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언니 : 우리 오랜만에 보네?
얼짱캐디: 그러게 언니, 벌써 날씨가 더워져서 한낮에는 여름이야.
들잔디소녀: 글쎄, 이젠 봄이 없다더니 맞나봐?
왕언니 : 날씨는 그렇다고 하고. 어떻게들 지내?
얼짱캐디: 우린 신입 캐디가 초보딱지 달고 근무 나간 지 한달 정도 넘어가는데 고객들 불만이 장난 아니야. 내가 볼 때도 너무하다 싶을 만큼 허둥지둥 거릴 때도 있어. 그럴 때는 고객에게 수고료 받기가 민망스러워, 고객이 지나칠 정도로 나무랄 때도 있지만….
들잔디소녀: 그러면서 다 익숙해지고 그러는 거지.
왕언니 : 그렇지 뭐. 고객과 우리 사이에 감정이 대립되면 대놓고 말은 못하고 은어로 표현할 때가 있잖아.
얼짱캐디: 많지, 진상이란 말도 있고, 왜 예전엔 정 아니다 싶으면 백에다 별 그려 놓곤 했잖아. 나름 우리끼리의 암호였지.
들잔디소녀: 근데, 요즘은 고객들끼리도 은어도 많이 쓰고 내용도 강하고 욕이 꼭 들어가더라?
얼짱캐디: 응, 우리 보통 첫 홀은 다 스코어를 잘 친 사람 기준으로 통일해서 적어 주잖아. 그걸 요즘 은어로 뭐라고 하는지 알아?
들잔디소녀: 우리도 그런 말 쓰는데 ‘천파만파로 적을까요?’라고 하잖아. 맞지?
얼짱캐디: 맞아. 또 다른 말로는 ‘일파만파’라고도 하지.
왕언니 : 그럼 백돌이(보통 100타 정도 치는 골퍼) 고객들이 좋아 하잖아.
들잔디소녀: 말은 안하고 있어도 속으로는 무지 행복해할걸.
왕언니 : 골퍼가 그린이 안 보이는 꺾어진 홀에서 거리가 얼마냐, 방향이 어디냐, 몇 번씩 확인하고도 결국은 엉뚱한 방향으로 거리도 턱없이 짧게 쳐 놓고는 ‘내볼 올라갔어?’ 이렇게 말할 때는 ‘택시’라고 하지.
얼짱캐디: 택시? 그건 무슨 뜻인데?
왕언니 : ‘택도 없다. OOO아’란 말이야.ㅋㅋ
들잔디소녀: 일행이 친구끼리면 모르지만 좀 심하다.
왕언니 : 더 심한 것도 많아. 좀 얄밉기는 하지만 자기 눈으로 볼이 그린에 올라간 것을 보고도 자랑하려고 ‘내볼 온그린 됐지?’라며 물어보는 얄미운 골퍼에게 ‘물개’라고 한다.
들잔디소녀: 그건 처음 듣는 말인데?
왕언니 :‘물론이지, 개OO야’라는 말이지. 이것도 친한 친구끼리 가능하지만 접대골프 나왔다가 이런 말하면 진짜 분위기 엉망 되지.
얼짱캐디: 얼마 전까지 유행했던 건데, 방송국 용어도 많이 썼어. 연습 스윙을 많이 하는 골퍼들에게는 ‘KBS’라고 하는데 무슨 뜻인지 알아?
들잔디소녀:아, 그건 내가 알지 ‘가라스윙 그만하고 비키시지’라는 뜻이지.
얼짱캐디: 맞아. 그럼 그린에서 얼쩡거리면서 왔다 갔다 하는 골퍼에게는 ‘MBC’라고 하는데 그것도 알아?
들잔디소녀: 그건 ‘마크하고 비켜 OOO아’ 라는 뜻 아냐? 그리고 컨시드를 줬는데도 끝까지 스트로크를 할 땐 ‘집시(집어 들어 OOO아)’라고 하잖아.
왕언니 : 끝에 욕 빼면 말이 안 되네?
얼짱캐디: 친구끼리 오랜만에 함께 필드에 나오니까 편해서 그런 거겠지. 그렇게 서로 욕하고 빈정거려놓고는 버디라도 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서로 웃고 즐거워하는 모습도 보기는 좋더라고.
들잔디소녀: 그러고 보면 요즘은 은어가 진짜 많아진 것 같아.
왕언니 : 맞아 그러다가 진짜 싸움 나지 않을까 조마조마 하기도 하지만 분위기가 이상하게 돌아가면 우리가 나서서 중재하잖아. 우리들이 해야 할 임무 중 하나가 바로 그런 거 아니겠어.ㅋㅋ
얼짱캐디: 맞아. 이런 재미도 필드에서만 볼 수 있는 모습이잖아.
김 현 수
골프장교육 전문업체 EMG에서 실장으로 일하고 있는 캐디와 고객의 커뮤니케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