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영은이상우의행복한아침편지]대략난감한아내의우직함

입력 2008-05-19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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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10년 전 선을 보고 결혼을 했습니다. 아내는 부모님이 바라시는 대로 맏며느리 감이었습니다. 곰같이 우직하고, 집안일도 열심히 잘 할 것 같은 착한 여자였습니다. 비록 여우같은 애교나 센스는 없었지만 말입니다. 부모님이 적극 찬성하셨고, 저도 싫지 않았기 때문에 금방 결혼 결정을 내리게 됐습니다. 결혼 초기 아내는 원하는 애도 낳고, 집안 모든 일에도 발 벗고 나섰습니다. 맏며느리로서의 제 역할을 잘 소화해 나가니까 모든 게 다 좋아 보였습니다. 특히 곰처럼 묵묵히 자신의 일을 처리하는 게 마음에 들었습니다. 한결같고, 진지하고, 말없이 상대방을 배려할 줄 알았습니다. 아랫사람 말에도 먼저 귀 기울일 줄 아는 모습이 참 좋아 보였습니다. 하지만 딱 하나, 불만이 있었습니다. 재미가 없다는 거였습니다. 아내는 그야말로 무뚝뚝하고 목석같은 여자였습니다. 뭐든지 시키는 건 잘 하지만, 다른 건 도통 먼저 하는 법이 없었습니다. 요즘 다른 집 아내들은 집에서 살림만 하는 게 아니라 같이 맞벌이하면서, 빨리 집 장만해 보겠다고 욕심을 부린다고 들었습니다. 우리 아내는 그저 자식들 키우고, 살림하는 데만 신경 쓸 줄 알았지, 재테크라든지 부동산이라든지, 그런 쪽으론 전혀 관심이 없습니다. 신문도 안 보고, 책도 안 보고, 다른 아내들처럼 문화센터에서 뭘 배운다든가 그런 일도 없습니다. 마치 세상 돌아가는데 아무런 관심도 없는 사람 같습니다. 거기다 어찌나 눈치가 없는지, 지난번엔 모처럼 저희 부모님이 시골에서 올라오셔서 같이 저녁을 먹었는데, 다 먹고 설거지하기만 바쁠 뿐 부모님께 과일이라든지 커피라든지 그런 걸 내오질 않는 겁니다. 저는 큰 소리로 아들 녀석 이름을 부르고 “여기 커피 좀 타와∼” 했는데, 아들 녀석은 게임 한다고 나오지도 않고, 아내는 그 소리를 분명히 들었을 텐데 계속 설거지만 하고 있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제가 주방에 들어가 주전자 올리고 커피 끓이려고 했더니, 저희 어머님이 일어나셔서 “남자가 부엌에 오면 못 쓴다. 앉아 있어라” 하면서 직접 커피를 타셨습니다. 그래도 아내는 뒤 한번 돌아보지 않고 묵묵히 설거지만 했습니다. 이런 아내를 보고 있으면 답답하고, 솔직히 짜증도 납니다. 아무래도 제가 권태기에 빠진 게 아닐까 싶습니다. 안 그래도 요즘 봄이라고 여직원들은 화사한 옷차림으로 다니는데, 집에서 살림만 하는 우리 아내는 아직도 겨울 트레이닝 바지를 입고 있습니다. 만약 눈치 빠른 여우같은 아내였다면, 저의 이런 심경변화를 눈치 채고 기분전환도 시켜줬을 거 같은데… 온갖 애교도 부려주고 말입니다. 우리 아내는 맏며느리로서는 최고지만, 살아가는 잔재미는 하나도 없는, 정말 재미없는 여자입니다. 경기도 광주|김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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