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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 4. 2014/02/08
아이스로드, 그 곳은 ‘겨울왕국’
현지 기온이 영하 39도를 기록한 날, 오로라빌리지보다 더 춥다는 아이스로드로 향했다. 새로운 장소에서 오로라 사진을 담기 위함이다. 석양이 내리기 직전, 밤에 있을 오로라 촬영을 위해 구도를 살피기로 했다.
아이스로드는 호수가 얼음으로 변한 곳이다. 대형 호수가 깊이 2m 이상의 얼음으로 굳어버린, 말 그대로 ‘얼음 길’이다. 자동차들이 얼음이 된 호수 위를 달릴 정도다. 바닥에 쌓인 눈을 헤쳐보니 바닥이 투명했다.
얼음 위를 달려 도착한 아이스로드. 아이스로드는 흡사 ‘겨울왕국’이었다. 눈으로 만든 성이 하얗게 빛나고 있었고, 얼음 기둥을 붙여서 만든 조형물이 성을 보호하듯이 둘러싸고 있었다. 문 입구는 이글루를 닮았다. 왠지 저 쪽에서 ‘올라프’가 뛰어나와 반길 것만 같았다. (Yes! Why? Yes! Why?)
추위 따위는 Let it go(내버려 둬), 아이스로드에 도착하자마자 작가님들은 사진 촬영과 구도를 위해 이리저리 흩어졌다. 김 작가님은 눈밭에 누워 사진을 촬영하기도 했다. 문득 궁금증이 들었다. 사진을 찍을 때 좋은 구도를 잡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김: “사전 답사를 하는 이유가 있겠지요? 주변의 사물이나 조형물을 이용해 오로라를 효과적으로 표현하는 방법을 고민해 보세요. 오로라는 하늘에 나타나지만, 그렇다고 해서 하늘만 촬영한다면 사진의 감흥이 떨어질 수 있습니다. 하늘만 덩그러니 찍는 것보다는 주변의 사물을 이용하는 것이 보다 효과적입니다”
권: “기본부터 지켜야 합니다. 구도를 잡을 때 기본은 수평을 잘 잡는 것이지요”
사진작가가 말하는 ‘G프로2 촬영 뒷이야기’
아이스로드 탐방 후, 권오철 작가님 인터뷰를 위해 작가님의 방을 찾았다. 작가님들의 말을 빌리자면 ‘금녀의 방’에 침입했다. 이번 G프로2 오로라 촬영 프로젝트 참여와 관련해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나: 천체 사진 찍는 것, 오로라를 관찰하는 것을 좋아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권: “1989년 ‘재미있는 별자리 여행(이태형 저)’이라는 책이 나왔어요. 대한민국 최초의 별자리 안내서였죠. 그 책을 보고 ‘별’이라는 세계에 빠지게 됐습니다. 책 한 권이 인생을 바꾼 셈이지요. 새나 물고기를 좋아한다면 키우거나 잡아먹거나 하겠지만, 별은 따올 수가 없으니… 그래서 천체 사진을 찍게 됐습니다”
나: 하지만 원래 다른 일을 하셨고 사진을 전공한 것도 아니라고 들었어요. 그렇다면 사진은 어떻게 배우게 되었나요? 천체 사진을 찍는 것은 어디서 배우기 어려웠을 텐데… 그렇다면 일일이 하나하나 터득하셨나요?
권: “그렇죠, 독학을 했어요. 하지만 천체 사진은 고도의 기술이 필요한 분야라 카메라 기술에 완전히 통달해야 합니다. 사진 전공자들이 보는 교과서는 거의 다 읽었고, 대학생 때는 사진 수업도 들었어요. ‘재미있는 별자리 여행’ 책을 읽은 1989년 이후로 계속해서 사진 공부를 한 거죠. 또한 촬영 장비라는 것이 워낙 첨단 분야다 보니, 카메라 분야에서 새로 개발된 기술도 신경 써야 하고. 꾸준히 익힐 것이 많습니다”
나: 오로라를 여러 차례 촬영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이번이 몇 번째인가요?
권: “옐로나이프에 8번, 아이슬란드에 1번, 노르웨이에 1번 갔어요. 이번이 10번째입니다. 13일에 잠깐 귀국하고, 일주일 뒤 11번째로 오로라를 보러 갈 예정입니다”
나: 오로라를 여러 번 촬영했더라도 스마트폰을 사용해 본 것은 처음이라고 하셨지요, 처음 G프로2로 오로라 촬영하자는 제안 받으셨을 때 어떤 생각이 드셨나요?
권: “저는 2G폰 사용자입니다. 스마트폰을 쓰지 않기 때문에 휴대폰 분야에서는 원시인이라는 소리를 듣지요. 하지만 그 동안 스마트폰 사진 기능이 부럽긴 했어요. 스마트폰으로 찍으면 잘 나오기도 하고 간편하니까요. 페이스북에 사진을 올리는 것도 그렇지요. 남들은 스마트폰으로 찍어서 바로 올리는데, 저는 무거운 DSLR 가지고 다니다가 컴퓨터에 옮겨서 사이즈를 줄이고 올려야 하니 번거롭죠. 하지만 가난한 사진가라서, 카메라와 하드디스크를 사고 나면 남는 돈이 없으니 2G폰을 썼지요.
스마트폰으로 오로라를 촬영해 보자고 했을 때, 저는 잘될 거라고 믿었어요. 요새 나오는 스마트폰은 카메라 성능이 웬만한 콤팩트 카메라를 능가한다는데, 그렇다면 충분히 나오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실제로 현장에서 G프로2를 써 보니까 카메라 성능도 좋고 잘 나오더라고요”
나: G프로2로 오로라를 촬영해보니 소감이 어떠셨나요? 물론 DSLR과 스마트폰은 용도가 다르지만, 사진 촬영에 있어 장단점이 있다면.
권: “DSLR은 보통 짊어지고 다니는 무게가 40kg 가량입니다. 군장을 하는 것과 비슷하죠. 가방 열면 삼각대, 렌즈, 카메라가 주르륵 나오고. 반면 스마트폰은 작고 가볍고, 언제 어디서나 이용할 수 있지요. 주머니에서 꺼내기만 하면 즉시 찍을 수 있는 것이 큰 장점입니다.
사실, DSLR은 커머셜 용도라고 생각합니다. 저처럼 사진으로 일을 하는 사람이라면 최고급 화질이 필요하니, 고급 DSLR이 필요하지요. 하지만 아이가 웃는 모습, 삶의 즐거운 순간을 빨리 포착해야 하는 일상 속에서는 스마트폰처럼 간편한 것이 좋습니다. 사실, 사진으로 먹고 살 사람이 아니라면 굳이 DSLR을 살 필요가 없다고 봅니다. 이번에 G프로2로 오로라까지 촬영해 보니… 이제는 스마트폰으로 충분한 것 같습니다”
나: 일반인들이 오로라를 관측하러 온다면, 스마트폰으로 어떻게 사진 촬영을 하는 것이 좋을지 조언해 주세요. 지난 번에 보니 작가님은 15초에 1번씩 사진을 찍으시던데요.
권: “15초마다 사진을 찍었던 이유는 타임랩스 영상을 만들기 위함이었어요. 타임랩스 영상을 만들려면 수백 장의 사진을 이어 붙여야 하는데요, 스마트폰은 타임랩스 용도로 나온 것은 아니다 보니 일정 간격을 두고 계속해서 사진을 찍은 거죠. 영하 30~40도를 기록하는 곳에서 일일이 촬영 버튼을 누르는 ‘인간 트리거’라니… 생애 가장 힘든 촬영 중 하나가 아니었을까(웃음).
물론, 스마트폰 카메라 애플리케이션(이하 앱) 중에 재미있는 것들이 많아요. 예를 들면 일정 시간 간격으로 계속해서 셔터를 눌러주는 인터벌 촬영 앱들이 있습니다. 장노출 앱도 있습니다. 보통 스마트폰 카메라는 노출 시간이 짧은데, 장노출 앱을 사용한다면 일반인도 스마트폰으로 오로라를 찍을 수 있습니다. 다만 장노출 시에는 카메라가 흔들리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삼각대를 이용하거나 나무 사이에 끼워놓는 등 움직이지 않도록 합니다”
나: 스마트폰으로 촬영하고 후처리 작업은 어떻게 진행하세요?
권: “타임랩스 영상 작업을 합니다. 우리가 동영상을 만들 때 사진을 이어 붙이듯이, 오로라 영상도 똑같습니다. TV에서 보는 영상은 1초에 30장의 사진이 지나가는 것인데요, 동영상 소프트웨어에서 오로라 사진을 쭉 배열하면 영상으로 만들 수 있지요”
나: 그 밖에 오로라를 볼 때 염두에 두어야 할 점이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권: “사실, 가장 해 주고 싶은 조언이라면 ‘정말 중요한 순간은 눈으로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인간에게 최고의 카메라를 꼽으라면 단연 ‘눈’이지요. 눈 앞에 펼쳐지는 고해상도 실물을 두고 작은 카메라 액정만 쳐다보고 있는 것은 너무나 아깝잖아요. 물론 인증샷도 즐거운 취미생활이지만, 사진 찍는 것에 집중한 나머지 중요한 순간을 충분히 즐기지 못하는 경우도 많지요. 그렇게 찍어놓은 사진은 막상 잘 감상하지도 않아요.
그러니, 정말 소중한 순간은 눈으로 바라보시길 바랍니다. 저처럼 사진을 업으로 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사진을 찍는 이유가 무엇인지, 사진을 찍는 행위가 왜 중요한지 먼저 생각해보았으면 합니다. 무조건 찍어야 하나? 꼭 그렇지는 않을 겁니다.
간장 선생, 그 사람의 이야기
나: 오로라를 관찰하려면 추운 곳에서 오랜 시간 기다려야만 하니, 참으로 힘든 과정입니다. 그런데도 오로라 촬영을 계속하시는 이유나 즐거움이 있으신가요?
권: “북미 원주민들은 오로라를 ‘신의 영혼’이라고 불렀습니다. 밤하늘에 황홀한 빛이 춤추는 것이 얼마나 신비롭고 경이로운지… 이루 말할 수가 없지요. 밤하늘이 주는 경이로움 중 최고가 오로라입니다. 죽기 전에 보아야 할 천문현상 3가지가 오로라, 대유성우, 개기일식이라 합니다. 대유성우는 수십 년을 주기로 나타나니 만나기 힘들고요, 개기일식은 보았지만 오로라를 보고 느끼는 경이로움이 훨씬 강렬했습니다.
물론, 오로라는 아주 희미한 것부터 밝은 것까지 천차만별이고, 그 밝기는 수백 배까지 차이가 납니다. 화려하게 빛나는 오로라를 보기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희미한 오로라만 보았다고 해서 오로라가 시시하다고 오해하지는 않았으면 합니다. 낚시를 하더라도 대어를 낚는 게 쉽지 않은 것처럼, 강렬한 오로라를 보려면 인내와 운이 따라야 하지요” (실제로 그렇다. 필자도 4일 밤을 머무르며 화려한 오로라는 단 1번 만났다)
나: 가장 강렬했던 오로라를 본 것은 언제였어요?
권: “2012년 10월 즈음이었어요. 비가 내리는 날이었어요. 밤새 비가 내린다고 하기에 오로라 보기를 포기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하늘이 개더라고요. 차를 몰고 나가는데 구름이 쫙 갈라지면서 빛이 쏟아졌습니다… 무작정 차를 세우고 내렸는데 아! 몸이 굳었어요. 인생에서 다시 보기 힘든 장관이었습니다.
그때 사진을 단 1장도 찍지 못했어요. 넋을 놓고 보느라 찍을 수가 없었어요. ‘사진을 찍어야 할까’ 생각도 했지만 ‘저 장면은 내 실력으로는 못 찍겠다. 저 감동을 사진으로 옮긴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판단했어요. 그래서 깨끗하게 포기를 했지요. 그땐 정말 대단했어요”
나: 천체 사진가니까 다양한 별을 촬영하실 텐데, 오로라 외에 촬영하고 싶은 것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혹시 달 탐사나 우주 촬영 계획(?)은 없으신가요?(웃음)
권: “글쎄… 하늘에 있는 스타(star) 말고 땅에 있는 스타(!)를 찍어보고 싶어요. 예를 들면 김태희 씨. 방송국에 자주 갔고, 학교 후배인데도 못 봤어요. 김연아, 이효리 씨도 좋아합니다. (그는 “이효리 씨 팬이라고 꼭 써주세요~”라고 말했다) 달 탐사나 우주 촬영이라… 일단 돈이 없습니다(웃음)”
나: 혹시 누군가가 보내준다면 갈 의향이 있으신가요?
권: “위험하면 안 가죠. 오래 살아야 하니까(웃음). 일단 안전한지 확인하고… 우주정거장 같은 곳에서 사진 찍으면 재미있을 것 같은데. 설마 영화 ‘그래비티’ 같은 사고가 날까요? 만약 할 수 있다면 재미있을 것 같아요, 그쵸?”
나: 기존에 하던 일을 그만두고 좋아하는 일에 뛰어드는 것이 쉽지는 않으셨을 겁니다. 현재 꿈을 실현하는 삶을 살고 계신데, 학생들에게 조언하고 싶은 바가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권: “하고 싶은 게 있다면 일단 저질러라, 용기를 내라! 일단 저지르고 나면 보일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용기가 필요해… 라고 말하고 싶어요. 굶지만 않는다면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자. 밥 때문에 배부른 돼지가 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사실, 요새는 배부른 돼지가 되는 것도 쉽지 않죠, 다들 배고파서. 그렇다면 하고 싶은 일을 선택하는 게 낫지 않나. (실제로 그가 쓴 책 ‘신의 영혼 오로라’의 저자 소개에는 ‘수입은 절반 이하로 줄었으나 백배 이상 행복을 느끼며 살고 있다’라고 적혀 있다)
동화 ‘오즈의 마법사’를 보면 도로시는 집에 가는 것, 허수아비는 지혜, 양철나무꾼은 심장, 사자는 용기가 필요하다고 하잖아요. 근데 중요한 건… 용기였어. 마지막에 필요한 건 용기였어요. 사표 낼 때 그랬어요. 에잇, 회사 그만둘래! 하는 용기. 제 인생에서 두 번째로 잘한 일이 사직서를 낸 겁니다”
나: 그럼 첫 번째로 잘한 일은 뭐예요?
권: “결혼이요” (그는 “이렇게 얘기 안 하면 마누라한테 혼나요~”라고 덧붙였다. 왠지 미리 염두에 둔 멘트 같지만 귀여우시다)
나: 일을 그만둔다고 했을 때 가족들의 반응은 어땠나요?
권: 맨날 사진 하고 싶다고 입에 달고 살았기 때문인지… 그러려니 하더라고요.
나: 천체 사진을 찍다 보면 집에 들어가는 일이 별로 없을 것 같은데… 가족들은 어때요?
권: “생각보단 많아요. 우리나라는 맑은 날이 1년에 얼마 되지 않아요. 그렇기에 한국에서는 거의 일을 못 하고, 해외로 많이 돌아다녀요. 하지만 그렇게 해도 밖에서 자는 날이 1년에 60일 정도입니다. 물론 밖에서 있는 날이 점점 늘고 있지만, 나머지 300일은 집에 있습니다. 사진 편집을 비롯해 할 일이 많습니다”
나: 마지막 질문입니다. 사진을 잘 찍으려면?
권: “그건 김주원 작가에게 물어보는 게 좋지 않을까요?라고 대답했다고 해 주세요(웃음)”
“옛날 사람들은 사진을… 붓으로 그렸지요. 붓을 잘 쓰려면 서예법을 잘 익혀야 합니다. 사진도 마찬가집니다. 카메라 사용법을 숙지하지 않은 채 사진을 찍으면 제대로 된 결과물을 내기 어렵습니다. 글씨를 쓰려면 연필 쥐는 법을 먼저 배워야 하듯이, 먼저 카메라 사용법을 잘 익히자. 기본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하고 싶어요”
가장 중요한 건 ‘용기’
그렇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하고 싶은 일을 시도하는 용기다. 다시금 음악을 튼다.
믿어왔던 것들이 너를 배반할
것만 같아 후덜덜 떨겠지만
꿈꿔왔던 걸 절대 잊지마
네 자신을 믿어
두 눈을 부릅뜨고
look in the mirror
- 버벌진트, '우리 존재 화이팅'
인터뷰를 마무리하는데 어… 작가님이 조용했다. 빡빡한 일정을 소화해낸 그는 인터뷰를 마치자마자 즉시 그대로 의자 위에 앉아 졸았다.
“저기… 작가님?”
에필로그
무사히 한국에 도착해 출근한 내게 팀장님(권명관 기자)이 건넨 말.
“수영, 어땠어? 오로라는 잘 봤어?”
“네! 정말 멋있었어요”
“그래, 극지방 전문 특파원 다 됐네. 다음에 혹시 남극 촬영 제의 오면 네가 가는 거다, 알았지?”
“……네?”
글 / 캐나다 옐로나이프 IT동아 안수영(syahn@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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