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 이동통신사 CF ‘면도하는 남자’ 편에서 능숙한 불어 실력을 뽐내며 친구 대신 음식 주문을 해주던 그 남자. “너 마음에 든다”며 영상 통화하던 여자를 자신 있게 불러냈다가 엄청난 키 차이로 인해 폭소를 자아냈던 그 사람.
신인 배우 박재정(28)은 아직 CF 속의 ‘그 남자’로 더 유명하다. 하지만 박재정은 5월이 되면 자신의 이름을 시청자들에게 각인시킬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숨기지 않았다.
겨울 내내 촬영했던 케이블·위성 채널 OCN의 드라마 ‘과거를 묻지 마세요’(극본 정용기, 연출 김흥동)가 5월 중순 방송하는데 이어, 5월 5일부터는 KBS 1TV 새 일일극 ‘너는 내 운명’(극본 문은아, 연출 김명욱)의 주인공 호세 역으로 등장하기 때문이다. 호세는 대기업의 후계자로 여성그룹 소녀시대의 멤버 윤아가 맡은 장새벽에게서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찾는 남자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배우가 꿈이었다. 하지만 부모님의 반대로 동국대 연극영화과 대신 경영학과에 진학했다. 박재정은 입학과 동시에 영화동아리 ‘디딤돌’에 가입했고, 같은 해 동아리에서 제작한 단편영화 ‘기타노 다케시 따라하기’에서 덜컥 주연을 맡았다. 하지만 아직 연기에 대한 확신이 없던 시절이었다. 박재정은 “연기에 대해 좀더 진지하게 고민할 시간이 필요했다”고 했다. 군대에서 보낸 2년이 바로 그 시간이었다. 박재정은 병장을 달자 마다 연기동아리를 만들었다.
제대 후 본격적으로 연기 공부를 시작했고 운도 따랐다. 2005년 엔프라니 모델 선발대회에서 5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1위를 차지한 데 이어, 2006년에는 2700여명이 지원한 KBS 2TV ‘서바이벌 스타 오디션’에서도 최후의 6인에 올랐다.
순식간에 몸값이 급등한 CF 스타가 됐지만 그는 지난 해 윤동환 감독의 독립영화 ‘수도승’에 출연하며 배우의 꿈을 계속 키워 나갔다. 그리고 KBS 드라마 ‘아이엠 샘’에 이어 ‘너는 내 운명’을 만났다. “오다기리 죠를 좋아해요. 주연이든 조연이든 캐릭터에 푹 빠져서 연기하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피와 뼈’에서 기타노 다케시와 연기했던 오다기리 죠처럼, 근사한 배우의 꿈을 향해 박재정은 오늘도 조금씩 전진 중이다. 그의 비공식 데뷔작 ‘기타노 다케시 따라하기’는 여전히 진행중인지도 모르겠다.
허남훈 기자 noi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