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거슨-웽거“지고는못산다,특히너한테만은!”

입력 2008-04-09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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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체스터 유나이티드(맨유)의 알렉스 퍼거슨(67) 감독과 아스널의 아르헨 웽거(59) 감독은 단순한 라이벌이 아니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최고의 클럽 맨유와 아스널에서 각각 역사상 가장 성공한 매니저로 불리는 이 둘에 관한 한 많은 팬들은 EPL 최고의 앙숙으로 기억하고 있다.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맨유와 아스널은 EPL 왕좌를 놓고 중요한 길목마다 말 그대로 피 말리는 혈전을 벌여왔고, 그 중심에는 언제나 두 명장의 자존심 싸움이 자리했다. 잉글랜드 축구 역사상 가장 많은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린 퍼거슨과 1998년과 2002년 두 번에 걸쳐 더블을 달성한 유일한 비영국인 출신 감독인 웽거는 물과 기름 처럼 달라도 너무 다른 배경과 성격을 가지고 있다. 먼저 퍼거슨은 스트라이커에다 스코틀랜드 출신이고, 웽거는 수비수 출신의 프랑스인이다. 퍼거슨은 닉네임이 ‘격노한 퍼거슨’이라 불릴 정도로 불 같은 성격의 소유자이며, 스스로도 다혈질임을 인정하고 있다. 그가 벌겋게 상기된 얼굴로 자신의 감정을 참지 못하고 폭발한 일화들은 지금도 선수들 사이에 전설처럼 전해 내려오고 있다. 현 셀틱 감독인 고든 스트라칸은 퍼거슨이 스코티시 클럽인 아버딘 감독일 때 선수생활을 한 적이 있는데 당시 퍼거슨은 선수들에게 죽음의 공포를 드리운 감독이었다고 회고한 적이 있다. 자신의 분을 참지 못하고 드레싱 룸에서 집기를 걷어차고 육두문자를 쓰는 퍼거슨은 선수는 물론이고 매스컴에도 공포의 대상 그 자체이다. 반면 웽거는 선수들 사이에서 교수님으로 불릴 정도로 논리적이고 이지적인 성격의 소유자이다. 평소 자신의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고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모습을 보며 많은 팬과 매스컴은 학자풍의 매니저를 떠올리고 있다. 그는 5개 국어를 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고, 축구 매니저 중에는 드물게도 프랑스의 스트라부르대학에서 경제학과 사회학으로 석사학위를 받아 지적인 지도자로 여겨지고 있다. 이처럼 둘은 완전히 다른 면모로 비쳐지고 있지만, 누구에게도 지지 않으려는 승부욕 만큼은 꼭 닮았다. 2007년 1월 21일 두 클럽간 경기가 2-1 아스널의 승리로 돌아간 뒤 벌어진 양 감독간의 충돌은 둘 사이의 관계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보여주는 한 예이다. 밤잠을 설쳐가며 패배의 아픔을 삭여가던 퍼거슨은 웽거의 교수님다운 경기 논평에 참아왔던 분노를 폭발했다. 웽거는 자신이 맨유의 통계를 분석해보니 종료 20분전에 실점을 많이 하는 경향을 보이는데, 이는 체력에 문제가 있음을 나타낸다고 지적했다. 그는 맨유는 경기 시작 70분 후에는 완전히 다른 팀이 된다고 했는데, 퍼거슨은 이 말을 ‘웽거의 오만’으로 여겼다. 퍼거슨은 웽거의 말이 근거 없는 것이라고 규정한 가운데 이런 엉터리 같은 말을 한 이유가 웽거 자신을 위대하게 보이게 하기 위한 짓이라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웽거는 이에 대해 감독은 책임감이 있어야 되는데 퍼거슨은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행동하는 사람으로 항상 갈등의 중심에는 그가 있다고 반박했다. 이제 좋은 의미의 외교적 관계는 끝난 것이냐는 기자의 질문에 웽거는 “퍼거슨과는 애초부터 그런 관계가 없었다”고 잘라 말했다. 결국 우려의 목소리가 정부 부처 장관들과 경찰에서도 나오고, 축구협회가 공식적으로 휴전할 것을 서면 요청하기에 이르렀다. 리그 매니저 협회의 중재 제안에도 둘 사이의 깊은 골은 메울 수가 없었다. 퍼거슨은 웽거가 영어, 불어 독어, 이탈리아어, 스페인어에다가 일본어까지 할 수 있는데 대해 자기가 아는 아이보리코스트에서 온 15살 소년도 5개 국어를 할 수 있다며 그가 지적이다는 평가를 일축했다. 이런 갈등의 내면에는 웽거가 퍼거슨을 무시한다고 생각하는 데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평소 퍼거슨은 아스널이 올드 트래포드에서 경기가 있을 때 웽거에게 술 한잔할 것을 청했는데, 그때마다 웽거는 퍼거슨의 제의를 거절했다. 또 맨유가 트레블을 달성한 1999년 FA컵 준결승에서 아스널이 맨유에게 1-2로 패했는데, 경기가 끝난 후 웽거는 퍼거슨의 악수를 뿌리쳤다. 이를 두고 퍼거슨은 웽거가 영예롭게 패배하는 법도 배워야 한다고 비난했다. 이런 라이벌 의식은 결국 2004년 10월 24일 올드 트래포드에서 있었던 소위 ‘피자게이트’ 사건에서 정점을 이룬다. 당시 맨유는 아스널의 49경기 무패 기록을 2-0으로 저지했는데, 아스널은 경기 중 맨유가 얻은 페널티킥에 불만을 가졌다. 경기 후 양팀 선수들간 싸움이 벌어졌고, 이때 퍼거슨을 비롯한 맨유 선수들은 아스널 선수들에게 피자 세례를 받게 된다. 첼시가 EPL 2연패를 달성할 무렵, 조제 무리뉴와 잠시 라이벌 관계가 형성되기도 했으나 웽거는 퍼거슨의 진정한 라이벌이자 숙적이다. 이 둘 사이의 설전이 언제나 아름답게 끝난 것은 아니지만 이들의 경쟁의식은 프리미어리그의 질적 향상을 가져 올 수 있었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지난 시즌 맨유가 압도적으로 리그 우승을 하고, 퍼거슨이 프리미어리그 매니저상을 받게 됐을 때 웽거는 이 오랜 숙적만이 그 상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했고, 퍼거슨은 이기고 지는 승부의 세계를 이해하고 있을 거라고 믿는다고 했다. 결국 퍼거슨과 웽거의 전대미문의 성공 뒤에는 바로 이런 선의의 경쟁을 불러온 강한 라이벌 의식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볼 수 있다. 요크(영국) | 전홍석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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