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재훈의감독읽기]셈안맞는,축구는예술

입력 2008-03-27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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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다 보면 ‘과연 축구는 과학의 범주에 들어가는가? 예술의 범주에 들어가는가?’ ‘축구에 관련된 학문이 과학이냐 예술이냐’라는 정의를 내리지 않을 수 없다. 과학과 예술을 나누는 가장 큰 경계는 ‘반복성’에 있다고 본다. 1+1은 언제나 2가 된다. 수소와 산소의 혼합물은 물이 된다. 이는 불변의 진리이며, 실증적이다. 하지만 베토벤의 교향곡 5번은 어느 교향악단이 어느 지휘자의 리드로 연주하느냐에 따라다르다. 그 느낌은 지휘자의 영감, 연주자의 테크닉으로 음악의 세련됨이 확연히 달라지게 마련이다. 1+1=2가 되는 수학은 과학에 속하고, 교향악단의 연주법은 예술에 속한다. 한국 축구계에서도 많은 지도자들이 감독직을 수행하면서 과학적 시도를 도입하려고 노력한다. 선수의 기초체력 측정부터 영상분석 등 여러 가지 과학적 방법론이 감독의 업무를 위한 길을 열어주는 듯 선호하고 있다. 과학을 신봉하는 지도자들은 선수 개개인의 능력의 합이 팀 전체의 능력이 된다고 생각하며, 선수 연봉의 총합이 많은 팀은 언제나 앞서 있을 수 있다고 믿게 마련이다. 실제로 1993∼1994 시즌 프리미어리그에서 연봉 총액이 가장 많은 맨유가 그 해 우승을 차지했다. 선수 급여를 가장 적게 지출한 셰필드 유나이티드, 올드햄, 그리고 스윈든 타운은 리그에서 강등됐다. 이러한 가정이 옳다면 성공을 위해 감독의 할 일은 매우 간단하다. 우승을 하려면 당연히 돈 많은 구단으로 가면 된다. 어찌 간단하지 않은가. 그렇지만 그런 감독을 받아줄 구단이 있을 리 만무하다. 조금 더 신경 써서 값싸고 질 좋은 선수들을 구해야 한다는 것이 구단의 입장일 것이다. 이것은 축구계의 가장 큰 딜레마 중의 하나다. 과연 축구는 과학일까? 축구가 과학적이라면 11명의 울트라 슈퍼급 선수들을 모아 놓으면 우승은 떼논 당상이 될 것이고, 감독이 할 일은 별로 없을 듯하다. 그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알렉스 퍼거슨 감독처럼 관중석에서 껌이나 씹으며 골이 들어갈 때 두 손 벌려 환호하기만 하면 된다. 뭐, 경기는 선수들이 하고, 선수들 월급은 구단 경리가 알아서 처리해 주니까. 하지만 축구는 과학이 아니다. 산술적인 1+1+1…… =11이 되지 않는다. 예술은 인간의 불합리성에서 시작한다. 미국의 철학자 리처드 맥케이 로티는 ‘합리성과 객관성을 정확한 표상에 준거해서 예술을 설명하려는 기도는 자기기만이다’라고까지 했다. 모든 감독은 똑같은 선수들을 데려다 놓아도 다른 축구를 구사한다. 같은 선수, 같은 지원이더라도 예상된 결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보장은 축구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축구에서 똑같은 측정과 영상장면이라도 감독의 축구철학과 시각에 따라 해석은 판이하다. 오직 정답은 결과론에 따라서 해석될 뿐이다. 이쯤이면 축구가 예술의 범주에 근접해 있다는 필자의 주장이 설득력을 가지지 않을까? 축구는 과학이라고 하기 보다는 예술이다. 누가 뭐라 한다 해도. 하재훈 <대한축구협회 기술부장. 호남대 스포츠레저학과 겸임교수> 한해 동안만 프로축구 지휘봉을 잡았지만, 너무 많은 것을 배웠고 또 깨우쳤다. 당시 느꼈던 감독의 희로애락을 조금은 직설적으로 풀어볼 요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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