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상위 5% 20대 여자들의 배부른 고민 ‘마이블랙 미니드레스

입력 2011-04-01 10:0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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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블랙미니드레스 포스터.

"연영과(연극영화과) 나오면 연예인하고 체대 나오면 다 금메달 따냐?"(혜지)

허인무 감독의 '마이 블랙 미니드레스'(이하 마블미)는 동명의 소설을 영화로 옮긴 작품으로 명문대 연극영화과를 졸업한 네 친구의 꿈과 우정, 성공과 좌절을 그린다.

유민(윤은혜), 혜지(박한별), 민희(유인나), 수진(차예련)은 졸업만 하면 영화의 주인공처럼 살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하지만 쌓아놓은 스펙이라고는 그저 그런 몇 번의 연애와 클럽생활 뿐…. 혜지가 던지는 저 한마디 말만큼 4명의 주인공들은 누구는 별 꿈도 없이, 누구는 꿈을 꾸지만 잡지 못한 채 세월을 보낸다.

같은 처지에 놓인 서로를 위로하며 지내던 중, 아무 생각 없이 클럽만 전전하던 혜지가 갑자기 연예인이 되자 묘한 질투심이 생기면서 그들의 우정에도 금이 가기 시작한다.


▶성장통을 겪는 20대의 보편적인 삶?

'마블미'의 각본과 연출을 한 허인무 감독은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난과 미래에 대해 방황하는 20대의 진솔한 고민을 사실적으로 표현한다고 한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네 명의 주인공 중 혜지는 탁월한 외모 하나 믿고 사는 클럽 '죽순이'다. 이 남자 저 남자 갈아타며 놀다가 기획사 사장 눈에 띄어 연예계 데뷔하는 운도 기막히게 좋은 여자다.

요즘 뜨는 스타 유인나가 연기한 민희는 가장 잘 사는 집의 딸이지만 그저 세상 물정 모르는 철부지로 전공 살릴 생각은 전혀 없다. 유학을 위해 영어학원에 다니는 것이 전부다.

자존심 강한 수진은 4명 중에 가장 머리가 좋고 이성적이다. 하지만 매번 도전하는 영화 오디션은 실패, 자존심에 아픔도 내색하지 않는다. 그러다 죽순이었던 혜지가 하룻밤에 스타가 되는 것을 보고 못마땅해 대판 싸운다.

이 부분이 영화가 내세운 가장 큰 갈등이자 모든 고민의 해결점이다.

마지막으로 윤은혜가 연기한 유민은 가장 평범한 캐릭터다. '섹스 앤드 더 시티'의 캐리처럼 화자 역할을 하는 주인공이지만, 공감 가진 않는다. 요즘 같은 청년실업 속에 잘 알지도 못하는 정 PD라는 사람을 통해 운 좋게 지상파에 그것도 정규직 보조 작가로 입사하니까.

서른일곱 남자 감독의 한계일까. 아니면 이십대 여성들에 대한 관찰 조사가 덜된 것일까.

4명의 여주인공. 차례로 윤은혜. 유인나. 박한별. 차예련


여기 4명의 여자는 하나같이 인형처럼 예쁘고 매력적이다. 또 절대로 구차하거나 궁색하지 않으며 먹고 사는 데 지장이 없다. 툭하면 마사지 숍에서 관리 받고 클럽을 찾고 몇 백의 명품을 아무렇지 않게 살 수 있으며 고급 스파를 즐긴다.

성장통을 겪는 20대의 보편적인 삶이라고 하기엔 괴리감이 있지 않은가? 그녀들에겐 각자가 처한 상황에 대한 심각한 고민이 보이질 않는다.

사실 기자가 본 그 또래 20대 '평범한' 여자들은 이렇게 한가하지 않다. 빨리 취직이 안 돼 아르바이트를 전전하거나, 운 좋게 취직해도 계약직이기 일수다. 취직해도 쥐꼬리만 한 봉급으로 학자금 대출을 갚느라 등골이 빠진다. 집안 형편이 되는 친구들은 공무원 준비를 하느라 고시촌을 다니기도 한다. 삶이 각박하니 연애에 대한 흥미도 없어져 '건어물녀'라는 신조어까지 생겨났다. 건어물녀는 오랫동안 연애를 안 해 말라비틀어진 여자를 뜻한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와 '섹스 앤드 더 시티' 사이서 갈 길을 잃은 동화

그나마 유민이 보조 작가로 일하면서 서브 작가에 치이라 메인 작가 아들들 보모 역할 하랴, 직장 생활의 힘겨움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포맷을 그대로 가져왔지만)을 표현한 것은 건질 만했다. 메인 작가 역을 맡은 전수경의 쓸데없는 오버 연기를 보는 것은 불편했지만 말이다.

또 집안의 재산 압류로 인한 충격과 매번 낙방하는 오디션 때문에 친구들에게 거짓말 까지 하며 관계를 유지하는 수진이 혜지에게 느끼는 열등감도 이해가 된다. 나는 몇 번을 도전해도 안 되는 일이 혜지는 클럽에서 몸이나 흔들다가 캐스팅이 되다니 억울할 만도 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영화는 모든 과정에서 수진과 유민의 구직 모습과 직장 내 모습을 완벽하게 그려내진 못한다.

가장 압권은 갈등 해결 지점. 앞서 혜지와 수진의 싸움이 가장 큰 갈등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유민의 친구가 자살해 함께 찾은 고인의 장례식장에서 두 사람은 화해를 하고 4명의 친구는 술잔을 높이 들고 방황하는 20대를 견뎌보자며 웃는다.

고인은 유민의 학창시절 친구로 드라마 작가가 되길 꿈꾸지만 계속 낙방하고 후배에게 밀리면서 결국 자살을 선택하고 말았다. 자신을 졸졸 따라다니면서 그저 조용했던 친구를 위해 유민은 마지막 가는 길 외롭지 말라며 친구들을 다 불러 모은 것이다. 바로 그런 자리에서 이들의 오해의 골이 풀리는 것.

어찌 보면 고인은 외롭지 않았고 그 덕분에 4명의 주인공이 화해도 했으니 좋은 일이다. 하지만 그래도 장례식장에서 웃을 수 있는 것은 고인을 마음으로 떠나보낸 후가 돼야 했었다. 단순히 주인공들의 화해의 장으로 풀어내는 장치로 사용하는 것은 결코 옳지 못했다.

클럽과 고급 스파를 즐기는 그녀들.


▶대한민국 상위 5% 20대 여성들의 배부른 방황기


그렇게 영화는 10개월 후가 된다. 무엇이 잘못되고 꼬였는지도 모른 채 그저 두 친구 간의 싸움을 봉합하는 수준으로 20대가 처한 고민과 고뇌를 대신했다. 어차피 영화가 25살에서 끝나는 것이니 결론 같은 것은 필요 없었다.

하지만 적어도 그들이 갑자기 자기애가 피어나고 인생을 열심히 살게 된 계기, 과연 영화가 진행되는 동안 보여줬던 일렬의 과정들이 그녀 자신들을 변화시키기에 충분했는가에 대한 설명은 해줬어야 한다.

그렇게 끝까지 아무 설명 없이 남부럽지 않게 눈부시고 아름답게 살고 싶은 '예쁜 여자 4명의 스타일 보고서' 정도로 끝나버린다.

처음부터 20대 여자들의 고난과 방황을 서른 중반의 남자 감독이 소화해 내기에는 무리수가 있었을 것이다. 단순히 원작만을 살리기 위한 것이었다면 모를까, 20대 여성들의 공감을 얻는 것에는 분명히 실패했다.

영화를 감상하고 느끼는 것은 지극히 주관적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기자는 '마이 블랙 마이 드레스'에 대해 대한민국 상위 5%에 속한 4명의 주인공이 명품을 사랑하고 클럽문화를 즐기며 삶에 아무런 고뇌 없이 지내는 배부른 방황기라고 감히 평한다.

동아닷컴 이슬비 기자 misty82@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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