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SBS 드라마 ‘맛있는 인생’을 시작으로 배우로 발돋움한 ‘연기돌’ 이혜리. 드라마 ‘선암여고 탐정단’ ‘하이드 지킬, 나’ 등에서 경험을 쌓은 그는 드라마 ‘응답하라 1988’를 통해 폭발적인 사랑과 연기 호평을 받았다. 영화 ‘물괴’ ‘판소리 복서’에서 주연을 맡으며 스크린에도 진출하는 등 배우로서 필모그래피를 차곡차곡 쌓아왔다.
이달 종영한 tvN 드라마 ‘청일전자 미쓰리’(이하 ‘미쓰리’)는 이혜리의 아홉 번째 주연작. 지난해 드라마 ‘투깝스’ 이후 그가 1년 8개월 만에 안방극장에 선보인 드라마다. 이혜리는 극 중 청일전자에서 말단 경리로 일하다 하루아침에 회사 대표가 되면서 산전수전을 겪으며 성장해 나가는 이선심을 연기했다.
“오랜만에 한 작품이라서 부담도 걱정도 많았어요. 제가 맡은 선심이는 저와 조금 다른 인물이라 잘 표현할 수 있을까 싶었고요. 극 중에서 선심이가 조금씩 성장해 나가고 다른 캐릭터들과 점차 힘을 주고받는 모습을 보면서 저도 위로를 받았어요. 선심이로서도 혜리로서도 위로가 되는 작품이었어요. ‘미쓰리’는 저에게 위로였어요.”
“제가 연기하는 모든 캐릭터에 다 제가 있거든요. 덕선이에도 선심이에도요. 그래서 무엇을 하든 덕선이가 조금씩은 다 묻어나는 것 같아요. ‘이렇게 하면 또 덕선이 이야기가 나오겠지?’ 싶어서 드라마를 하기 겁났어요. 이번에 선심이를 맡으면서 고민 많았어요. 그리고 부담감에 ‘드라마를 혼자 짊어지고 가야하나’ 싶었는데 대본을 받고 선배들을 만난 후에는 ‘바보 같은 생각을 했구나’ 싶더라고요. 베테랑 선배들이 계신데 혼자 욕심냈던 거죠. 선배들에 잘 융화되면서 제가 선심이의 역할을 잘 한다면 충분한 요건을 가진 드라마인데 말이에요. 캐릭터를 만들고, 선배들과 함께 촬영하면서 부담감을 풀어나갔어요.”
첫 오피스물에 평범한 직장인 캐릭터. 계절마다 옷 다섯 벌 정도만 설정해놓고 ‘돌려 입기’하는 등 적극적으로 아이디어를 냈다는 이혜리는 직장인 캐릭터를 준비하며 ‘연차’ 개념도 처음 알게 됐다고 밝혔다. 간접 체험한 직장인의 애환을 언급하며 테이블을 둘러싼 기자들의 공감을 자아내기도 했다.
이혜리는 이선심을 연기하면서 깨닫고 배운 점들도 언급했다. 때로는 답답해 보이지만 인내하고 배려하는 선심이만의 리더십을 높이 평가하며 “나도 좀 배워야 하는 성격이구나 싶었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사회초년생 이선심에 실제 데뷔 초 자신의 모습을 투영하기도 했다.
“누군가 저에게 화를 내거나 제가 듣지 않아도 될 말을 들으면 화가 나거나 억울할 것 아니에요. 그런데 데뷔 초의 저는 제가 화났다는 것을 모르고 살았던 것 같아요. ‘나는 이런 이야기를 들어야 하는 사람인가 보다’ 싶어서 ‘죄송합니다’ ‘알겠습니다’가 입에 붙어 있었죠. 저 같이 정말 솔직한 사람도 그랬던 것을 보면 사회초년생이면 어떤 직업이든 그렇겠구나 싶더라고요.”
“네 명이 똑같은 직업을 가졌다가 다시 또 같은 직업을 가지게 된 거잖아요. 하하. 다른 사람들에게는 말하지 못하는 치부들을 언니들에게는 솔직하게 털어놓고 물어볼 수 있어서 좋아요. 만나면 일상적인 이야기도 하고 연기 이야기도 하곤 하죠.”
한 달 앞으로 다가온 2020년 걸스데이 멤버들과 함께 데뷔 10주년을 맞는 이혜리. 그는 걸스데이의 재결합 등 이벤트의 개최 가능성에 대해 “멤버들과 진지한 이야기는 안 해봤는데 나도 멤버들과 의미 있는 무언가를 만들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혼자 간절히 생각하고 있다. 여건이 쉽지는 않지만 할 수 있는 쪽으로 이야기하지 않을까 싶다”면서 “아니면 나 혼자라도 뭐라도 하고 싶다”고 전했다.
주연을 맡을 때마다 매번 “해낼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지”라고 다짐하며 임한다는 이혜리는 “언젠가 장르물도 해보고 싶다”고 바람을 드러냈다. 그러면서도 “막상 끌리는 작품은 사람 냄새나는 따뜻한 이야기”라면서 “지금 내 나이와 내 얼굴로 잘 표현할 수 있는 작품을 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저는 에너지가 많은 사람이거든요. 그 에너지를 작품 안에 녹이고 싶어요. 예전에는 작품을 하는 게 두렵고 무서웠어요. 그만두고 싶을 때도 있었죠. 시간이 지나고 돌아보니 매해 작품에 담긴 제 모습이 참 예뻤더라고요. 그때그때 제 얼굴을 담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시청자들에게 메시지를 줄 수 있는 배우가 되고 싶고요. 작품을 할 때마다, 대본을 읽을 때마다 새로운 기분이 드는데요. 데뷔 10주년을 앞두고 연예인으로서 배우로서 제2막에 접어든 것 같아요. 또 다른 시작이지 않을까 기대돼요. 그러고 보니 계속 시작만 하네요. 끝이 없어요. 하하”
동아닷컴 정희연 기자 shine2562@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사진|크리에이티브그룹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