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마틸다’는 ‘찰리와 초콜릿 공장’ 작가 로알드 달(1916~1990)의 작품을 원작으로 한 공연으로 극작가 데니스 켈리의 극본과 코미디언이자 작곡가인 팀 민친의 작사와 작곡, 매슈 워처스의 연출로 탄생됐다. 또 ‘레미제라블’의 극단 영국 ‘로열셰익스피어컴퍼니(RSC)’가 25년 만에 탄생시킨 뮤지컬이다. 2010년에 초연됐다.
‘마틸다’ 속 ‘미스 트런치불’은 거대한 덩치를 가진 운동선수 출신의 교장 선생으로 학생들을 못마땅하게 여기고 조카이자 학교 선생인 ‘미스 허니’를 괴롭히는 재미로 사는 듯 하는 심보가 못된 인물이다. 자신의 뜻을 따르지 않은 사람은 누구든 벌을 주는 ‘트런치불’ 모습에 화가 난 주인공 ‘마틸다’는 자신의 초능력으로 그에게 통쾌한 앙갚음을 하게 된다. 처음 이 역할 오디션 제안을 받고 관련 영상을 본 최재림은 제작진에게 “미친 사람이 필요하신 건가요?”라고 물었다고.
“대본과 악보를 받았는데 노래를 부르는 게 아니라 랩을 하는 것 같았어요. 대사도 실생활에서 사용하는 대화가 아니더라고요. 예를 들어 ‘밥은 먹었니’를 ‘농사지어서 쌀을 추수해서 밥 지어먹고 왔냐’라는 식? 예사롭지 않은 인물이라고 생각했어요. 오디션 때도 상한선 없는 광기를 보여 달라고 해서 성대를 쪼이고 표정이 일그러뜨리며 했어요. 마치 배너가 헐크 변신할 때 느낌이라고 할까요? 역할을 정말 하고 싶었는데 속으로 ‘붙으면 고생 좀 하겠다’고도 생각한 것도 사실입니다.(웃음)”
사진제공|신시컴퍼니
여자 어린이 ‘마틸다’가 주인공인 작품에서 ‘미스 트런치불’이 차지하는 분량은 많지 않지만 강한 존재감이 펼쳐진다. 그럼에도 최재림이 무대에서 쏟는 에너지는 어마어마하다고. 그는 “재미있는 시간이자 힘든 시간이다”라며 “아이들에게 부정적인 에너지를 주는 사람이지 않나. 그러다 보니 안 쓰던 몸을 쓰게 됐다. 직선적이고 빠른, 그리고 강하고 큰 움직임을 많이 줘야 한다. 시선을 줄 때도 몸 전체를 돌리며 연기를 하기 때문에 전작들보다 쓰는 에너지가 더 많다”라고 말했다.
“‘트런치불’은 스포츠맨 출신이라 운동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해요. 해머가 주종목이긴 하지만 고난도 발레 동작, 기계 체조, 리본까지 하죠. 제작진이 트런치불이 운동선수 출신이기 때문에 완벽성을 추구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최대한 모든 동작을 완벽하게 하려고 해요. 저 뿐 아니고 배우들이 다양하게 몸을 사용하는 모습을 보실 수 있을 거예요.”
외형적인 모습도 볼거리 중 하나. 험악한 인상을 풍기는 분장과 덩치가 큰 의상은 어린이들을 기겁하게 하기에 충분한 모습. 가발을 쓰고 의상을 입으면 족히 한 시간은 걸린다. 그는 “갑옷을 입은 기분”이라고 말했다.
“고리타분하고 자기 뜻대로 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라 의상도 앞뒤가 꽉 막힌 듯한 기분이 드는 게 중요했어요. 트런치볼을 보면 통나무 같은 느낌도 들어야 하고요. 그렇기 때문에 옷은 크지만 엄청 조여요. 그 상태로 3~4시간씩 있는데 의상을 다 벗고 나면 홀가분한 기분이 아닌 기운이 다 빠져요. 함께 연습하는 사람들이 ‘무슨 일이 있어’라고 물어볼 정도예요.”
‘트런치볼’은 원래는 여성 캐릭터이지만 남자 배우가 연기를 한다. 180cm가 넘어야 하는 조건 등 때문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제작진은 배우에게 “일반적인 여성의 목소리를 낼 필요 없다”라며 오히려 자신의 목소리를 내달라고 했다고. 또 ‘마틸다’는 전 연령대가 관람할 수 있는 작품이고 어린이가 주인공인 극이기에 연기의 무게감이 달라질 법도 하지만 특별히 차별점을 두지 않았다는 말이 인상적이었다.
“표현을 과장되게 하거나 하진 않아요. 보는 사람은 이상하지만 캐릭터는 그만의 신념으로 행동하는 거라 오히려 진지하게 연기를 하는 것 같아요. 일부러 웃기려고 애드리브를 하지도 않아요. 그럼에도 보는 관객 입장에선 그 상황이 재미있어서 웃으실 것 같아요. 그래서 관객들의 즉각적인 반응도 살짝 기대하고 있어요. 웃고 싶으실 땐 ‘빵빵’ 웃어주시고 화가 날 땐 야유도 보내주세요.”
주인공 ‘마틸다’를 비롯해 어린 배우들과의 연습은 어떠할까. 기존 성인배우들만 있던 연습실과는 또 다른 분위기일 터. 그는 “아이들이 있으니 연습실 분위기는 확실히 밝다”라며 “아이들은 에너지가 다르다. 성인 연기자들은 쉬는 시간에 다 앉아서 쉬는데 아이들은 힘들어 보이는데도 ‘훨훨’ 날아다니더라”고 웃으며 말했다.
“성인연기자들이 긍정적인 에너지를 받는 편인 것 같아요. 연습하는 걸 보면 즐겁고 보는 사람도 행복해요. 한 편으로는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고.(웃음) 그들이 어리다고 어린이로 대하지는 않아요. 똑같은 배우로 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언행도 더 신경 쓰고 있고요. 전 애들이랑 장난치고도 싶은데 저 때문에 연기에 집중을 못할까봐 참고 있어요.”
‘마틸다’는 상상력이 저절로 풍부해진 무대와 순수하고도 정의롭지 못한 어른들에게 일침을 하는 넘버들이 있다. 그 중에서 최재림은 ‘웬 아이 그로우 업(When I Grow Up)’을 들을 때마다 마음이 울컥해진다고 말했다. ‘웬 아이 그로우 업’은 아이들과 학생 분장을 한 성인 연기자들이 그네를 타며 “내가 어른이 되면 ○○를 할거야”라고 부르는 넘버로 ‘마틸다’의 하이라이트 중 하나이기도 하다.
최재림은 “특히 그 장면을 보면 눈시울이 불거진다. 아이들의 순수함이 아름답기 때문인 것 같다. 마음이 정화되는 것 같다”라며 “그 순간이 되면 모든 성인연기자들의 마음이 감동 혹은 놀라움으로 넘치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이어 무대에 대해서는 “더블캐스팅인 (김)우형 형이 1막 드레스 리허설을 하는 걸 봤는데 전체적인 색감이 너무 예뻤다. 애니메이션처럼 화려한 색이 많은데 과하지 않은 느낌이다. ‘헤어 스프레이’이후 동화 같은 무대는 오랜만이다”라고 덧붙였다.
내년 2월 10일까지 서울 LG아트센터에서 공연되는 ‘마틸다’를 보러 오는 관객들에게 최재림은 “주인공의 연령대가 낮아지면 ‘어린이 뮤지컬’이라 생각하지만 어른을 위한 공연인 것 같다”라며 “기성세대들이 보고 느끼는 것이 많을 것 같다”라고 말했다.
“‘마틸다’는 어린이가 주인공이지만 성인을 위한 뮤지컬이라 생각해요. 그 안에서 좋은 역할로 관객들을 맞이할 수 있다는 것이 좋고요. 지난해 ‘빌리 엘리어트’를 통해 전 연령대가 관람할 수 있는 장르도 성공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줬잖아요. ‘마틸다’도 영양분이 돼서 우리나라 뮤지컬 시장이 다양한 시도를 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동아닷컴 조유경 기자 polaris27@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사진|동아닷컴 국경원 기자 onecut@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