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르포] 퀸즈네스트와 함께한 금요일 밤

입력 2016-08-01 14:4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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퀸즈네스트, 사진=amp 컴퍼니

퀸즈네스트, 사진=amp 컴퍼니

한동안 만나지 못했던 매니저 J실장과 약 2주전 쯤 술자리에서 우연히 마주쳤다.

반가운 마음에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자연스럽게 근황을 물었고, 밴드 퀸즈네스트의 일을 보고 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의외였다. J실장은 과거 대형 기획사에서 유명 아이돌의 매니저로 오랫동안 일해 왔기 때문이다.

더욱이 퀸즈네스트는 기자도 예전부터 관심을 갖고 노래를 즐겨듣던 밴드라 더욱 흥미가 돋았다.

더 생각 할 것도 없이 그 자리에서 인터뷰를 요청했고, J실장도 흔쾌히 이를 승낙했다. 그리고 며칠 뒤 연락을 한 J실장은 평범한 인터뷰와 조금 다른 방식의 만남을 제안했다.

“7월 31일에 공연이 있는데, 그전에 연습실에서 합주하는 것도 같이 보다가 연습이 끝나면 편안한 분위기에서 멤버들과 이야기를 나누면 어떨까요?”

이쪽에서 먼저 인터뷰를 요청한 상황에서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좋다”고 답하자 곧 날짜 조율에 들어갔고, 7월 29일 밤, 퀸즈네스트의 합주실을 찾기로 했다.

퀸즈네스트가 연습을 하고 있는 곳은 마포구 서교동의 ‘퀸’ 합주실이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퀸즈네스트와 퀸 합주실은 ‘퀸’이라는 단어가 이름에 공통적으로 들어가는 것과 달리 직접적인 관련은 없다고 했다. 다만 퀸즈네스트는 약 5년 가까이 이곳을 합주실로 이용하고 있어, 전혀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하기는 어려운 그런 공간이었다.

각설하고 J실장과 함께 합주실에 들어간 기자는 멤버들에게 인사를 건넨 후 이들의 합주 모습을 지켜보았다.

2007년에 결성해 벌써 10년차 밴드가 된 여유인지, 원래 멤버들의 성격인지 몰라도 어색하게 앉아있던 기자의 모습에도 개의치 않고 연습을 이어나갔다.

퀸즈네스트가 합주실에서 연습을 하던 건 공연곡이 아니었다. 퀸즈네스트는 최근 CM송의 제작의뢰를 받았고, 이를 만들기 위해 의논에 의논을 거듭하고 있었다.

그 결과 기자는 우연찮게 이들이 작곡을 하는 모습을 지켜보게 됐다. 물론 이 모습도 흥미로웠다.

모든 곡을 같은 방식으로 만들어내는지, 짧은 CM송이기에 효율적인 방식을 취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퀸즈네스트가 작곡방식은 키보디스트인 안성균이 멜로디를 만들면 이에 맞춰 기타리스트 사승환이 리프를 짜고, 또 드러머 김광민과 베이시스트 김성균이 박자를 맞춰 연주를 더하는 식이었다.

가끔 그 순서가 바뀔 때도 있지만 전체적으로 안성균과 사승환이 멜로디를 이끌어갔다. (키보드와 기타인 만큼 당연하다면 당연한 이야기이다)

이날 꼭 마음에 드는 멜로디 코드를 뽑아내진 못했지만, 어느 정도 방향이 정리되자 퀸즈네스트는 본격적으로 공연에서 선보일 곡들의 합주를 시작했다.

퀸즈네스트는 7월 5일 새 EP ‘Get To Move On’부터 크게 달라진 점이 있는데, 바로 보컬 오승유를 영입해 5인조 밴드로 거듭난 것이 그것이다.

또 이번 공연은 오승유가 무대 위에서 팬들과 만나는 첫 번째 자리였다.

이에 오승유는 합주를 진행하면서 무대 위 액션은 물론 인사말까지 점검하는 등 데뷔 무대에 대한 준비를 차곡차곡 진행했다.

물론 기존 멤버들인 안성균, 김성균, 사승환, 김광민 역시도 오랜만의 공연인 만큼 단단한 연주를 이어가며 이틀 뒤 무대에 만전을 기했다.

퀸즈네스트의 음악의 가장 큰 특징은 네오펑크와 이모계열의 장르에 기반을 둔만큼 거의 모든 곡이 ‘달릴 수’ 있다는 것이다. 거기다 톡톡 튀는 키보드 멜로디가 더해지면서 사운드의 청량감을 더하고 있다.

이제 국내 밴드씬에서 이런 류의 록음악을 하는 밴드가 씨가 마른 탓도 있겠지만, 이런 음악적 특징 때문에 퀸즈네스트는 국내 보다는 일본 혹은 미국의 밴드 사운드에 더 가깝다는 느낌을 많이 준다.

이를 느낄 가장 좋은 방법은 퀸즈네스트의 음악을 직접 들어보는 것이겠지만, 여전히 플레이버튼을 누르는데 주저하는 사람을 위해 이름이 알려진 밴드로 비교를 하자면, 엘레가든(Ellegarden)의 음악에 키보드가 추가된 느낌이랄까.

여하튼 이런 퀸즈네스트의 음악적 색깔 덕분에 합주실에서 이들의 연주를 듣자 곧 떠오른 생각은 ‘시원한 맥주 한 잔 마시면서 들으면 좋겠다’였다.

합주를 들으면서는 아니었지만 시원한 맥주 한잔은 곧 현실이 됐다.

한 시간가량의 합주가 끝났을 때 시계는 이미 오후 10시를 넘어가고 있었고, 퀸즈네스트와 J실장, 기자는 홍대 인근의 한 이자카야로 자리를 옮겼기 때문이다.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나눌 시간이 왔지만, 첫 만남의 어색함은 여전히 남아있었다.

이럴 때 더 큰 힘을 발휘하는 게 알코올 아니었던가. 맥주를 한잔씩 들이켠 후 소주잔이 돌기 시작하자 7명의 남자 -다만 안성균은 가정의 행복을 지키기 위해 중간에 먼저 일어났다- 는 금세 예전부터 알던 사이 같은 친밀감을 형성하기 시작했다.

특히 새로운 보컬이자 팀의 막내인 오승유는 멤버들에게 쉴 새 없이 쏟아진 농담의 주요 타겟이 되면서 편안한 분위기를 만드는 큰 역할을 했다.

또 오승유 역시 형들을 깍듯이 받드는 것 같다가도 수위가 높은 농담도 능청스럽게 받아치는 모습을 보여주며 이미 퀸즈네스트에 완벽하게 적응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날 오승유가 주인공이된 여러 가지 이야기 중에서도 가장 큰 화두는 ‘영어명’이었다.

국내를 넘어 글로벌 시장을 목표로 하고 있는 퀸즈네스트는 멤버 모두가 영어명이 있으며, 당연히 오승유도 합류와 함께 영어명을 만들었다.

그런데 오승유의 영어명이 재미있는 게, 영문은 ‘GEO’라고 쓰고 발음은 ‘게오’라고 읽는다는 것이다.

사실 오승유는 ‘지오’를 원했으나 포탈사이트 프로필을 등록하는 과정에서 실수로 ‘게오’로 등록이 되고 말았다.

이에 오승유는 이날도 “프로필을 지오로 바꿔달라”라고 요청했으나 멤버들은 “게오가 오히려 괜찮아 보인다”라고 맞서고 있었다.

오승유가 게오를 꺼려한 이유는 있었다. 오씨라는 성 때문에 과거 ‘O랄’이라는 별명이 있었고, 이것이 더해지면 ‘게O랄’이라는 괴랄한 이름이 되어버린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형님들의 권유와 회유가 이어지고, 기자마저 여기에 동참해 “평범한 지오보단 게오가 더 멋있어 보인다”고 거들자 결국 오승유는 “오케이! 렛츠고!”라며 게오를 자신의 영어명으로 받아들였다.

지금 돌이켜 보면 이것이 이날 자리의 가장 큰 성과가 아닌가 싶다.

이날 자리는 이미 인터뷰라는 애초의 목적은 사라진지 오래였다. 1시간이 채 되지 않았지만 그야말로 농담과 흰소리가 난무하는 격식 없는 술자리가 만들어졌다.

‘퀸즈네스트와 술자리를 가졌다’는 걸 뭘 이렇게 장황하게 쓰고 있냐고 말할 수도 있지만, 이날 이들과 나눈 대화는 평범한 인터뷰에서는 들을 수 없는 이들이 실제 살아가고 있는 모습을 직접 체감할 수 있는 자리였다.

게다가 이들이 살아가고 있는 삶에는 분명 음악이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원래 보컬을 맡았던 안성균이 좀 더 음악에 집중하기 위해 보컬을 내려두고 키보드에 전념하기로 했다는 이야기나, 헤비메탈을 연상케 하는 김성균의 묵직한 베이스 톤의 이유(이유는 김성균이 그냥 그런 톤을 좋아한다고 한다), 드러머 김광민이 팀에 합류하기위해 2년에 가까운 시간이 걸린 일, 지난해 안산M밸리록페에서 새벽에 공연한 덕분에 메인스테이지에 올랐던 일 등 안주거리가 된 이야기 하나하나가 직간접적으로 밴드와 음악에 연결이 돼 있었다.

흡연자라는 공통점 덕분에 조금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던 사승환에게서는 본격적인 음악이야기가 나오기도 했다.

퀸즈네스트는 이제는 메탈씬에서만 볼 수 있을 법한 디스토션 이펙터를 사용하는 몇 안 되는 밴드로, 사승환은 사운드의 질감을 트렌드에 맞게 고쳐나가야 할지에 대한 고민도 하고 있었다.

알코올의 힘을 빌려 기자도 사승환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꺼냈으니, 이는 말 그대로 아마추어가 프로에게 지적질을 하고 나선 꼴이었다.

아무리 기억을 돌이켜 봐도 도움이 될 만한 이야기는 1도 하지 않은 것 같은데, 기자의 이야기를 듣고 “이런 이야기가 우리에겐 정말 많은 도움이 된다”라고 체면을 세워준 사승환에게 고마울 따름이다.

퀸즈네스트의 향후 활동에 대해서도 들을 수 있었다. 앞서 말했듯이 J실장은 국내 대형 기획사 출신이자 한류스타 아이돌을 맡은 경험이 있는 인재로 그의 경험과 퀸즈네스트의 만남이 과연 어떤 시너지를 만들어낼지도 궁금증이 들었다.

음악 방송 출연이나 해외 활동 재개와 같은 계획은 없냐고 묻자 퀸즈네스트 멤버들은 J실장을 향해 “그건 형님에게. 자 형 어떻게 되나요?”라고 스스로도 궁금증을 보였다.

J실장은 “나도 7월부터 일하기 시작했다”라고 한발 물러서면서도 “일본 쪽과 계속 이야기를 진행 중이다. 올가을 일본 활동을 위해 준비 중이다”라고 가능성을 남겼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시간은 어느새 자정을 넘어 1시를 향해 갔고, 늘어가는 술병에 비례해 눈꺼풀의 무게도 점점 무거워졌다.

조금이라도 더 오랫동안 자리를 함께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기자의 눈꺼풀은 물론 고개까지 땅을 향했고, 이를 보다 못한 J실장과 사승환이 배웅에 나섰다.

금요일에서 토요일로 넘어가는 ‘불금’에 홍대에서 택시를 잡기는 그리 쉽지 않았다. 상당한 거리를 걸으면서 J실장, 사승환과 나눈 이야기도 많아졌지만, 솔직히 술기운 때문에 정확히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마냥 실없는 농담만 오고 간 게 아니라 밴드로 살아가기 힘든 현실에 대한 이야기도 섞여있었다는 것만 어렴풋이 떠오를 뿐이다. 그리고 이 어렴풋한 기억은 그 앞의 즐거웠던 기억의 한 구석에 자리 잡아 일말의 씁쓸함을 안겨주었다.

그렇게 한참을 기다린 후 겨우 택시가 도착했다. 시트에 몸을 눕히자 곧 안도감에 눈을 감았고, 그렇게 즐겁고도 씁쓸한 마음을 간직한 채 금요일 밤 홍대 거리를 빠져나왔다.
퀸즈네스트, 사진=amp 컴퍼니

퀸즈네스트, 사진=amp 컴퍼니


동아닷컴 최현정 기자 gagnrad@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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