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박한 세련미’가 돋보이는 ‘꽃순이를 아시나요’

입력 2014-12-22 17: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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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대학로 스타시티 예술공간SM에서 공연 중인 ‘꽃순이를 아시나요’는 주크박스 음악극을 표방한 작품이다.

별다른 홍보를 하지 않았음에도 순전히 입소문만으로 중·장년층 관객이 공연장을 가득 메우고 있다. 모두가 추억으로 가는 완행열차에 올라탄 탑승객이다.

‘꽃순이를 아시나요’를 아시나요.

‘꽃순이를 아시나요’는 가수 김국환의 히트곡 이름이기도 하다. 워낙 유명한 노래로 나중에 조용필도 불렀다. 최근에는 아이돌가수인 B1A4의 산들도 노래했다.

50대 중반 이상의 세대라면 1979년 개봉되었던 정윤희 주연의 영화 ‘꽃순이를 아시나요’를 기억할 것이다. 당시 22만 흥행기록을 세우며 우리나라 영화사에 한 획을 그었던 영화다.

‘꽃순이를 아시나요’는 음악극이다. 음악극과 뮤지컬은 쌍둥이처럼 닮았지만 다른 구석이 있다. 음악극은 뮤지컬보다 극적인 요소를 좀 더 강조한다. 뮤지컬의 노래(넘버)는 대사의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지만 음악극의 노래 또는 음악은 그렇지 않다.

라디오 DJ가 멘트를 한 뒤 “이즈음에서 분위기에 어울리는 음악 한 곡 듣고 가시겠습니다”하며 트는 음악을 상상하면 이해가 쉬울지 모르겠다.


● 순이와 춘호의 마지막 재회 명장면 … 투박한 세련미 돋보여


주크박스 음악극인 만큼 대중들의 귀에 익숙한 노래들이 다수 나온다.

주제곡이라 할 수 있는 꽃순이를 아시나요를 비롯해 내 이름은 소녀, 동백아가씨, 빗속의 여인, 님은 먼 곳에, 님아, 미인, 왜 불러,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 어떤 이의 꿈, 이젠 그랬으면 좋겠네, 인연 등 196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넓고 다양한 스펙트럼의 노래들이다.

이 노래들은 주인공 순이(마승지 분)의 일생을 관통한다. 가난한 시골집에서 태어나 서울로 식모살이를 온 순이는 봉제공장, 구로공단 노동자로 젊은 시절을 보낸다. 첫 사랑 춘호(김필 분)와의 사랑은 베트남전에서 돌아온 그가 밀수와 탈세혐의로 옥살이를 하면서 끝이 난다.

순이의 일생은 한국 현대사의 굵직굵직한 장면과 씨줄 날줄로 교묘하게 얽힌다. 순이는 한국의 경제성장 과정에서 희생된 우리들의 누이, 어머니의 대표 이미지이자 이름이다.

대본집필과 연출을 맡은 이동준은 순이의 굴곡진 삶을 낡은 신파로 풀지 않는다. 정교한 극적 장치와 대사, 빵빵 터지는 코미디로 극의 7할을 채운다. 나머지 2할은 음악에 던져둔다.

뮤지컬이 아닌 음악극답게 ‘극’적인 아이디어가 곳곳에서 발견된다. 장면마다 공장으로, 방으로, 감옥으로 변하는 철제 구조물도 멋진 도구다.

중·장년층을 겨냥한 작품이지만 젊은 관객의 눈과 귀에도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꽃순이가 아시나요’가 지닌 ‘투박한 세련미’덕분이다.

배우들의 연기도 좋다. SBS스타킹에서 동안배우로 화제가 됐던 마승지가 순이 역이다. ‘내 이름은 소녀’를 부르는 10대 소녀부터 알츠하이머병에 걸린 70대 노인까지 어색함없이 관객이 몰입하게 만들어준다.

순이의 첫사랑으로 마지막까지 순이의 주변을 맴도는 남자 춘호는 한국연극배우협회 2012년 올해의 배우상을 수상한 김필이 맡아 순박하면서도 야망이 있는 ‘한국의 가장’을 그려냈다.

노인이 되어 다시 만난 춘호와 순희의 마지막 벤치 장면이 두고두고 남는다.

알츠하이머병에 걸려 기억력을 거의 잃은 순이 옆에 앉아 춘호는 넋두리처럼 지난 이야기들을 늘어놓는다.

그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던 순희가 춘호를 돌아보며 멍한 눈으로 묻는다.

“근데, 오빠는 언제 월남에서 돌아오셨대요?”
춘호가 주름 가득한 얼굴에 환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한다.

“어제. 어제 왔어.”

앞서 말했듯 정교한 극적 장치와 대사, 코미디가 극의 7할 그리고 2할을 음악으로 채운 작품이다. 그렇다면 나머지 1할은?

관객의 몫이다. 관객들은 제각기 자신만의 ‘순이’를 하얀 1할의 백지에 그려 넣어야 한다. ‘꽃순이를 아시나요’는 그런 작품이다.

양형모 기자 ranbi@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 @ranbi3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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