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이 8-9로, 다시 10-9로 끝났으니….
16일 잠실경기를 앞둔 KIA와 LG, 양 팀 선수단은 전날의 여운이 채 가시지 않은 분위기였다. 홈팀 LG는 4회 말까지 8-0으로 앞서가다 5·6회에 4점 추격을 허용한 뒤 9회 초 5점을 내줘 8-9로 역전을 허용했다. 벼랑에 몰렸던 LG는 그러나 9회 말 어렵게 동점을 만든 뒤 2사 만루에서 대타 김용우의 끝내기 밀어내기 사구로 극적인 승부의 주인공이 됐다. 8-0 스코어가 8-9가 되기도 쉽지 않은데 그 다음엔 더 ‘믿기지 않는 일’이 벌어졌으니 날이 바뀌었어도 양 팀 모두 전날의 여운이 그대로 살아 있었다.
끝내 7연패에 몰린 KIA쪽에선 “차리리 지려면 8-7에서 졌으면 그나마 나을텐데…”라는 아쉬움이 있었다. ‘원래 진 게임’이었는데 괜히(?) 역전까지 했다가 다시 뒤집어졌으니 속이 더 쓰리다는 말이었다. 심재학은 “내 야구하다 이런 게임은 처음 봤다. 9-8로 뒤집었으면 이기는 걸로 끝나는 게 정상인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조범현 감독은 “아쉬워도 별 수 있느냐”며 “오늘 잘 해야지”라는 말로 전날의 아픔을 곱씹기도 했다.
승자였던 LG도 그렇게 마음이 편하지 만은 않았다. 8-0 상황이면 당연히 쉽게 끝내야할 것을 제대로 끝내지 못한 아쉬움 때문. 안방마님 조인성은 “어제 잘못하다간 정말 큰 망신당할 뻔 했다”면서 “만약 패했다면 충격이 오래갔을 것”이라며 가슴을 쓸어 내렸다. 김재박 감독도 “어제 같은 게임은 ‘운발’에서 승부가 갈렸다. 우리가 운이 좋았을 뿐”이라고 쓴 웃음을 지었다.
‘전날의 계속된 여운’ 속에서 가장 눈길을 끈 건 LG 마무리 우규민이 KIA 마무리 한기주에게 던진 말이었다. 9회 초 역전의 빌미를 제공(?)하며 ‘1차 불쇼’를 펼친 우규민은 9회 말 ‘2차 불쇼’를 펼쳐 패전 멍에까지 쓴 한기주에게 “내가 끝냈어야 하는데…. 내가 끝내지 못해 너까지 괜히 피해를 봤다”면서 “우리 둘 다 바보가 됐다. 미안하다”고 한마디 건넸다. 팀은 다르지만 같은 마무리 입장에서 선배로서 일종의 책임감을 느꼈던 모양이다.
잠실= 김도헌기자 dohon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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