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가 전 세계를 삼킨 지 1년여. 이 극심한 바이러스는 세상의 많은 것들을 단절시켰고 혼란에 빠뜨렸다. 연예계 현장 또한 비켜갈 순 없었다. 지난해 연초 1차 대유행 당시 제작발표회, 쇼케이스 등 기존의 대면 행사 대부분이 줄줄이 취소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한 것이었으니 당연했다.
그리고 우리는 언제나 그랬듯 답을 찾았다. 비대면 전환이었다. 영화, 방송, 가요 할 것 없이 각자의 플랫폼을 찾아 나섰고 과도기 끝에 비대면 행사는 이제 자연스럽게 자리 잡았다. 각종 제작발표회와 쇼케이스 등은 일정을 공지하는 동시에 취재진의 질문을 ‘사전’에 취합한 후 행사 당일 ‘실시간’으로 온라인 송출하며 대면 시스템과 가까운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인터뷰는 화상 채팅으로 질의응답을 주고받거나 서면으로 진행하는 경우도 있다.
점점 정형화된 비대면 행사가 익숙해져서일까. 취재진을 대상으로 한 제작발표회에 전에 없던 ‘사전 녹화’가 도입됐다. 같은 비대면이지만 실시간으로 소통하며 질의응답을 나눴던 이전과 전혀 다른 시스템이었다. MBC는 지난해 10월 ‘안싸우면 다행이야’ 제작발표회를 취소하는 대신 ‘제작 보고’ 영상을 공개했다. 출연자들의 간단한 Q&A와 첫회 하이라이트 영상을 공개하는 구성이었다.
MBC는 해당 행사가 썩 마음에 들었나 보다. 이후 대부분의 MBC 행사가 ‘온라인 제작발표회’를 내걸고 ‘사전 녹화’ 영상을 공개하는 방식으로 전환됐다. ‘볼빨간 신선놀음’ ‘손현주의 간이역’ ‘아무튼 출근’ 행사가 모두 이 방식으로 진행됐다. 자체적으로 ‘필터링된 영상’만 보고 알아서 쓰라는 식이었다.
여기에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온라인 사전 녹화로 진행되는 점 양해 부탁드린다”는 어불성설의 안내까지 덧붙였다. 출연진과 진행자가 한데 모이는 것은 이전 방식과 동일하고 행사가 실시간으로 진행된다고 해서 크게 영향을 받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SKY&KBS ‘수미산장’ 역시 해당 방식을 따라 시도하기도 했다.
급기야 오늘(9일) 또 다른 변종이 등장했다. MBC는 ‘심야괴담회’ 온라인 제작발표회에 기자들을 초대한다고 공지하며 이번에도 역시 ‘온라인 사전 녹화’로 진행된다고 알렸다. 그러면서 “제작 일정상, 사전 질문을 받지 않는 점도 함께 양해 부탁드린다”고 덧붙였다. 사전 필터링된 영상을 송출하는 것도 모자라 보여주고 싶은 질문과 답변만 공개하며 북 치고 장구 치겠다는 뜻이다. 제작발표회라 부르기도 민망하다. ‘홍보 영상’ 공개에 기자들을 ‘초대’하겠다는 저의는 과연 무엇인가.
동아닷컴 정희연 기자 shine2562@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