 기획사에서 키운 신인들이 가져갔던 것. 공채 시스템이 유명무실해지자 방송 3사는 2003년 무렵부터 탤런트 공채 제도 시행을 중단했다가 지난해 10월 KBS가 5년 만에 21기 공채 탤런트를 선발하는 것을 시작으로 최근 들어 다시 공채를 하고 있다.
▶ '아줌마의 로망'을 넘어 한류스타로
상반기 히트작 '내조의 여왕'에서 남자 주연 오지호(온달수 역)보다 더 뜬 사람은 허태준 역의 윤상현이다.
MBC 연기대상 남자 최우수 부문을 수상한 윤상현은 내조의 여왕에서 '아줌마의 로망'을 대변하는, 얄밉지만 사람냄새 나는 재벌 3세 역할을 입체적으로 연기했다.
드라마에서 부른 노래 '네버엔딩 스토리'로 디지털 음원 차트 수위권을 차지했으며 CF에서도 대박을 터뜨렸다. 그는 MBC 최우수연기상 외에도 베스트커플상, 인기상 등 3개 부문 후보로 올랐다. 내조의 여왕의 여세를 몰아 KBS '아가씨를 부탁해'에도 출연, 우수상과 베스트커플상, 인기상 후보자로 선정됐다.

31세라는 비교적 늦은 나이에 연예계에 데뷔한 윤상현은 2010년에는 한류 스타를 꿈꾸며 일본에서 싱글 앨범을 내고 가수로 데뷔한다.
200억여 원에 달하는 막대한 제작비, 해외로케이션으로 제작 초반부터 기대를 모은 블록버스터 드라마 KBS '아이리스' 성공의 최대 수혜자는 김소연이다.
김소연은 북한 공작원으로 분해 카리스마 넘치는 눈빛 연기와 과감한 액션 연기를 선보이며 '재발견'이라는 호평을 받았다. 극 초반에는 김소연 보다는 'CF 요정'인 김태희에게 시청자들의 관심이 쏠렸던 것도 사실. 그러나 드라마가 중반부로 접어들면서 시청자들은 김소연을 주목하기 시작했다.
재주 많은 배우 김소연은 최근 자선앨범을 냈다. 가정 형편이 어려운 아픈 어린이들을 돕기 위해 발매하는 자선앨범 '러브 트리 프로젝트' 음반 작업에 참여한 것. '착한' 김소연의 노래는 1월12일 온라인 음악사이트를 통해 공개된다.

MBC 일일 드라마 '밥줘'의 최수린(화진)도 주연을 '발라 버린'(쉽게 이긴다는 뜻의 인터넷 속어. '밟힌다'에서 나온 말) 조연 리스트에서 빼놓을 수 없다. 비록 드라마는 '막장'이라는 오명을 얻었지만, 최수린은 유부남을 유혹해 남의 가정을 파탄 낸 불륜녀로 자신의 이름 석 자를 대중에게 각인시켰다. 시청자 게시판에는 주인공 영란(하희라) 보다는 화진의 행보를 궁금해하는 글이 쏟아졌다.
'막장 드라마' 논란에 제작진조차 "말도 안 되는 대본 때문에 힘들었다"고 털어놓았지만 20%대의 시청률을 유지한 데에는 최수린의 공이 컸다.
▶ 주연급 '떼거리 캐스팅' 당분간 계속될 듯
이처럼 최근 들어 주연보다 각광 받는 조연 연기자가 줄줄이 등장한 배경에는 주연급 배우들을 한 드라마에 대거 기용하는 드라마 제작 환경의 변화가 자리한다. 거대 자본이 투자되면서 드라마의 대형화 바람이 부는 것. 또 경기 불황으로 영화 제작편수가 줄면서 주연급 배우들이 대거 안방극장으로 몰려간 이유도 있다.
배우들 입장에서도 부담 많은 타이틀 롤보다는 다양한 연기 변신이 가능한 주연급 조연에 매력을 느낄 수 있다. 최정윤은 한 방송에서 "주연을 맡으면 시청률을 책임져야 하는 등 운신의 폭이 좁지만 조연 배우로 지내면 그런 책임에서 자유로워 연기의 폭이 넓어지는 장점이 있다"고 말했다.
최현정 동아닷컴 기자 phoebe@donga.com
2008년 개봉 당시 영화 제목을 아예 '조커'라고 바꿔야 한다는 의견이 빗발쳤을 정도로 조커의 연기는 할리우드에서 '영화사상 가장 완벽한 악역'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배트맨 역의 크리스천 베일이 결코 연기를 못 하는 배우가 아님에도 조커의 존재감에 밀려 버린 것이다.
조커를 창조한 히스 레저는 골든글로브상 남우조연상에 이어 아카데미상까지 휩쓰는 기염을 토했다. 레저 자신은 조커 연기 이후 역할에 너무 몰입한 나머지 불면증에 시달리다 약물 중독으로 세상을 뜨는 비극의 주인공이 됐다.
2008년 악당 조커가 배트맨을 삼킨 것이 화제였다면 2009년에는 우리 안방극장에서 조연이 주연을 '밀어'버린 것이 화제다.

‘2009 MBC 연기대상’ 대상 수상자 고현정(좌). 남자 우수상 수상자 김남길(우). 사진제공 MBC
▶ '준비된 신인' 만루 홈런을 치다
2009년 방송된 MBC '선덕여왕' 고현정, 김남길, '내조의 여왕' 윤상현, KBS '아이리스' 김소연, MBC '밥줘'의 최수린은 모두 주연 보다 더한 인기를 얻었다. 과거에도 '명품 조연'이라는 찬사를 받은 배우들은 있었으나 이들처럼 주연의 존재감을 묻어버린 경우는 드물었다.
고현정에게 MBC 연기대상을 안겨준 '미실'이라는 캐릭터는 차가운 카리스마에 자기 사람, 판단력, 언변까지 모두 갖춘 '슈퍼' 악당이다. 신분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필사적으로 노력하는 모습도 매력적이라는 찬사를 받으며 시청률을 40%대로 끌어올렸다.
제작진에 따르면 고현정의 변화무쌍한 연기가 선덕여왕 덕만 역의 이요원과 자주 비교되는 바람에 이요원이 촬영 내내 마음고생을 심하게 했다고 한다.
그러나 정작 고현정은 자신의 연기 점수를 '60점'이라고 짜게 매겼다. 고현정은 O₂의 '2009년 최고의 드라마 연기자'로 선정된 직후 가진 인터뷰에서 "요즘 선덕여왕을 첫 회부터 다시 보고 있는데 본인의 연기가 진짜 유치하게 느껴졌다"고 말했다. 내심 선덕여왕을 연기할 줄 알았다가 '욱'하는 성격에 미실을 덥석 맡아 버렸지만 이요원보다 더 잘했을 것 같지는 않다고 겸손한 모습을 보였다.
'선덕여왕' 전반부가 선덕여왕 외전 '미실전'이라면 후반부는 '비담전'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미실의 아들 비담을 연기한 김남길은 기존 사극에서는 볼 수 없었던 짐승남과 순정남을 오가는 자유분방한 캐릭터를 성공적으로 연기하며 시청자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여세를 몰아 김남길은 MBC 연기대상에서 신인상, 우수상, 인기상, 베스트커플상 등 총 4개 부문 후보에 올라 남자 우수상과 베스트커플상을 거머쥐었다. 재밌는 사실은 2003년 MBC 31기 공채 탤런트로 데뷔한 김남길이 6년 만에 신인상 후보가 됐다는 것.
김남길은 MBC 공채 출신이지만 타 방송사와 영화판에서 키워져 다시 친정으로 돌아와 성공한 연기자다. 한동안 방송 드라마에 외주 제작 바람이 불면서 대부분의 공채 탤런트들은 찬밥 신세를 면치 못했다. 공채로 데뷔해도 드라마의 주역은 거대 기획사에서 키운 신인들이 가져갔던 것. 공채 시스템이 유명무실해지자 방송 3사는 2003년 무렵부터 탤런트 공채 제도 시행을 중단했다가 지난해 10월 KBS가 5년 만에 21기 공채 탤런트를 선발하는 것을 시작으로 최근 들어 다시 공채를 하고 있다.
▶ '아줌마의 로망'을 넘어 한류스타로
상반기 히트작 '내조의 여왕'에서 남자 주연 오지호(온달수 역)보다 더 뜬 사람은 허태준 역의 윤상현이다.
MBC 연기대상 남자 최우수 부문을 수상한 윤상현은 내조의 여왕에서 '아줌마의 로망'을 대변하는, 얄밉지만 사람냄새 나는 재벌 3세 역할을 입체적으로 연기했다.
드라마에서 부른 노래 '네버엔딩 스토리'로 디지털 음원 차트 수위권을 차지했으며 CF에서도 대박을 터뜨렸다. 그는 MBC 최우수연기상 외에도 베스트커플상, 인기상 등 3개 부문 후보로 올랐다. 내조의 여왕의 여세를 몰아 KBS '아가씨를 부탁해'에도 출연, 우수상과 베스트커플상, 인기상 후보자로 선정됐다.

‘2009 MBC 연기대상’ 남자 최우수상 수상자 윤상현 사진제공 MBC
31세라는 비교적 늦은 나이에 연예계에 데뷔한 윤상현은 2010년에는 한류 스타를 꿈꾸며 일본에서 싱글 앨범을 내고 가수로 데뷔한다.
200억여 원에 달하는 막대한 제작비, 해외로케이션으로 제작 초반부터 기대를 모은 블록버스터 드라마 KBS '아이리스' 성공의 최대 수혜자는 김소연이다.
김소연은 북한 공작원으로 분해 카리스마 넘치는 눈빛 연기와 과감한 액션 연기를 선보이며 '재발견'이라는 호평을 받았다. 극 초반에는 김소연 보다는 'CF 요정'인 김태희에게 시청자들의 관심이 쏠렸던 것도 사실. 그러나 드라마가 중반부로 접어들면서 시청자들은 김소연을 주목하기 시작했다.
재주 많은 배우 김소연은 최근 자선앨범을 냈다. 가정 형편이 어려운 아픈 어린이들을 돕기 위해 발매하는 자선앨범 '러브 트리 프로젝트' 음반 작업에 참여한 것. '착한' 김소연의 노래는 1월12일 온라인 음악사이트를 통해 공개된다.

MBC ‘밥줘‘에서 불륜녀 화진을 연기한 최수린(좌). KBS ‘아이리스’ 통해 재평가를 받은 김소연(우). 동아일보 자료사진
MBC 일일 드라마 '밥줘'의 최수린(화진)도 주연을 '발라 버린'(쉽게 이긴다는 뜻의 인터넷 속어. '밟힌다'에서 나온 말) 조연 리스트에서 빼놓을 수 없다. 비록 드라마는 '막장'이라는 오명을 얻었지만, 최수린은 유부남을 유혹해 남의 가정을 파탄 낸 불륜녀로 자신의 이름 석 자를 대중에게 각인시켰다. 시청자 게시판에는 주인공 영란(하희라) 보다는 화진의 행보를 궁금해하는 글이 쏟아졌다.
'막장 드라마' 논란에 제작진조차 "말도 안 되는 대본 때문에 힘들었다"고 털어놓았지만 20%대의 시청률을 유지한 데에는 최수린의 공이 컸다.
▶ 주연급 '떼거리 캐스팅' 당분간 계속될 듯
이처럼 최근 들어 주연보다 각광 받는 조연 연기자가 줄줄이 등장한 배경에는 주연급 배우들을 한 드라마에 대거 기용하는 드라마 제작 환경의 변화가 자리한다. 거대 자본이 투자되면서 드라마의 대형화 바람이 부는 것. 또 경기 불황으로 영화 제작편수가 줄면서 주연급 배우들이 대거 안방극장으로 몰려간 이유도 있다.
배우들 입장에서도 부담 많은 타이틀 롤보다는 다양한 연기 변신이 가능한 주연급 조연에 매력을 느낄 수 있다. 최정윤은 한 방송에서 "주연을 맡으면 시청률을 책임져야 하는 등 운신의 폭이 좁지만 조연 배우로 지내면 그런 책임에서 자유로워 연기의 폭이 넓어지는 장점이 있다"고 말했다.
최현정 동아닷컴 기자 phoeb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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