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일떡초콜릿…골프백은미니슈퍼?

입력 2008-04-01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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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물반입금지불구백에가득…캐디는안주고끼리끼리‘얌얌’쓰레기는“나몰라라”
얼짱캐디: 옛말에 음식 앞에 두고 사람 맘 상한다더니 하나 틀린 것 없더라. 왕언니: 그럼 먹는 끝에 맘 상한다잖아. 들잔디 소녀: 우리도 그럴 때 많이 있잖아. 그런 건 벌써 초월했어야지. 표시하면 서로 민망하잖아. 왕언니: 무슨 일 있었구나. 얼짱캐디: 응, 언니. 며칠 전에 여자 손님 네 분을 모시고 근무 나갔는데 비기너 세 분에 가족 회원 한 분이었어. 왕언니: 그럼 힘들었겠다. 들잔디 소녀: 아니, 난 여자 비기너가 더 좋을 때도 많더라. 좀스럽게 구는 까다로운 남자 고객 보다는 크게 까다롭지 않잖아. 얼짱캐디: 난 여자, 남자 고객 안 가려. 고객마다 중요하게 원하시는 게 다 따로 있으니까 내가 잘 맞추면 나쁜 고객은 없더라고. 좋은 고객 나쁜 고객은 캐디하기 나름이라잖아. 들잔디 소녀: 그 정도 경지에 올랐으면 더 이상 진상(?)은 없지. 근데 뭐가 문제야? 얼짱캐디: 우리가 제일 기분 나쁜 게 뭐야? 무시당했다는 느낌을 받을 때잖아. 왕언니: 그렇지. 몸 힘든 건 참아도 무시당하는 건 정말 힘들지. 누구는 안 그러겠니. 얼짱캐디: 며칠 전, 내가 담당할 팀을 배치 받고 골프백을 찾아서 카트에 싣는데 여자 백치고 상당히 무거운 거야. 그래서 비기너라 볼이 많은가보다 했지. 첫 홀에서 회원이 말씀하시더라고. 세 분이 필드에 두 세번 나온 비기너고 본인은 3년 정도 치셨다면서 잘 부탁한다고. 첫 홀은 역시 비기너 답게 볼이 뜨는 걸 다행으로 생각하면서 무난하게 지나갔어. 문제는 2번홀에서야. 네 분이 약속이나 한 듯 일제히 가방에서 뭘 꺼내시는데 지퍼백에 담은 종류별 과일, 떡, 김밥, 초콜릿, 보온병에 커피까지. 웬만한 뷔페상 차리겠더라. 왕언니: 우린 음식물 반입 금지인데. 너희는 괜찮아? 얼짱캐디: 아냐, 우리도 물론 안 되지. 들잔디 소녀: 남자 고객들은 음식을 가져오는 자체를 싫어하시는데 여자분들은 아무래도 살림을 하시니까 다른가봐? 얼짱캐디: 아무튼 "고객님, 저희 골프장은 음식물 반입을 금지하고 있습니다" 했더니 "알아 그래서 여기다 가져왔지. 언니, 너도 같이 먹고 우리 재미있게 돌자. 우리가 선수할 것도 아니고 즐겁게 놀다 가면 되지 안 그래?" 그렇게 말씀하시길래 잠시 고민했지만 어떡하겠어. 오늘 상황으로 봐서는 바빠서 별로 드실 시간도 없을 것 같고 해서 "네, 고객님 그러시면 진행만 조금 신경 써주세요" 하고는 다시 즐겁게 모시기로 마음먹고 시작했지. 문제는 5번홀 끝나고 그늘 집 앞 도착했을 때야. 앞 팀이 그늘 집에 계신거야. 우리도 잠시 쉬어야 했거든. 그런데 이 분들이 "우리는 먹을 것 다 가져왔으니 여기서 먹을게. 언니는 가서 뭐 좀 먹어" 하시는 거야. 왕언니: 그럼 어떻게 먹냐. 고객이 안 드시면 좀 그렇잖아. 얼짱캐디: 응. 나도 그래서 "괜찮습니다" 했더니 "어떡하지, 떡이 네 개밖에 없네" 하시는 거야. 난 더 이상 그 자리에 있기가 민망해서 볼 타월을 가지고 화장실로 향했지. 잠시 후에 나와 보니 카트에 쓰레기만 소복하게 쌓여 있는 거야. 드셨으면 휴지통에라도 버리시지. 그리고는 정신이 없으신 덕분에 나에겐 먹어보란 소리 한 번 안하시는거야. 애매한 시간에 티업을 해서 딱 점심시간이라 배고프던 참이었는데. 그래도 다음 그늘 집이 있으니 하고 위로하면서 9홀 마치고 그늘 집 앞에 도착했는데, 고객님들께서 배가 불러 그늘 집에 안들어 가신다네. 언니도 알지만 비기너 세 분 모시고 진행을 마치려면 얼마나 뛰어 다녀야 하니. 그날 정말 종일 쫄쫄 굶었는데 돈이 있어도 사먹을 수도 없고. 고객님들 가져 온 거 달랄 수도 없고. 하는 수 없이 내 보온병에 담아간 차로 허기를 달래며 마치고 나니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나는거야. 들잔디 소녀 : 너무했다. 정말 힘들었겠다. 얼짱 캐디: 그것으로 끝난게 아냐. 정말 압권은 마지막에 있었어.18번홀 티잉그라운드에서 먹다 남은 과일이며, 초콜릿을 주섬주섬 넣은 봉투를 쥐어주시는거야. "울 언니 오늘 정∼말 고생 많았다. 언니 너무 고마워서 이거 줄게. 이거 정말 맛있는건데 언니 하나도 못 먹었잖아 이거 가져가서 먹어"하는 거야. 잠시 띠∼잉 한데 거기서 이미지 구길 수 없어서 아무런 말도 못하고 그냥 살짝 미소를 보이고 말았어. 들잔디 소녀: 진짜 맘 상했겠다. 왕언니: 너무 이기적이다. 서로 조금만 상대의 입장이 되어 보면 맘 상하는 일이 없을 텐데. 김 현 수 골프장교육 전문업체 EMG에서 실장으로 일하고 있는 캐디와 고객의 커뮤니케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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