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링에 오르다
모든 스파링 경기가 끝나고 내 차례다. 상대는 페더급(57kg이하) 서동식(22). 서동식이 가드를 올린 상태에서 3분간 때리기만 하면 된다. 주먹을 날려도 서동식의 머리 앞에서 주먹이 멈추는 느낌이다. 위빙(상대 공격을 피하기 위해 머리와 윗몸을 좌우로 흔드는 기술)만으로도 십중팔구는 피한다. 오기가 생겼다. 공격만 하는데 1점은 내야하지 않을까.
“복부를 치면 상대의 다리가 무뎌진다”는 천 감독의 지시가 떠올랐다. 밀착해 있다가 옆구리를 때렸다. 서동식의 표정이 순간 변했다. 15년간 나를 괴롭힌 복싱 트라우마를 치유하는 순간일까. ‘충격을 줬구나’ 생각했더니 사전에 머리만 공격하기로 되어있었단다. 경기가 끝나고 딱 한 대만 때려달라고 부탁했다.
“정말요? 괜찮아요?”라는 물음에 두려웠지만 기왕 체험하는 것, 꼭 맞을 때의 느낌을 알고 싶었다. 가벼운 잽 한 방으로 합의를 봤다. “30% 정도의 수준으로 때렸다”고 했다. 결과는? 이래서 마우스피스가 필요한 것이었다. 내 복싱 트라우마는 당분간 계속될 듯싶다.
태릉= 전영희 기자 setupm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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