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명환이가 나오는 걸 생각하면 어제는 이겼어야 했는데….”
6일 잠실 LG전을 앞둔 롯데 톱타자 정수근의 말이었다. ‘롯데 킬러’ 박명환이 선발로 나오니 이기기 힘들고 그래서 전날 연장 10회 끝내기 홈런을 맞고 진 것이 마음에 걸린다는 말이었다.
그랬다. 적어도 5년 가까이 롯데는 ‘박명환의 밥’ 이었다.
박명환은 두산 소속이던 2003년 6월 14일 사직 더블헤더 제2경기에서 승리 투수가 된 이후 지난해까지 롯데전에서 단 한번도 패하지 않았다. 그 기간 동안 22번 롯데전에 등판, 10연승만을 챙겼다. 6경기에 등판한 지난해에도 타선 지원을 받지 못해 1승 밖에 거두지 못했지만 방어율 2.27로 역시 빼어난 성적을 거뒀다. 박명환으로선 반가운 롯데지만 롯데 입장에선 피해가고 싶은 산이 박명환이었다. 그러니 롯데의 ‘박명환 공포증’은 미루어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그러나 웬걸. 게임 시작을 앞두고 씩씩하게 마운드에 올라 연습 투구를 하던 박명환은 시구가 진행되기 직전, 주심에게 양해를 구한 뒤 고개를 갸우뚱하며 덕아웃으로 향했다. 시선은 오른손 검지를 보고 있었다. 뭔가 이상이 생긴 듯 했다. 가끔씩 그를 애먹이는 물집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박명환은 1번 정수근부터 3번 박현승까지 3연속 안타를 허용하는 등 1회부터 실점을 하며 흔들렸다. 안타와 볼넷으로 맞은 4회 무사 만루에서는 박현승에게 밀어내기 볼넷을 내주는 등 최악의 투구 내용을 보였다. 3이닝 8안타 5사사구 1폭투, 7실점이 최종 성적.
박명환의 조기 강판으로 승부는 일찌감치 결정됐다. 롯데로선 기나긴 박명환 악몽을 털어냈지만 LG로선 ‘박명환 등판=승리’라는 롯데전 등식이 깨진 터라 더 큰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최근 몇 년 동안 유독 몇몇 투수에게 절대 약점을 보이고 있는 롯데는 지난달 29일 대전서 열린 한화와의 시즌 개막전에서 상대 선발 류현진에게 패전을 씌우며 7연패 사슬을 끊었다. 2006년 5월 31일 사직경기에서는 삼성 전병호를 상대로 12연패 악몽을 털어내기도 했다.
한국프로야구에서 특정구단 상대 최다 연승 기록은 선동열 현 삼성 감독이 갖고 있다. 그는 1988년부터 1995년까지 20연승을 거뒀는데 그 제물이 바로 롯데였다. 전통적으로 몇몇 투수들에게 당하고 또 당했던 롯데가 아무튼 조금씩 변화하고 있는 셈이다. 물집에 발목이 잡힌 박명환으로선 아쉬운 하루였지만 롯데는 ‘박명환이 등판해도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어 1승 그 이상의 가치를 지닌 경기였다.
잠실 | 김도헌기자 dohone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