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 “장애아 성학대 장면, 지금도 부글부글”

입력 2011-09-19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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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도가니’의 남자주인 공유. 그는 학대받는 아이들을 연기하는 어린 연기자들에게 미안하고 안쓰러워 이들과 눈을 맞추는 일이 쉽지 않았다고 말했다. 김종원 기자 won@donga.com 트위터 @beanjjun·

■ ‘도가니’의 그남자 공유 “군대서 밤새워 읽은 원작, 아직도 가슴이 먹먹”

이 충격실화를 세상에 알리겠다
제작진 직접 꾸려 촬영장 이끌어
연기할 때마다 분하고 속상
면역력이 생겼다고 생각했는데…
제 영화라도 다시는 못 볼 것 같아요

“앞으로 또, 더 보지 못할 것 같아요. 면역력이 생겼다고 생각했는데….” 배우가 자신의 출연작을 더는 보지 못하겠다고 마음먹는 건 흔한 일은 아니다. 더욱이 그 이유가 간단치 않다면 ‘왜?’라는 의문으로 그 배우를 바라볼 수밖에 없다. 배우 공유(32)는 “연기할 때마다 너무 분하고 속이 상했다”고 했다. 영화 ‘도가니’(감독 황인혁·제작 삼거리픽쳐스)를 찍고 난 소감이다. 소도시 장애학교에서 벌어진 실화를 그린 이 영화는 공유를 빼고서는 작품의 시작과 끝을 이야기할 수 없다. 장애아동에게 가해진 성적 학대와 폭력을 영화로 만들어보겠다고 마음먹은 것도, 제작진을 구해 촬영 내내 영화를 이끌어나간 것도 바로 공유다. “왜 내가 이 이야기에 끌렸을까 수도 없이, 수백번 스스로에게 물었다”는 그는 “답은 결국 찾지 못했다”고 돌이켰다. ‘도가니’의 22일 개봉을 앞둔 공유를 만났다. 높은 산을 오랫동안 넘어온 듯한 표정을 짓는 그는 “내가 할 수 있는 건 다 한 것 같다”고 했다.


● 군대에서 읽은 원작…충격 속으로

공유가 ‘도가니’를 접한 건 군 복무 때다. 병장으로 진급하며 선물로 받은 공지영 작가의 동명 소설을 하루 밤새 다 읽고 “뜨겁고 먹먹해 가슴이 쿵쾅거리는 기분” 탓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 “언젠가 (여건이)허락된다면 제가 반드시 이 이야기를 영화로 알려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잊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공유는 영화에서 안개 낀 도시 무진의 장애학교에 새로 부임한 미술교사 강인호를 연기했다. 처음엔 음울한 학교의 분위기에 짓눌리지만 서서히 학교 안에서 벌어지는 장애 학생들을 향한 교장과 교사들의 잔인한 폭행, 잔혹한 성폭력을 목격하고 이를 고발하는 인물이다.

“폭력을 그저 바라보는 강인호가 바보 같기도 했어요. 강인호가 이해되는 현실은 더 어이가 없었죠. 그래도 서서히 변화하면서 무언가를 향해 소리칠 수 있다는 건, 연기자 공유에게도 감정을 해소하는 기회였습니다.”

10대 초반의 아이들을 향한 어른들의 학대를 그린 탓에 공유는 촬영장에서 마음 편한 날이 적었다. 아무리 촬영이라도 아이들이 맞는 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봐야 하는 장면은 “연기할 때도, 지금도 차마 눈뜨고 보지 못하겠다”며 고개를 저었다.

공유는 한편으론 ‘도가니’의 영화 제작을 추진한 사람으로 느끼는 중압감에도 시달렸다. 의욕이 앞서 영화를 추진했지만 혹시 “손을 잡아준 사람들에게 누가 되지 않을까”란 걱정부터 “미스 캐스팅 아니냐”는 지적을 받을까봐 편할 날이 없었다. “제가 무슨 민주투사도 아니고 너무 크게 판을 벌인 건 아닌지…. 우리는 이 영화로 돈을 벌어보겠다는 게 아니에요. 응원해달라는 거죠.”


● ‘도가니’는 연기 생활의 터닝 포인트

‘도가니’는 흥행 여부를 떠나 공유에게 전환점이 될 게 분명해 보인다. 드라마 ‘커피프린스 1호점’을 대표작으로 그동안 주로 로맨틱 코미디에서 활동했던 그는 ‘도가니’로 내면의 갈등에 시달리면서도 쉽게 흔들리지 않는 인물을 연기하며 한 단계 성장한 모습을 보여준다.

“‘도약’이나 ‘재발견’이란 평가는 저에게 너무나 부담스러운 수식어에요. 만약 20대 때 그런 말을 들었다면 ‘그것 봐’ 하며 자신만만했을 텐데 지금은 온통 부담뿐입니다. 어릴 땐 연기 욕심도 많았고 세상을 향해 ‘기다려봐! 내가 증명해볼게’라고 생각했어요. 모질고 거칠었죠. 이제는 마치 갈대처럼 방향에 따라 흔들리는 것 같아요.”

이해리 기자 gofl1024@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madeinhar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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