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인사 대천명
올림픽에는 시드 배정이 없다. 경기 당일 결정되는 대진표는 무작위로 작성된다. 세계 랭킹 1,2위의 선수가 1회전에서 맞붙는 경우도 생긴다. 메달 유망주가 덜미를 잡혀 의외의 선수가 금메달을 목에 걸기도 한다.
2004년 12월 이후 국제대회 28연승을 달리던 이옥성 역시 2006 도하 아시안게임에서 한 수 아래로 평가받던 중국의 양보에게 졌다. 아마추어 복싱연맹 최희국 사무국장은 “금메달은 하늘이 내리는 것”이라고 했다.
이옥성이 “열심히 하면 당연히 대진운도 따를 것”이라고 해서 캐물었더니 역시 명답이 나온다. “똑같은 대진표를 받아도 훈련을 얼마나 했느냐에 따라서 마음가짐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아무리 좋은 대진표를 받아도 훈련량이 부족하면 불안하다”고 했다.
이옥성의 손등 뼈는 손목 쪽으로 밀려있다. 육안으로도 일반인과의 차이가 확연하다. 쉼 없이 샌드백을 친 결과다. 이옥성은 “나는 항상 대진운이 좋은 편”이라고 했다.
○은퇴
이옥성은 아직 군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 세계선수권 우승은 병역특례의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올림픽에서 메달을 따면 명예롭게 국가대표에서 은퇴를 하겠다는 것이 이옥성의 결심이다. 실업팀에서 선수생활을 계속하더라도 체급을 올릴 생각이다. “경기 때마다 7kg씩 감량하는 것이 너무 힘들다”고 털어 놓았다.
미뤄왔던 신혼여행도 떠나야 한다. 이옥성은 올 1월 5일 결혼식을 올리고 다음 날 태릉선수촌으로 복귀했다. 기념일 한 번 챙기지 않던 무심한 남자는 3월 14일 사탕바구니를 아내에게 안겼다. 홍삼, 녹용 등을 챙겨주시는 장모님의 사랑에도 보답해야 한다.
○징크스
복싱계에서는 “선수가 인터뷰를 하면 메달을 못 딴다”는 징크스가 있다고 했다. 미안한 마음에 “괜찮겠냐?”고 물었더니 “복싱이나 복싱선수나 떨어질 곳이 어디 있겠냐?”고 반문한다. “어차피 저는 복싱을 떠나서는 못 살아요. 제게는 올림픽 징크스보다 복싱을 살리는 게 더 중요합니다.”
복싱을 한마디로 정의해달라는 질문에 “복싱은 마약”이라는 답변을 내놓은 이 남자, 확실히 복싱에 흠뻑 젖어있었다.
태릉= 전영희 기자 setupm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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