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주고떠나는…당신은진짜챔피언!

입력 2008-01-03 09:2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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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 위의 오뚝이’ 최요삼 뇌사판정 6명에게 장기 기증하고 하늘나라로 《“평소에 배불리 먹을 수 있는 운동이라도 했으면 몰라…. 그렇게 먹지도 못하고 운동을 했는데, 게다가 결혼도 안 해서 자식도 없으니 죽은 뒤에도 제삿밥조차 차려 줄 사람도 없잖아. 그렇게 할 수는 없지.” 어머니는 참으려다 다시 눈물을 쏟았다. 2일 서울 송파구 풍납동 서울아산병원 중환자실. ‘링의 오뚝이’로 불렸던 최요삼(36)은 끝내 일어나지 못했다.》 눈 주위는 멍이 들었고 얼굴은 사고 당시보다 크게 부어올랐다. 최요삼의 어머니 오순이(65) 씨가 눈물을 흘리자 막내아들 최경호(34) 씨가 부둥켜안으며 다독였다. “그래도 형이 권투를 해서 이렇게 많은 사람이 찾아왔잖아요.” 지난해 12월 25일 세계복싱기구(WBO) 플라이급 인터콘티넨털 타이틀 매치를 마친 뒤 의식을 잃고 쓰러졌던 최요삼이 3일 0시 1분 사망했다. 서울아산병원은 2일 뇌사 판정을 내렸다. 뇌사 판정 후 사망 선고가 내려지기 위해서는 가족의 동의가 있어야 한다. 가족은 병원 측에 부탁해 마지막 사망 절차를 3일 오전으로 맞추었다. 이는 1996년 작고한 최요삼의 부친 최성옥 씨의 기일에 최요삼의 기일을 맞추기 위한 것이다. 영상취재 : 신세기 동아닷컴 기자 처음에는 가족들이 아버지 기일과 겹치는 것만은 피하려고 했으나 어머니 오 씨가 “내가 죽으면 누가 요삼이 제삿밥을 차려 주겠나”라고 고민하면서 “다른 자식들이 아버지 제사 지낼 때 요삼이 제사도 함께 지낼 수 있도록 맞추겠다”고 주장한 결과다. 동생 경호 씨는 “형은 마지막 12라운드를 마쳤다. 다 주고 떠난다. 장기 기증을 한다. 이것은 형의 뜻이다. 형의 신체 일부가 다른 사람에게 전해진다면 그 사람들을 통해서 형은 이 세상 어딘가에 살고 있으리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조금 일찍 가는 것뿐이다. 형은 마지막 가는 순간에 전 국민의 관심과 사랑을 받았고 아낌없이 베풀고 가게 돼 결국 인생의 승리자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병원 측은 이날까지 최요삼의 장기 이식 대상자로 6명이 정해졌다고 했다. 그러나 혈관, 연골, 심장판막 등의 조직 이식을 포함하면 앞으로 수십 명에게 혜택이 돌아갈 수 있다고 말했다. 이날 ‘4전 5기’ 신화의 주인공 홍수환(58) 씨를 비롯해 최요삼이 양어머니로 모셨던 ‘복싱계의 대모’ 심영자(65) 전 숭민프로모션 회장 등 복싱인들이 최요삼의 마지막 가는 길을 보기 위해 찾아와 눈물을 흘렸다. 영상취재 : 신세기 동아닷컴 기자 최요삼의 장례는 권투인장으로 치러진다. 발인은 5일 오전 6시. 빈소는 서울아산병원이다. 전 세계복싱평의회(WBC) 플라이급 챔피언 박찬희(50) 씨가 전무로 있는 경기 안성시 일죽면 유토피아추모관 측이 최요삼의 유해를 모실 특별실(납골당)을 무료로 제공했다. 최요삼은 한국 선수로는 5번째 링 사망자로 기록된다. 1995년 이동춘이 일본에서 가와마쓰 세추와의 경기 후 숨졌다. 1985년에는 국내 아마추어 선수가 경기 중 숨졌고 1982년에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미국의 레이 맨시니와 세계복싱협회(WBA) 라이트급 타이틀 매치를 벌였던 김득구가 숨졌다. 프로복싱이 도입된 초기였던 1940년대에도 링 사망 사고가 1건 기록돼 있다. 이 밖에 1982년에는 국내에서 시합을 벌였던 필리핀 선수가 숨지기도 했다. 한편 한국권투위원회가 마련한 모금계좌에 2일 오후 3시까지 1957만2687원이 모였다. 최요삼 개인계좌로 돈을 보낸 이도 많다. 서울아산병원은 지난해 12월 31일부터 올해 1월 2일까지의 사흘간 병원비를 면제해 주기로 했다. 가족들은 논의를 거쳐 성금 중 남은 금액은 최요삼을 기릴 수 있는 일에 쓰기로 했다. 이원홍 기자 bluesky@donga.com 촬영 : 동아일보 사진부 전영한기자 ■ 장기 기증 어떻게 최요삼 선수의 신장 2개, 각막 2개, 간장, 심장은 총 6명에게 기증됐다. 장기이식 대상자를 관리, 선정하는 국립장기이식관리센터는 “장기이식 대기자 중 혈액형과 조직적합성 검사를 거친 후 응급도가 높은 환자부터 최 선수의 장기를 받게 됐다”고 말했다. 뇌사 판정을 받은 최 선수는 2일 오후 10시경 서울아산병원 장기이식 수술방으로 옮겨졌다. 장기 적출은 관류액을 혈관 내 주입해 몸속에 남아 있는 혈액을 모두 빼내는 것부터 시작됐다. 법적 사망시간을 결정짓는 ‘대동맥 결찰’은 유족의 뜻대로 3일 오전 0시 1분에 시행됐다. 대동맥 결찰은 심장으로 들어가는 대동맥을 묶는 시술이다. 장기 적출은 심장 간장 신장 각막 조직(혈관, 연골, 심장판막 등)의 순서대로 진행돼 3일 오전 7, 8시경 완료될 예정이다. 최 선수의 장기를 받는 환자들은 전북대병원, 삼성서울병원, 서울아산병원, 순천향대병원 등에 입원해 있다. 적출된 장기는 보존액과 의료용 아이스박스에 담겨 이식 대기자가 입원 중인 병원으로 이송돼 이식 수술이 진행된다. 이번에 최 선수의 신장을 받게 된 기모(27) 씨는 고교 3학년부터 만성 신부전증을 앓아 왔다. 만성 신부전은 노폐물을 걸러내는 신장이 고장 나 몸에 독소가 계속 쌓여 가는 병이다. 수술이 시작되기 전 기 씨는 “많이 떨린다”며 “주시는 분한테 너무 고맙고 건강히 잘 살겠다”고 눈물을 글썽였다. 김현지 기자 nu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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