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 그때 이런 일이] 1926년 개봉 나운규의 아리랑, 일본인이 원본 필름 소장 주장

입력 2015-07-22 07: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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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3년 7월 22일

민요 ‘아리랑’이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된다는 사실에 의아해 하는 이들이 많다. 그만큼 우리 민족을 대표하는 노래임을 말해준다. 유네스코 세계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까지 등재된 ‘아리랑’이 국가 지정 중요무형문화재가 될 수 없었던 것은 문화재보호법상 “특정 보유자(보유단체)를 인정”해야 했기 때문이다. ‘아리랑’은 특정 보유자나 단체를 인정할 수 없었다. 다행히 법규정은 바뀌었고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할 수 있게 됐다. ‘아리랑’ 하면 떠오르면 영화, 바로 춘사 나운규의 ‘아리랑(사진)’이다. 하지만 그 원본 필름은 아직 찾지 못하고 있다.

1993년 오늘, 일본의 아베 요시시게씨가 이를 소장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날 발매된 국내 한 주간지를 통해서다. 그는 나운규의 ‘사랑을 찾아서’, 윤백남의 ‘운영전’ 등 1920∼30년대 한국영화 60여편의 중요 필름을 소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의사였던 아버지가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에 근무하면서 확보한 것이라고 소개했다.

하지만 이를 한국에 돌려주지 않으려 했다. 그는 그해 9월 ‘선데이 마이니치’ 인터뷰에서 “남북통일이 되면 원본을 내놓겠다. 그 전이라도 원본을 복사해 돌려줄 계획이 있다”(1993년 9월1일자 경향신문 재인용)고만 밝혔다.

이에 재일 연극인 김경원씨 등이 현지에서 이끈 ‘아리랑 되찾기 100인회’, 국내 ‘아리랑 연구회’ 등이 되찾기에 나섰다. ‘우리 민족영화 발굴 모임’도 힘을 모았다. 1998년 5월 “한국 정부가 일본에 공식 요청하면 돌려줄 의사가 있다”는 아베씨의 언급에 정부 차원의 노력도 이어졌다. 하지만 아베씨는 반환 의사를 명확히 하지 않았다.

그로부터 10여년 뒤, 아베씨는 2005년 2월 세상을 떠났다. 상속인은 없었다. 직후 열린우리당 민병두 의원이 일본 민주당 백진훈 참의원 등과 함께 필름 확인에 나섰다. 일본 문화청은 아베씨의 창고를 조사했지만 필름을 찾지 못했다고 알려왔다. 2010년 8월에는 한민족아리랑연합회 김연갑 상임이사가 일본국립필름센터에서 아베씨의 소장 필름을 확인했지만 ‘아리랑’ 등 한국영화는 단 한 편도 없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조선총독부 건물이 완공된 1926년 10월1일 서울 단성사에서 개봉한 ‘아리랑’은 이제 항일의 정서로 민중의 울분을 달랜 ‘아리랑’의 구슬픈 가락으로만 남았다. 그래도 되찾기 노력은 여전히 포기할 수 없는 일이다.

윤여수 기자 tadada@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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