핸드볼대표팀부부오영란-강일구의‘한이불이야기’

입력 2008-04-11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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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쭉뻗은아내다리최고매력…골도사랑도샐틈이없어요”
어느 슛이든 막아내는 두 사람. 최고의 공격수도 그들 앞에서는 얼어붙었다. 남녀 핸드볼 최고의 골키퍼, 강일구(32)와 오영란(36). 이들이 서로의 골문을 공략한다면 어떻게 될까. 사랑 앞에 마음의 골문은 속절없이 뚫렸다. ●마주침 처음 본 것은 23년 전. 강일구는 초등학교 3학년. 오영란은 중학교 1학년이었다. 같은 체육관에서 운동을 했다. “완전 누나라서…. 사실 잘 기억도 안나요.” 과연 그럴까. “저는 생각나는데…. 기합 받는다고 팬티만 입고 체육관 돌곤 했는데요, 뭘.” 강일구는 부끄러운지 펄쩍펄쩍. “그런 적 없었다니까.” 이런 경우 대개 큰소리치는 사람 얘기가 거짓말이다. 서로의 존재를 명확히 안 것은 강일구가 중학교 1학년이 되고부터. 남자 중등부와 여자 고등부가 종종 연습경기를 펼쳤다. 둘의 포지션은 그때부터 골키퍼. 40m를 마주보며 미래의 부부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일구 씨는 눈에 띄는 스타일이에요. 파이팅도 넘치고 적극적이죠” 하지만 이성으로서 마음은 “전혀” 없었단다. 강일구 역시 마찬가지. “저도 그 때는 별 생각 없었는데….” 오영란의 공격이 이어진다, “별 생각 안하기는. 이제 막 사춘기에 접어든 소년들이라 경기 중에 누나들 한 번씩 안아보고 그러거든요. 그게 아쉬워서 필드 플레이어 하고 싶었을 거예요.”, “그런 마음 없었다니까!” 다시 강일구의 목소리가 커진다. ●불암산에서 싹 튼 사랑 “저 사실 속아서 결혼한거라고요. 자기 돈 많다고 했거든요.” 강일구의 역공. 정말 돈에 눈이 멀었을까. 좋아하는 사람은 거꾸로 괴롭히고 마는 초등학생처럼 계속 티격태격 이다. 둘 사이 묘한 감정이 싹 튼 것은 성인이 되고 나서다. 때는 시드니 올림픽 준비에 한창이던 2000년 봄, 장소는 태릉 불암산이었다. 불암산의 봄은 금강산도 부럽지 않다. 사람의 매력을 끄집어내기에 적절한 배경이 되어준다. 강일구는 마침 근육통 때문에 불암산 종주를 제대로 할 수 없었다. 뛸 때는 보지 못하던 진달래와 개나리꽃도 눈에 들어온다. 걸어서 올라가다 짓궂은 여자대표팀 누나들을 만났다. “일구야, 너 어떤 사람을 택할래? XX 언니는 미모, 영란 언니는 돈이다.”, 강일구가 주변을 돌아봤다. “사실, 누나들이 미모도 다 안됐어요. 그냥 장난 한 번 받아주자고 생각했죠.” 강일구는 돈을 택했다. 오영란이 웃었다. 장난으로 시작한 인연이 진지해졌다. 연애는 타이밍. 오영란은 용기를 내어 전화번호를 찍어줬다. 순진총각은 덥석덥석 누나에게 전화를 했다. “운동하는 여자는 만나지 않겠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공감 가는 것들이 너무 많은 거예요”, “(저보다) 어리지만 어리광부리지 않았어요. 의젓해서 좋았죠.” 어차피 동종업계 종사자다. 주변사람들한테도 평판을 모았다. “(강)일구? 진국이지.”, “(오)영란이? 걔만큼 털털한 애가 어디 있냐.” 흐뭇했다. 하지만 선후배들은 이들이 연애 상대로 물어본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나이 차가 두렵기도 했다. “(강)일구씨, 우리 이러다가 정들면 어떡하지?” 조심스러운 프러포즈. “뭘 어떡해. 그냥 정 드는 거지.” 그렇게 둘은 감정의 옷을 덧입혔다. ●결혼 사랑과 재채기는 숨길 수 없다고 했다. 비밀 연애도 금방 들통이 났다. 2001년 12월에는 기사까지 실렸다. “핸드볼큰잔치를 앞두고 흥행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까 싶어 흘린 것 같아요. 사실 그때까지 결혼할 생각까지는 안했어요.” 세상에 알려진 후 부모님이 더 서둘렀다. 남자들이 일생에서 가장 떨리는 순간, 강일구는 미래의 장인어른을 만났다. “그래, 자네 운동을 그만둔 뒤에는 무엇을 할 작정인가?” “네. 체육교사를 하겠습니다.” 오영란도 “일구씨 사범대 졸업했어요. 2급 정교사 자격증도 있어요”라고 거들었다. 결국 한 달 뒤 상견례를 했고 2002년 5월, 식을 올렸다. 결혼을 하고 달라진 점. 일단, “핸드볼 선후배 사이의 족보가 어그러졌다”는 핀잔을 듣는다. “일구야”라고 편하게 말 놓던 누나들이 이제 “형부”라고 격을 차린다. 호칭 한번 잘못했다가는 ‘왕언니’ 오영란에게 혼쭐. 강일구도 처제들에게 “누나”대신 “XX씨”다. 달라지지 않은 점. 여전히 ‘사랑은 전화선을 타고’ 흐른다. 소속 실업팀의 일정을 따르다보면 함께 하지 못하는 시간이 많다. 태릉선수촌에 함께 있을 때도 주변의 눈치 때문에 데이트는 엄두를 못 낸다. 2003년 오영란이 6개월간 노르웨이에 진출했을 때는 한 달에 100만 원 이상을 전화비로 썼단다. ●가족 2006년 12월, 딸 서희를 얻었다. 이후 딸은 오영란의 경기력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변수가 됐다. 해외에 경기가 있을 때도 꼬박 전화를 해서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 혹시라도 서희가 시무룩하거나 아픈 날이면 컨디션도 나빠진다. 태릉에서 문득 서희가 보고 싶으면 의정부 시댁까지 택시를 탈 때도 있다. “저나 남편이나 똑같이 못 보는 데도 저한테만 안기려고 해요. 열 달 동안 함께 있어서 그런가 봐요.” 엄마, 아빠를 닮아서인지 16개월 된 아기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저는 운동시킬 생각이 없는데 와이프는 운동을 시키고 싶대요.” 하지만 오영란의 생각이 변했다. “만약에 운동을 잘 못해 봐요. 부모랑 비교하면 애가 얼마나 자존심이 상하겠어요.” 오영란은 공부를 시켰으면 하는 눈치다. “벌써부터 동화책을 읽어달라고 하는 거보니 똑똑한 것 같아요. 제가 못해본 것을 했으면 좋겠는데….” 강일구의 결론. “우리는 운동 누가 시켜서 했나? 서희가 알아서 하겠지.” 서희를 맡아주는 시어머니는 오영란에게 미안하면서 감사한 존재다. 처음에는 주변 사람들에게 며느리의 나이를 말씀하시는 것도 꺼렸다. 하지만 운동선수의 부모이기에 운동선수 며느리를 가장 잘 이해하는 사람이 됐다. 며느리 손에 물 닿는 모습도 보지 못한다. “운동만 했는데 제가 돕는다고 얼마나 할 줄 알겠어요.” 혹시 며느리 마음이 다칠까봐 방법도 세심하다. “너는 키가 커서 서 있으면 어두워지니까 그냥 앉아있으라고 하세요.” 장모 사랑도 만만치 않다. 씨암탉보다 생선을 좋아하는 사위, 강일구가 가는 날이면 노릇노릇 생선 굽는 냄새가 진동을 한다. 영양제를 챙겨주는 것도 잊지 않는다. ●라이프 스타일 손 큰 어머니를 닮아서인지 오영란은 씀씀이가 크다. “명색이 대표팀 최고참인데 밥 한 끼라도 사주는 선배가 인기도 좋지 않겠냐”며 웃는다. 강일구 역시 맏형 격이지만 지갑을 열기 전에 생각이 많다. 둘은 인천에 있는 24평 아파트에 전세로 살고 있다. “아기 옷값도 만만치 않다. 돈이 모일만 하면 나간다”는 푸념이 여느 30대와 같다. 펀드도 수익률이 나오지 않아 적금을 하고 있다고. 하지만 얽매여 살고 싶은 생각은 없다. 소금기 가득한 트레이닝복 만을 생각하면 오산. 쇼핑을 하며 기분을 풀고, 서로의 패션에 대해 조언해 주기도 한다. “(강)일구씨는 패션에 고집이 있다”고 했다. “한 벌을 사더라도 여러 번 입어보고 고르는 스타일”이라고. 오영란은 남편보다 연상이라 어려 보이게 입는 법에 관심이 많았다. 서희를 낳은 후로는 더 그렇다. 비결은 “웃옷은 헐렁하더라도 바지는 딱 붙게 입는 것”, 장점인 키를 살리자는 것이다. 강일구가 “다리가 정말 길고, 예쁘다”며 거든다. ●올림픽 온 몸으로 막아내야 하는 골키퍼. 오영란의 예쁜 다리에 멍이 들 때면 남편은 마음이 아프다. “운동을 계속하고 싶다니까 와이프를 밀어줘야죠.” 씩씩하던 목소리가 작아졌다. 오영란이 다른 곳을 쳐다보자 “사실은 이제 그만 했으면 좋겠어요. 얼마나 힘든지 제가 잘 알잖아요”라고 속내를 털어놓는다. 둘째를 갖고 싶은 마음도 마찬가지. “선수 생활을 계속할지 안할지는 솔직히 모르겠어요. 확실한 것은 이번이 마지막 올림픽이라는 겁니다.” 오영란의 눈매가 또렷해진다. “이번이 네 번째 올림픽인데 은메달만 두 번 땄거든요. 이번에는 꼭 금메달 따고 싶습니다. 우리 서희한테 자랑스러운 엄마가 될 수 있도록.” “저는 아직 올림픽 메달이 없어요. 2002년 부산 아시안 게임 금메달뿐이죠. 서희가 나중에 ‘아빠는 왜 올림픽 메달이 없냐?’고 물으면 뭐라고 대답해요. 색깔은 상관없습니다. 저도 마지막 올림픽입니다.” 마주 보던 40m는 이제 두 손 사이 만큼이나 가까워졌다. 티격태격 하면서도 꼭 모아 잡은 두 손, 원하는 바는 하나. ‘서희를 위해 다 막아주세요. 우리는 당신 부부의 굳은살 박힌 손만 믿습니다.’ 강일구는? 생년월일 : 1976년 4월 26일 신장 : 182cm 포지션 : 골키퍼 학력 : - 하남 동부초등학교 - 하남 남한중학교 - 하남 남한고등학교 - 원광대학교 소속 : 인천도시개발공사 주요 국제전적 : - 2000년 제17회 세계남자선수권 동아시아예선 1위(중국 상해) - 2001년 제3회 동아시아경기대회 1위(일본 오사카) - 2003년 제14회 부산아시안게임 1위 - 2003년 제28회 아테네올림픽 아시아지역예선 1위(일본 고베) - 2008년 제13회 아시아남자선수 1위(이란 아스파한) 오영란은? 생년월일 : 1972년 9월 6일 신장 : 171cm 포지션 : 골키퍼 학력 : - 오산 성호초등학교 - 수원 송원중학교 - 용인 신갈고등학교 소속 : 벽제건설 주요 국제전적 : - 1992년 제1회 동아시아경기대회 1위(중국 상해) - 1994년 제12회 히로시마아시안게임 1위 - 1995년 제12회 세계여자선수권 1위(오스트리아) - 1996년 제26회 애틀랜타올림픽 2위 - 1998년 제13회 방콕아시안게임 1위 - 2004년 제28회 아테네올림픽 2위 태릉=전영희 기자 setupman@donga.com 사진=박화용 기자 inphot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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