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아의푸드온스크린]밥도,군것질도아닌…국수같은그들,면발이당긴다

입력 2008-07-12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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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영화속불륜과국수
‘국수’는 언제 먹여주느냐는 것으로 시작되는 각종 참견에 차라리 웃었던 때가 있었다. 서른 전에는 “요새 결혼식에 국수가 잘 안 나오더라고요. 다 스테이크나 갈비탕이잖아요. 혹시라도 하게 되면 꼭 국수로 할게요”라고 눙치거나 “국수 먹고 싶으면 사 먹어. 왜 내가 먹여 줘야 해?”하면서 까칠하게 굴었다. 그러나 서른이 넘어가면서 왜 결혼하지 않느냐고 묻는 타인 관심 과다 증후군 환자들에게 관대해졌다. ‘내가 결혼하기를 정말 바라나보다’, ‘정말 국수가 먹고 싶어 그런가보다’고. 며칠 전 MBC 드라마 ‘달콤한 인생’을 보고 마음이 헛헛해진 친구의 전화를 받았다. “후루룩거리며 우동을 먹는 남자에게 혈기방장한 젊음을 느꼈다면 나, 늙은 거니? 남편의 우동 먹는 소리는 저러다 ‘국수 더 삶으라는 거 아냐’ 싶어 짜증만 난단 말야. 아, 나도 그런 청년과 우동 먹었으면 좋겠어. 삿뽀로의 우동 아니고 만남의 광장 잔치국수라도.” 한참 웃으며 나이와 우동, 사 먹는 우동과 끓여 먹는 우동, 오연수의 비키니, 이동욱의 불안한 눈빛 연기를 주워 섬기며 영양가 없는 수다를 이어갔다. 왜 그들은 밥이 아닌 다른 것을 먹는 걸까? 그것도 스테이크, 갈비탕이 아닌 왜 국수나 우동 등을 먹는 걸까? 국수와 불륜이 최단거리로 이어지는 영화 ‘화양연화’에서 그들은 국수가 없었다면 어떻게 기억되었을까? 치파오를 입고 국수통을 들고 와락 끌어앉고 싶은 허리로 느리게 걸어가는 장만옥, 국수집 전등으로 담배 연기를 피워 올리던 양조위의 참담한 눈빛은 국수와 함께 떠오르는 잊을 수 없는 장면이 되었다. 2002년 스위스 프라이부르 영화제에서 대상과 시나리오상을 탄 박기용 감독의 ‘낙타들’에서도 국수는 같은 의미로 작용한다. 마흔 세살 남자와 서른 아홉의 여자가 만나 월곶의 한 허름한 모텔에서 일상적이지만 전혀 연계성 없는 대화를 나누다 섹스를 하고 그 일탈의 끝을 비빔국수를 시켜 먹는 것으로 마무리한다. 그 영화에서 비빔국수는 그 속성과 똑같은 효과를 냈다. 신경질이 날 정도의 일상성이 드러났지만 그래서 더욱 수긍이 되는 그 불륜의 국수가 꽤 인상적인 영화였다. 너무나 일상으로 하고 싶지만 일상은 아닌 데서 오는 일상에의 강렬한 희망, 너무나 특별한 일로 하고 싶지만 드러내놓고 특별하게 할 수는 없는 데서 오는 애틋한 주저가 그들이 밥이 아닌 국수, 라면이 아닌 국수를 먹도록 한다. 국수는 밥 같지만 밥이 아니고, 간식이고 새참이지만 군것질은 아니다. 이 미묘한 의미의 경계가 그들에게 선택되도록 하게 하는 것 같다. 그런데 국수 먹여달라고 하던 사람들은 국수를 먹여준 사람들 중 몇몇이 그 국수를 다른 생각으로 다시 먹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을까? 조 경 아 음식과 문화를 비롯한 다양한 세상사에 관심이 많은 자칭‘호기심 대마왕’. 최근까지 잡지 ‘GQ’ ‘W’의 피처 디렉터로 활약하는 등, 12년째 왕성한 필력을 자랑하는 전방위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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