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한통에글러브다시잡아…“선생님!고맙습니다”

입력 2008-05-26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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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강민호의 야구 인생. 최초의 위기(?)는 제주 신광초등학교 6학년 때 찾아왔다. 야구 선수가 되기로 마음먹은 지 1년이 갓 지났을 무렵이었다. 당시 제주에는 야구부를 보유한 중학교가 없었다. 그래서 홀로 포항으로 가 중학생들과 함께 훈련을 받아봤다. 바로 이 때 강민호는 큰 충격을 받았다. 어린 나이에 부모님 없이 외지 생활을 하는 것도 서러운데 생전 처음으로 중학생 선배들에게 ‘얼차려’를 받은 것이다. 초등학교 6학년생이 견디기에는 너무 힘들었다. 야구를 그만두기로 굳게 결심한 강민호는 담임이던 안영숙 선생님을 찾아갔다. “선생님, 저 야구 그만 둘래요. 너무 힘듭니다.” 선생님은 말없이 등을 토닥이더니 다음날 직접 쓴 편지 한 장을 건넸다. 편지는 이렇게 시작했다. ‘미래의 박찬호가 될 민호에게’. 재주 많은 어린 제자가 금세 꿈을 접는 것을 안타까워한 선생님의 정성이었다. “박찬호처럼 대단한 선수도 똑같은 시련을 겪고 정상에 올랐으니 민호 역시 역경을 이겨내고 훌륭한 야구선수가 되길 바란다”는 따뜻한 격려. 아무리 어린 소년에게라도 진심은 통하는 법이다. 강민호는 편지를 곱게 접어 지갑 속 깊숙한 곳에 집어넣었다. 선배들에게 혼나서 눈물이 날 때, 훈련이 너무 힘들어 어디론가 도망가고 싶을 때, 어김없이 그 편지를 꺼내 읽으며 마음을 다잡았다. 강민호는 제주에 갈 때마다 선생님에게 안부 인사를 전한다. ‘스승의 날’이 돌아오면 매년 잊지 않고 전화를 건다. 15일에도 강민호는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선생님! 오늘 제가 한 건 할게요! TV로 보세요!’ 강민호는 아쉽게도 그 날 ‘한 건’ 하는 데는 실패했다. 하지만 훌쩍 자라 ‘훌륭한 야구선수’가 된 제자의 마음만은 충분히 전달됐을 듯 하다. 배영은 기자 yeb@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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